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음악 사운드 스컬추어 미술 + 기술 뉴미디어 아트 등 새롭게 부상

혼혈의 피를 가진 미합중국 대통령의 탄생 소식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금세기 최대의 사건이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냉전시대를 종식하면서 지구촌의 지형도를 재편하는데 기여했다면 혼혈 대통령의 등장은 미국 내에 변화하는 기류를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이념적 변화를 확정적으로 못박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모더니즘 시대의 완전한 종식을 증거하고 있으며 나아가 미학적 차원에서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흥분을 느끼게 한다. 시대가 변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이념이 변했다.

엘리트 중심주의, 본질, 절대, 순수, 혈통 등으로 무장되었던 모더니즘의 사상이 종식을 고하고 대중, 혼성, 통합, 융화, 화합, 그리고 배려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정치적 구도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21세기 문명사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모너니즘의 종식과 더불어 나타난 예술의 변화 현상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 바로 ‘융합’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예술에 있어 융합이란 서로 다른 단위 장르들이 개체적 속성을 인정받으면서 상호 어울려 새로운 차원의 예술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치 수소융합이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해 내듯이 이질적인 것들의 융합은 지금껏 보지도 누리지도 못했던 새로운 신종 장르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가령 조각과 음악이 합쳐 사운드 스컬추어가, 미술과 공연이 손을 잡아 퍼포먼스, 해프닝, 이벤트와 같은 장르가 만들어 지고, 미술과 기술이 융합한 뉴미디어 아트는 금세기 최고의 예술장르로서 새롭게 부상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최근 국내 국내외 학계와 예술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타 학문 혹은 타 장르 간의 융합 현상은 분명 이전과 다른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내면서 그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비단 미술과 음악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복식 그리고 문학과 과학기술에 이르기 까지 그 경계가 확대되고 있다. 사회학과 심리학 그리고 역사학으로부터 젖줄을 대어오던 이전과는 분명 다른 현상을 보여준다.

본인이 최근 한국의 거장 미술가 문신의 조각이 음악과 맺게 되는 관계성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미술과 음악이라는 이종 장르의 경계를 잇는 ‘융합적’요소가 잇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신에게 헌사한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음악가들은 문신 예술에 내재한 ‘화(Unity)’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이를 바탕으로 헌사곡을 완성한 것이다. 헌사곡에서 ‘화(和)’개념의 미학적 변주는 리듬, 음율, 조화, 통일을 이루며 미적 감흥을 보여주는데 이는 문신예술의 핵심인 ‘시메트리(Symmetry)’와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장르간 융합은 비단 예술적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역사, 심리, 고고, 인류학 등의 인문학적 연구성과들과 그 경계를 넘나들며 이종교배를 시도한다.

자연의 법칙이 그러하듯 이종교배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나아가 인문학적 이종교배는 새로운 사상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에 적용될 때 우리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과 청각 상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술적 이종교배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융합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가령 녹색과 적색은 고유색으로서 가장 화려한 색들이고 대비되면서 높은 시각적 울림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뒤섞일 때 가장 혼탁한 색이 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1- 미디어 아트
2- 로에스 댄스 시어터의 <엘렉트라, 가해자>
3- 처용굿

단위로서의 개체적 고유성을 인정할 때 화합과 융합은 비로소 새 생명을 탄생되는 것이다. 장미의 붉은 색이 녹색 이파리를 통해 그 화려함이 상대적으로 극대화 되는 이유는 각각의 개체성이 뒤섞이지 않고 서로의 개체성을 배려하며 양자간에 조화를 이루기 때문인 것과 같다.

앞서 문신조각과 음악에 나타나는 시메트리 구조가 바로 ‘배려’를 기초로 세워진 개념이다. 배려의 미학은 조각 보다 음악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로 다른 음색의 악기들이 배려 하지 않고는 하모니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은 단순히 음악의 차원에서 그칠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이야기다.

지구촌의 반대편에서 날아온 혼혈 대통령의 소식은 이렇게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온다. 그 속식에 실려온 내용은 이제 전 지구적으로 혼성과 융합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융합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미학적 표준이 되어 우리에게 적지 않은 변화를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바로 이 공간에서 가능한 것이다. 알의 부화에도 조건이 갖추어져야 되듯이 작가의 예술관이 꽃피기 위해서는 당대의 시간과 공간을 공명하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제 그 시기가 다가왔음을 목격하고 있다.

◇ 김영호 교수는…

중앙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지낸 후 인물미술사학회, 서양미술사학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국제미술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지난 10월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이 주최한 제1회 ‘문신저술상’에서 <문신의 시메트리 조각에 나타난 음악성>이라는 논문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