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생 '당권·대권 잡기' 파워게임이재오 낙마로 2파전 양상… 박근혜 수적 열세·정몽준은 당내 기반 취약등약점

지난해 12월, 대선이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끝나자마자 정치권에서는 '박ㆍ정ㆍ이 삼국지'라는 새로운 조어가 탄생했다. 가깝게는 4월 총선 후 한나라당 당권을 둘러싸고, 멀리는 2012년 차기 대권을 놓고 박근혜 정몽준 이재오 세 사람의 파워게임이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지분의 절반을 나누고 있는 유력한 당권ㆍ대권 주자로서,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계를 이끌고 있는 수장으로, 정몽준 의원은 12월 초 혈혈단신으로 한나라당에 뛰어들었지만 '가능성'을 평가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4ㆍ9 총선 결과는 '박ㆍ정ㆍ이 삼국지'를 다시 쓰이게 했다. 친이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예상밖의 낙마를 한 반면 박근혜, 정몽준 의원은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 한나라당 친박 의원들이 선전을 하고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후보들도 대거 생환해 선거에서'박근혜의 힘'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정몽준 의원은 정치 중심인 서울에서 여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물리치면서 일약 전국적 스타로 부상했다. 초등학교(서울 장충초) 동창인 박근혜, 정몽준 의원이 4ㆍ9 총선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이다.

게다가 총선에 따른 한나라당 안팎 구도는 박근혜, 정몽준 의원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고 하나 153석이라는 턱걸이 과반으로 이명박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나라당 성향의 친박연대, 무소속 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에 따라 한나라당은 물론,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도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친이계 핵심의 몰락은 6선의 정몽준 의원을 주목받게 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공천 과정에서 '이심(李心,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의 대리인으로 알려진 이방호 사무총장, 친이 중추인 정종복ㆍ박형준 의원 등이 낙마, 친이계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대안으로 정 의원이 부상하고 있는 것.

더구나 울산에서 내리 5선을 한 정 의원이 서울(동작을) 지역에 출마한 정동영 전 장관에게 맞불을 놓는 전략 공천을 한 배후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정몽준 대안론'이 친이 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렇듯 박근혜, 정몽준 의원이 4ㆍ9 총선의 '영웅'으로 부각되면서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박근혜-정몽준 전선'이 회자되고 있다. 박ㆍ정 두 의원의 이력이나 당 내외 영향력에 비춰 차기 당권과 대권을 향한 일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일각에선 빠르면 7월로 예정된 전대에서 당권을 놓고 박근혜-정몽준 빅매치가 성사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두 의원 측에서는 당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전대 출마를 종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정몽준 의원은 선거 직후 "선출직 최고위원 5명에 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오는 7월 전대 출마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는 7월 전대 출마와 관련해 구체적인 입장 표명이 없지만 측근을 중심으로 당권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남의 한 측근 중진은 "7월 전대에서 당권을 잡아야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당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며 박 전 대표의 전대 출마에 기대를 나타냈다.

과연 박근혜-정몽준 빅매치는 이뤄질 것인가? 가능성은 정 의원이 전대 출마 의사를 분명히 한 상황이어서 박 전 대표에 달리게 됐다.

일찍이 박 전 대표와 정 의원은 지난해 12월 말 국지전을 치른 바 있다. 대선 직후 이명박 당선인의 4강 외교 특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미국 특사를 희망했고, 그런 뜻을 이 당선인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당선인은 미국 특사로 정몽준 의원을 임명하고, 박 전 대표에겐 중국 특사 임무를 맡겨 사실상 정 의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박 전 대표 측근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초 정몽준 의원이 입당할 때만해도 그렇게 괘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특사 문제를 거치면서 정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의문을 갖게 됐다고 한다.

즉 이 대통령이 정 의원을 내세워 박 전 대표를 견제하고 여차하면 차기 대권 후보로 정 의원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다.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총선 공천 문제를 지적하며 "속았다"고 한 발언의 이면에는 정 의원으로 인해 불거진 이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 불신 등이 배어 있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당권의 향배를 정하는 7월 전대는 박 전 대표와 정 의원 간에 2차 결전장이 되는 셈이다. 박 전 대표가 전대 출마를 고심하는 가운데 전략통인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전대 출마는 당권 도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명박당'이 된 현 상황에서 당권을 쥐지 못할 경우 차기 대권 도전도 쉽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친박인 3선 의원은 "총선 공천에서 나타났듯 친이 진영에서 박 전 대표측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당권 확보는 그러한 압박을 막아낼 최고의 무기"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몽준 의원측은 전대 출마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정중동인 양상이다. 오히려 친이 일각에서 '정몽준 옹립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친이를 대표할만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에 필적할만한 인물로 정몽준 의원이 최적임자다"고 말했다. 그는 "친이 의원이 나설 경우 당이 분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중립적인 정 의원이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영남권 친이 의원은 "정몽준 의원은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다. 당내 기반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친이)가 밀면 당권은 따놓은 당상"이라며 노골적인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박근혜, 정몽준 진영 모두 7월 전대와 당권 향배에 승부수를 띄우려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많은 않다.

박근혜 전 대표측은 무엇보다 세력 불균형이 과제다. 총선에서 박풍으로 인해 당내에서 34명, 친박연대 및 무소속 연대에서 25명 등 60여명의 친박 인사들이 대거 당선됐지만 당내 109명(비례대표 포함)의 친이계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게다가 당내 34명의 친박 인사들만으로는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당외 25명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추진하고 있지만 친이측은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대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당권 도전에 나섰다가 만약 패할 경우 차기 대권 도전까지 상처받을 수 있는 점은 박 전대표측에 큰 부담이다.

또한 박 전 대표가 당권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거나 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박 전 대표 측을 고민스럽게 한다. 아울러 4ㆍ9 총선에서 당의 지원요청을 외면, 상당수 후보가 탈락해 박 전 대표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래서 일각에선 박 전 대표 대신 대리인을 내세우자는 견해도 있지만 마땅한 대리 주자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몽준 의원도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총선 후 당내 주류에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취약한 기반과 '자기 사람'을 만드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특히 '한나라당=부자 정당'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데 정 의원이 당 간판이 될 경우 그러한 이미지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현대그룹 출신 이명박 대통령에 같은 현대가 사람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다면 강한 반발 여론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권과 관련 일각에서 5선의 김형오 의원과 4선에 성공한 홍준표, 안상수, 남경필 의원, 3선의 원희룡 의원 등이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그러한 박근혜ㆍ정몽준 한계론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당권의 적임자로, 그리고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박근혜, 정몽준 의원이 최우선으로 꼽힌다.

'박ㆍ정 이국지'가 7월 전대에서 바로 점화될지, 아니면 다음으로 연기될지가 정국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