■ 중·고등학생입시위주 공부에 시달려 회화능력 못 키워… 영어 일상환경 만들면 큰 도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가 현재 영어교육의 실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임재범기자
영어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현재의 중고등학생들이다. 영어를 언어가 아닌 평가의 도구로 받아들여야 하는 세대. 대학입시제도와 맞물려 있는 중고등학교 영어 교육은 언어를 배우기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객관식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 시험은 주로 문법과 읽기에 맞춰진다. 30~40명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교실 영어 수업에서 자연히 말하기 등 회화능력은 키울 수 없다. 단일어를 사용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영어 수업시간 이외에 영어를 사용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도 영어를 익히기에는 불리한 환경이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국인이 10년간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 법정 교육시간은 730시간이다. 7시간 씩 100일간 영어 공부를 하면 끝난다”고 말했다.

최근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의 또 다른 어려움 중에 하나는 같은 교실의 아이들 중에서도 수준차이가 현격하다는 것. 이병민 교수는 “예를 들어 중 3 교실에서 상위그룹 아이 중 웬만한 대학생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

반면 초등학교 4,5학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도 있다. 현재 학교에서 수준별 교육을 실시하지만 현재보다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 3학년 아이지만 수준이 높다면 고2, 고3 학습을 시작하고 수준이 안 된다면 초등학교 5,6학년 수업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 때 부모들이 동의 할 수 있을 지 여부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영어 능력이 또래에 비해 떨어질 경우 또래가 받는 영어수업내용을 반복하기보다 과감히 낮은 학년의 수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 시기 아이들의 영어 능력은 아이의 ‘머리’보다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에 비례한다. 영어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 노출환경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숙명여대 강애진 교수는 “영어 구사력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일정 시간 노출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강 교수는 “연구 논문이나 보고서를 보면 하루 4시간, 일주일에 5일정도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야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3년에서 5년이 지나면 전공에 필요한 영어를 쓸 수 있고 5년에서 7년 후면 자기 나이에 맞는 영어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꾸준한 반복 훈련을 통해 영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집중적인 훈련은 강력한 동기가 없을 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입사나 승진, 업무추진 등 목표가 뚜렷한 성인 학습자와 달리 중고등학교 학생의 경우 영어를 반복 사용하도록 적당한 동기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병민 교수는 “동기가 확실한 경우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은 굉장히 많다. 인터넷의 대부분 정보는 영어로 돼있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미국드라마 방송도 많고 CNN과 같이 뉴스 영어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순수한 ‘영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것과는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영어를 자주 접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중학생의 경우 영어 소설과 영어 신문의 꾸준한 구독을 권한다. 이 시기 영어 독서는 다양한 종류의 독해를 빠른 시간에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 준다. 특정 주제로 일정한 에세이 형식을 갖춘 글쓰기 연습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고등학생이라면 본격적으로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준비한다. 중학생 시절 읽기와 듣기 등 정보의 인풋 (In put)을 하는 시기라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아웃풋 (Out Put)을 배우는 것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