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장르 소설들 차용 방식으로 등장… 황석영 비판으로 표면화'엽기' 편혜영 '폭력' 백가흠 대표적… 주류로는 인정받지 못해

이달 초 문학평론가 오창은 씨가 대안지식연구회에 발표한 비평이 문학계 작은 파장을 만들었다. 황석영 작가가 인터넷 매체로 진출해 화제를 모은 <개밥바라기 별>에 대한 비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터넷연재라는 매체환경의 변화가 소설의 서사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문체는 의도적으로 단문으로 끊어 쓴 흔적이 역력하다. 모니터로 읽어야 하는 인터넷 환경에 맞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 변화다.

전개는 끊임없이 사건의 연쇄를 중시하고, 성격화가 약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스타일의 변화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 할지라도 인터넷 환경에서 글을 연재하는 경우 기복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10~20대 독자를 끌어안으며 독자층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단행본도 20만부 이상 팔리며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문단의 중진에게 칼날을 겨눈 젊은 평론가의 비판은 계속된다.

“일종의 대중성을 의식한 ‘전략적 글쓰기’의 흔적이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젊고 어린 독자들’과 소통한다는 명분 아래 ‘대중성에 포박된 작품’을 ‘문학적 성취’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략적 글쓰기는 이전 문학 형식에서 벗어나 특정 독자를 겨냥해 새로운 서사와 문체 방식을 보이는 경향을 말한다. 오창은 평론가는 인터뷰에서 “매체변화와 같은 시대 변화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를 계산해 상업주의 전략을 구상한 것”라고 덧붙였다. 대중성을 의식해 작가의 스타일이 변하고 있으며 ‘전략적인 글’이 생산되고 있다는 말로 풀이 된다.

그는 다만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략적 글쓰기’가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이 모두 대중성과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단서를 달았다.

오 평론가의 황석영 비판으로 표면화됐지만, 사실 2000년대 이후 작가들의 ‘전략적 글쓰기’는 새로운 문학계 흐름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특징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각종 문예지들이 앞 다투어 장르문학을 조명하고, 서사 방식의 경계 허물기 등을 특집으로 구성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문학수첩>이 올 가을호에 ‘소설의 경계, 혼종의 문법’을 특집으로 다뤘고, 2006년 두 번에 걸쳐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란 주제로 이 부분을 소개한 바 있다. <문예중앙>도 2005년 ‘한국문학의 새로운 문법’과 2007년 가을 ‘제 4의 문학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문학 스타일 변화를 소개했다.

3- 황석영
4- 김중혁
5- 서준환
6- 박민규

■ 2000년대 전략적 글쓰기의 탄생

최근의 전략적 글쓰기는 문학시장이 침체하면서 팩션, 추리소설, 판타지, SF, 호러 등 장르소설의 틀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등장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종이매체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줄어들었고, 이것이 최근 작가들의 장르 파괴 시도, 전략적 글쓰기를 만든 셈이다.

장르문학과 대중문화를 소설에 도입함으로써 이전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가 모호해졌다. 이점에 비추어 볼 때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최근 젊은 작가들이 시도하고 있는 ‘2000년대 식 전략적 글쓰기’로 보기 어렵다. 오창은 평론가의 비판은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소설을 썼다’는 맥락으로 읽힌다.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의 문법을 소설 문체에 그대로 도입하는 방식도 선보인다.

특히 SF 장르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준환의 <파란 비닐인형 외계인>과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 <조립식 보리수 나무>를 들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소재나 구조에서 SF의 외양과 거의 흡사하다. 김영찬 평론가는 <문학수첩> 가을호에서 “김중혁의 <펭귄뉴스>, 박민규의 <핑퐁>은 SF적 발상과 상상력을 부분적으로 활용한 경우”라고 분류했다.

윤이형은 <안개의 섬>이나 <피의 일요일>에서 인터넷 게임을 소설에 끌어들인다. 그는 2000년대 대중문화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전통적 문학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오현종은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에서 대중영화의 캐릭터를 비틀면서 풍자한다.

전략적 글쓰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편혜영과 백가흠을 꼽을 수 있다. 편혜영은 엽기, 백가흠은 폭력을 테마로 개성을 드러낸다. 한부분만 집요하게 공략해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분명 전략적인 글쓰기 방식이다. 오창은 평론가는 “이들은 상업주의적 전략적 글쓰기가 아니라 한 주제를 갖고 한 편의 소설집을 구성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전략적 글쓰기가 대중성과 맞물려 발생한 장르는 ‘칙릿’이다.

20~30대 직장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와 성공이 줄거리인 칙릿은 200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중 하나가 됐고, 각종 문예지의 장편소설상도 석권했다.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서유미의 <쿨하게 한걸음>, ‘오늘의 작가상’ 작년 수상작인 이홍의 <걸프렌즈>, 올해 수상작인 고예나의 <마이 짝퉁 라이프>, 올해 ‘세계일보문학상’ 수상작인 백영옥의 ‘스타일’ 등이 대표적이다.

■ 환경 변화가 문학 형식도 바꿔

모든 대중문화장르가 그러하듯 소설 역시 문학시장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전 시대에도 전략적 글쓰기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단편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저작권 문제가 있었다. 미국의 추리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는 당시 미국 신문사에서 영국의 장편소설을 무단으로 게재해 작가인 자신의 생계가 위협받자, 단편소설을 연재하는 방안은 생각해 냈고, 이후 단편소설이 미국 문학의 주요 장르가 됐다.

국내에서도 전략적 글쓰기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70~80년대 일간지의 소설 연재가 성황을 이루며 대하소설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신문 검열 때문에 연재소설은 역사소설이 주를 이뤘고 ‘궁중비화’와 같은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문단이 단편소설 위주로 생성된 배경에는 문단제도와 문학상이 크게 작용했다.

서영인 문학 평론가는 ‘문학의 경계, 시장의 법칙’에서 “한국문학의 단편 집중 현상은 등단, 신인작가의 활동 기반과 국가적 지원체계, 문학상 제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기반과 구조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고 밝혔다.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단편을 통해 등단하고, 단편중심의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그 작품을 모아 작품집으로 묶어내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며, 단편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요 문학상의 심사 방식과 단편 소설에 집중되는 정부 지원 등이 자연스럽게 작가들이 단편 소설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단편위주의 한국소설은 서사와 주인공의 캐릭터보다 문체와 스타일에 치중하는 특징을 보인다. 해외로 번역될 때 이런 장점들이 고스란히 퇴색된다. 더구나 장편 중심의 해외 문학계에선 낯선 존재가 된다.

이처럼 어느 사회나 유행이 있고 이 흐름에서 시대와 소통하는 ‘전략적 글쓰기’의 방식이 있어 왔다. 2000년대 전략적 글쓰기 역시 2000년대 대중문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시도라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서영인 평론가는 같은 글에서 “현재 문학은 확실히 전에 보지 못했던 양식과 문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최근의)혼종적 문학 양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시장의 법칙, 시장의 논리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혼종성을 문학 자율적 진화 내지 변천 과정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 대중화냐? 상업화냐?

전략적 글쓰기가 2000년대 새로운 문학 양상이지만, 주류 장르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이명원 평론가는 장르 혼용과 같은 전략적 글쓰기는 문단 내부에서 주류 장르로 공인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기성작가들이 변했다고 하는데, 변화가 의도적인 전략인지 역량 미달에 따른 미숙함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작가들의 전략적 글쓰기가 ‘과연 새로운 시도인가, 아니면 단순히 장르문학의 차용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장르문학에서 실험했던 방식을 본격문학에서 차용한 것이라 장르문학 작가들은 이런 시도가 굉장히 낡은 것이라고 생각할 듯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전략적 글쓰기를 논할 때 우려스러운 부분은 ‘문학의 상업화’다. 물론 SF, 판타지, 인터넷 용어 등 다양한 장르문학과 대중문화 코드를 차용한 작품이 대중성과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것은 아니다. 또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전략적 글쓰기를 선보인 작품이 아직까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작가들의 전략적 글쓰기는 출판사의 상술과 맞물려 ‘문학의 얼굴을 한’ 문화상품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일본 대중소설을 주로 번역, 출간하는 A출판사의 경우 최근 10대, 20대, 30대 작가가 차례로 쓰는 칙릿(Chick Literature의 약자. 젊은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트렌디 소설)을 기획, 신인 작가들을 섭외하고 있다. 집필을 제의받은 한 작가는 “출판사 측은 자사에서 출간한 소설이 거액의 영화 판권으로 팔렸다는 말을 계속 했다.

그리고 이 작가와의 공동 집필을 제의했다. 이제 작가활동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앞으로 이런 취향에 맞춰 가볍게 작품을 써야 하냐?”고 되묻기도 했다. 같은 제의를 받았다는 또 다른 작가는 “제의를 받고 잠시 고민했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고민은 한결같이 “읽히지 않는 문학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작가들의 물음에 문학평론가들은 “무엇을 위해서 읽혀야 하느냐”를 생각할 때라고 말한다. 많은 독자가 읽는 ‘대중성’은 추구하되, 자본에 종속되는 ‘상업성’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전략적 글쓰기는 새로운 한국 문학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전략적 글쓰기가 하나의 스타일,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 2000년대 전략적 글쓰기가 한 때 유행이나 문학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