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중 극동러시아개발 대표, 경기도 연천군 휴전선 일대 개발 계획으로 첫 추진MB의 '나들섬 구상'은 강화도 교동도 프로젝트의 축소판경제위기 상황서 남북이 윈윈하는 경협 돌파구 마련 시급

북핵을 둘러싼 북미관계가 화해 무드로 바뀌고 이명박 정부 들어 한랭전선을 띠던 남북관계에 변화 조짐이 일면서 ‘ONE KOREA 프로젝트’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남ㆍ북한을 비롯 러시아, 중국(동북부)을 포함한 동북아에 평화 질서와 경제협력을 가져올 유효한 프로젝트라는 평가와 기대 때문이다.

극동러시아 개발을 위해 러시아 측 주도로 만들어진 비공개 조직‘라손’에 관여하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 고위 인사, 한국 담당자들은 벌써부터 관련 인맥을 가동하고 오래 묵혀 두었던 플랜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미국 쪽 인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한반도 주변국에까지 파급력이 있는 ‘ONE KOREA 프로젝트’는 명칭을 달리해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그동안 집권자의 안목 부재와 개인의 권력욕, 그리고 시대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다.

‘ONE KOREA 프로젝트’는 남북한이 경협과 교류를 통해 한민족으로서 공생,번영하는 방안으로 추진됐다. 첫 밑그림은 1990년대 초부터 대북사업을 하면서 북한 고위인사들과 신뢰를 쌓아온 장석중(58) 극동러시아개발주식회사 대표가 그렸다.

당시 장 대표가 제안한 민족경협 지역은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휴전선 일대였다. 그러나 북한이 난색을 표시했다. 지뢰가 다수 매설된 지점이어서 경제단지를 조성하는데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대체지로 해안에 인접한 지역을 제시했다.

그에 따라 장 씨가 경협 적합지로 찾아 낸 곳은 강화도 교동도라는 섬 일대(청주벌)였다. 지정학적으로 남한 지역이어서 북한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고 북한과도 가까워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길을 열어 준 직후인 99년 초였다.

장씨는 교동도 프로젝트를 남북한과 함께 러시아까지 연계하는 그랜드 플랜으로 새롭게 디자인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극동러시아(연해주)를 개발하는 대신 러시아는 북한의 참여를 독려하고 제어도 하는 남-북-러 3국 간 국제 프로젝트로 확대한 것이다. 프로젝트는 연해주 물류기지화, 남북철도를 복원하는 TKR-TSR 연결사업, 극동러시아 자원을 북한 및 남한에 공급하고 남북한 공동 생산품을 러시아, 유럽 등에 수출하거나 남한의 생활필수품을 북한이 수입해 극동러시아 전역에 판매하는 내용 등 현재의‘ONE KOREA 프로젝트’와 대부분 일치한다.

장씨의 이러한 구상은 2000년 바레인ㆍ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지낸 최필립 ㈜대현농수산 회장에게 처음 소개됐고, 최씨는 그 구상을 지인인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에게 전했다. 이듬해인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ㆍ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에 ‘극동러시아 개발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것은 사실상 장씨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한동 총리는 장씨의 구상을 움켜쥔 채 극동러시아 개발위원회를 설립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이수성 전 총리는 2001년 6월 연해주를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인 폴리코프스키를 만났을 때 교동도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다가 “그것은 원래 장석중 씨 것 아니냐”는 무안을 받기도 했다. 장씨의 프로젝트가 잠룡들의 대권 카드로 유용된 예다.

한ㆍ러 정상회담 후 푸틴 대통령 특보는 장 씨를 찾았고 그 해 4월과 5월 베이츄크 주한 러시아 무역대표부 대표 일행이 장씨와 함께 두 차례나 교동도를 방문했다. 그리고 베이츄크 대표는 교동도 주민들 앞에서 “교동도 프로젝트가 러시아 정부 정책으로 공식 채택됐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같은 해 7, 8월 베이츄크는 북한을 방문, 군부 실세들과 휴전선 접경지역과 청주벌을 답사했다.

장씨는 그 해 9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사할린 유전 개발 계약을 완료하고 곧바로 극동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극동러시아 개발위원회’ 창설식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극동러시아 책임자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막역한 폴리코프스키 푸틴 대통령 전권 대표에게 자신의 남ㆍ북ㆍ러 공동 프로젝트를 전했고, 이는 바로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듬해인 2002년 4월 푸틴 대통령 극동 담당 보좌관인 봐오와슨은 정식으로 장 씨에게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초청을 연락해왔다. 극동러시아에 중국의 과도한 진출을 우려한 푸틴 대통령이 해법을 찾기 위한 요청이었다.

하지만 장 씨는 교동도 프로젝트에 따른 NLL(서해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한 한미연합사령부의 확답이 없어 모스크바행을 보류해야 했고 이후 그의 프로젝트는 수면아래로 잠겨버렸다.

장씨의 한반도 프로젝트는 참여정부 들어 다시 세상에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기명 전 대통령 후원회장측과 이광재 의원 등이 관심을 보인 것. 이 의원이 줄기차게 폴리코프스키를 만나려 한 것도 장씨의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해찬, 김혁규, 이광재 의원 등 친노 인사들의 방북 행렬이 줄을 이을 때 그들의 보따리에는 어김없이 장씨의 프로젝트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ㆍ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중 경협의 핵심적인 내용이 장씨의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측 인사들도 장씨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나들섬 구상’이 장 씨의 ‘교동도 프로젝트’의 축소판이라는 일각의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GSI) 관계자 중에는 대선 후 장 씨 프로젝트의 전문을 알려고 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출범 초기 북한과 긴장 국면을 연출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장석중 씨는 “평양이 아닌 북한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정권의 집권을 주시하는 북한과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 피상적으로 북한을 알고 설익은 정보를 갖고 북한을 대하려 하면 MB정부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장 씨의 설명이다.

장 씨는 북한이 이명박 정부에 뿔이 난듯한 행보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북한의 진심은 정치논리가 아닌 민족 대 민족으로, 민간 차원에서 경협을 하자는 것”이라며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 맡겨두고 민간 중심의 경제 교류에 중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자원난과 원자재 부족, 달러 약세에 따른 수출 저조 등 경제 외적 여건이 어려운 국내 상황에서 북한은 그 위기를 넘어 동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주요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이야말로 남북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장 씨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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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