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마차용품 제작부터 최상의 재료와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명성

오랜 전통과 뛰어난 기술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명품 브랜드는 고유한 철학과 깊은 정신을 담고 있다. <명품의 정신> 코너는 오늘날 ‘고가의 상품’을 대체하는 말이 되어버린 ‘명품’의 참뜻을 되새기고, ‘자본’이 아닌 ‘사람을 향한 존중’을 우선하는 명품 기업의 정신을 높이 평가, 명품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폭넓게 전하고자 한다.

소개되는 명품은 단순히 이름이 많이 알려지거나 고가 위주의 브랜드가 아닌,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물건에 대하여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

6. 로얄 코펜하겐, 도자기, 그릇, 7. 겔랑 - 향수, 8. 버버리 - 트렌치 코트, 9. 랑콤 - 화장품, 10. 에르메스 - 가죽제품

‘명품은 왜 비쌀까?’라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은 답은 두 가지다. ‘좋은 재료’가 첫 번째이고 ‘광고비’가 두 번째 답이다.

지금까지 여러 명품을 살펴본 결과 ‘광고비’는 적절한 대답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좋은 재료’가 이치에 맞는 답이 될텐데, 어떤 명품이 어떤 원료를 사용하는지를 속속들이 알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그것만으로는 높은 가격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에르메스는 ‘최고의 재료’에 ‘장인정신’이 더해진 것으로, 명품 중에서도 ‘원조’로 꼽힌다.

에르메스의 특징 중 으뜸은 ‘가죽’이다. 에르메스의 가죽이 뛰어난 이유는 에르메스가 다른 업체보다 우선적으로 가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가죽공급업자들이 갖고 있는 상품의 상위 10%를 선택하게 되는데 에르메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이유는 에르메스의 높은 구매 가격과 현금결제 때문이다.

악어가죽의 경우 호주의 특정 악어 농장으로부터 공급을 받는데 싸움을 많이 하는 악어의 가죽은 스크래치가 많고 피부조직이 고르지 않아 선호하지 않는다. 켈리 백은 악어의 배 부분 가죽으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방 하나를 만들기 위해 두, 세장의 악어가죽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에르메스가 원하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에는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한 해 동안 악어가죽 제품이 생산되지 않을 때도 있다. 소가죽의 경우 균형감을 위해 양면이 균일한 등뼈를 중심으로 커팅된 가죽을 사용한다.

결국 한 개의 가방에 한 마리 소의 가죽이 사용되는 셈이다. 이렇게 선택된 가죽들은 에르메스 가죽 아뜰리에로 옮겨져 또 한 번의 품질 검사를 받게 된다. 견고성 측정을 거쳐 상처, 구멍, 주름, 기생충의 흔적 등 세밀한 검사를 통해 가죽의 등급과 용도가 결정되면 장시간 숙성을 위해 전용 보관실로 이동된다.

에르메스가 유명한 이유는 ‘좋은 가죽’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가죽을 완성시키는 손길이야말로 최고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

‘비상하면서도 민첩한 손의 움직임’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도구가 있어도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에르메스는 ‘사람의 손’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에르메스의 필수 3요소는 가죽을 꽉 물어서 자국을 남기는 그리드, 바늘이 들어갈 구멍을 만드는 아주 얇은 다이아몬드형 송곳, 한 쌍으로 이루어진 뭉툭한 바늘인데 이러한 도구들과 장인의 손길이 만나 비로소 균일한 스티치와 정교한 바느질이 완성되는 것이다.

1- 가죽 작업장
2- 새들 스티칭 작업과정
3- 장인의 작업과정
4- 새들 스티칭을 위한 도구들

150년 전과 동일한 도구들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도구들은 만년필처럼 사용하는 장인의 스타일대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에는 안장과 마구 제작으로 시작된 에르메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밀랍을 입힌 실과 양 끝에 달린 바늘을 통한 바느질로 두 장의 가죽은 견고함 그 자체가 된다.

가방, 벨트, 장갑, 시계의 스트랩 등 가죽제품에 이 기술이 사용되는데 그 중에서도 손잡이, 거셋(덧천), 잠금장치, 포켓과 같이 튼튼함이 더욱 많이 요구되는 부분에 사용되며 2.5cm당 적게는 5번, 많게는 14번의 스티치가 이루어진다. 이 스티치를 위한 수작업은 수개월의 훈련과정을 거친 장인의 손과 특정한 도구에 의해 완성되며 이는 ‘에르메스의 아이덴티티 코드’로 자리 잡기도 했다.

실에 밀랍을 입힌 것은 방수처리와 강화기능, 부드러움을 위한 것으로 뛰어난 치수안정성으로 유명한 리넨 실위에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습한 일본에서도 늘어나지 않고 춥고 습한 노르웨이에서도 줄어들지 않아 어떠한 기후에도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이 실의 색상은 자그마치 백여 가지. 150m에서 600m에 이르는 다양한 컬러와 길이의 실에는 모두 색상번호가 달려있다.

에르메스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3년간의 에르메스 가죽장인 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만 하는데 현재 이렇게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과한 에르메스의 장인들은 500여 명으로 현재는 80여 명의 예비 장인들이 에르메스 장인 학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이들의 법정 근로시간이 33시간이고 가방 한 개 당 걸리는 제작시간이 18시간이니 장인 한 사람이 일주일에 만들 수 있는 가방의 개수는 두 개도 되지 않는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에르메스 가죽 제품에는 제품을 만든 장인의 사인 이외에 제작년도와 데스크 번호가 새겨지는데 철저한 AS로도 잘 알려진 에르메스의 비밀이 여기에 숨어있다.

고객이 수선이나 부분 교환을 원할 경우 바로 이 데스크 번호가 이용되는 것. 제품에 적힌 데스크 번호는 정확한 제품의 탄생 지점을 말해주는 것으로, 일치하는 번호의 데스크로 옮겨져 제품을 만들었던 장인에 의해 수선이 이루어진다.

최초의 제품 제작 시 차후에 있을지 모르는 수선을 위해 연도별, 종류별, 색상별로 가죽을 보관하는데, 부분 교체시 제품에 새겨진 제작년도를 보고 가장 비슷한 시기의 가죽을 사용한다.

제품이 생산되는 프랑스 이외의 국가에서 제품 수리를 의뢰할 경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는데 이젠 이러한 불편까지도 줄일 수 있게 됐다. 바로 국내의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 프랑스에서 건너온 에르메스의 장인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1837년 마차를 위한 용품 제작으로 ‘당대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가죽 제품의 역사를 이뤄온 에르메스. 최상의 재료와 최고의 장인정신을 우선시하는 에르메스의 철학에는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중심의 사상이 담겨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연륜이 쌓인 한 사람보다 젊고 새로운 인력을 선호하는 현대 사회의 추세와 반대되는 이러한 마음가짐이 둘도 없는 최고의 명품을 탄생시켰다. ‘오랜 역사와 명성’을 대표하는 에르메스. 시간과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신과 세월이 갈수록 깊어지는 장인의 손길이 이루어 낸 결과물은 만물이 ‘디지털화’되는 현대 시대에 더욱 빛을 낸다.



글·최유진 미술세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