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은 선진국 관문이자 국가 경쟁력"한국은 사적영역 발전에 비해 공공영역은 크게 낙후돼국가 주도로 국민 삶의 질 개선 위한 환경정비 서둘러야

윤종영(45) 한국공공디자인학회 부회장은 직함이 무척 많다. 현재 교편을 잡고 있는 한양대에서는 디자인학부 교수로서 공학기술연구소 공공디자인연구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또한 이번 학기에 신설된 행정자치대학원 공공디자인행정학과의 초대 학과장도 맡았다. 대외적으로는 한국공공디자인학회 부회장과 한국공공디자인지역지원재단 이사장이라는 중량급 직함을 갖고 있다.

본업인 교수직 외의 모든 직함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공공디자인’이라는 글귀다. 짐작대로 윤 부회장은 요즘 공공디자인의 전도사를 자임하며 모든 열정을 불사를 태세로 뛰어다니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면 공공디자인의 일대 혁신이 필수 전제조건이라고 힘줘 말한다. 공공디자인 정책을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고 부르기까지 할 정도다. 19일 오전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조찬간담회를 막 마치고 나온 그를 만났다.

■ 대국민 서비스 제고 차원 접근

-공공디자인은 다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들린다.

“디자인에는 상업적 성격의 디자인과 공공적 성격의 디자인이 있다. 전자가 개인 혹은 기업이 주체가 되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어 삶의 질 증진을 위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과거 개발시대의 국가 행정은 양(量)과 기능의 충족에만 국한됐지만, 이제는 질(質)과 창의성의 행정을 펼쳐나가야 할 때다. 공공디자인의 목적은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 좀 더 쾌적하고 아름답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은 공공영역에 대한 선택권이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국가가 공공디자인 정책을 펴야 하는 이유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디자인 진흥책을 펼치는 사례가 많은가.

“사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공공디자인이 성숙한 서유럽 국가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이 함께 발전해 왔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방정부는 물론 기업이나 시민들까지 주체적으로 공공디자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압축성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나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각자가 먹고 사는 데 노력해 사적영역은 그럴 듯한 수준이 됐지만 공공영역은 여전히 낙후한 상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의 환경적 차이가 가장 극심한 나라로 손꼽힐 정도다.”

-공공디자인이 일정한 성과를 낳으려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여러 전략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랜드마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런던에는 타워브리지가 있고, 시드니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또 파리에는 에펠탑이 있으며, 뉴욕에는 타임스퀘어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외국인들의 뇌리에 남는 랜드마크가 없다. 랜드마크의 중요성은 외국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런던 템즈강에 놓여진 타워브리지의 경우, 다리를 건너는 사람보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훨씬 많다. 교각 고유의 기능 충족은 물론 관광객 유치 등의 ‘플러스 알파’ 효과를 낳는 것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역시 원래 공연시설이지만 그 이상의 막대한 무형적 가치를 창출한다. 랜드마크를 별도로 큰 돈을 들여 건설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지어야 할 건축물이나 구조물, 시설물을 기왕이면 랜드마크화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 요코하마 사례 본받을 만해

-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이 공공디자인에서 정평이 나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유일하게 공공디자인 우수국가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요코하마는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10대 도시에 들 정도다. 요코하마시는 40여 년 전인 1960년대 초반 도시환경 개선으로 도시발전을 이룬다는 시정목표를 세운 이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공공디자인 시책을 펼쳐왔다. 그 결실은 매우 놀랍다. 요코하마에 처음 온 방문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재방문 의향이 거의 100%로 나타났다. 저마다 방문 목적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요코하마의 이미지는 아름답고 편리하고 쾌적하다는 것이다. 그 덕에 요코하마 방문객은 1년에 무려 4,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국가나 도시가 고객, 즉 시민과 방문객을 만족시키려면 공공디자인 개선은 필수적이다.”

-공공디자인 관련 법률의 입법이 추진돼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어떤 단계인가.

“공공디자인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최근 정립되고 있지만, 사실 공공디자인에 관계된 법령은 이미 존재한다. 다만 각 정부 부처 소관으로 애매하게 흩어져 있어 일선 자치단체가 법령 해석과 사업 추진에 많은 혼선을 겪는 실정이다. 따라서 관련 법령의 조정 및 통합이 필요한데, 이를테면 특별법 형태의 상위법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자치단체들이 걸림돌 없이 원활하게 공공디자인 시책을 펼칠 수 있다. 이런 배경에 따라 최근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4개 부처 공동으로 법률검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 상황이며, 내년 여름쯤에는 국회에 법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모든 나라는 고유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가진다. 선진국을 배울 필요도 있겠지만 우리의 공공디자인은 나름의 독자성과 개성을 가져야 할 텐데.

“국가나 도시의 특성, 문화, 민족성 등과 공공디자인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게 사실이다. 우리도 고유의 공공디자인을 개발해야 한다. 다만 지역 특성을 알리는 데 너무 치중하다가 자칫 ‘유치한’ 결과물을 낳을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일본도 유럽의 앞선 공공디자인 사례를 면밀히 살펴보고 벤치마킹한 끝에 고유의 정체성을 살린 공공디자인을 도입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공공디자인 담당 공무원들이 해외시찰 등으로 견문을 넓히고 안목을 높일 필요가 있다. 즉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공공디자인 전문 디자이너를 대거 육성해 공직 진출을 유도해야 한다.”

■ '컬처노믹스'로 연계돼 국부 창출할 수도

윤 부회장은 지금 ‘큰 꿈’을 꾸고 있다. 한국을 세계 공공디자인 산업의 허브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사실 공공디자인은 전 세계적으로 서유럽 일부 국가가 앞서 있을 뿐, 그 외 대부분 지역은 낙후돼 있다.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미개척 시장이 크다는 것이다.

“공공디자인의 파급효과는 단지 삶의 질 개선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문화적 자산으로 승화해 부(富)를 창출할 수 있다. 문화가 경제력으로 연결된다는 이른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가 바로 그 개념이다. 우리도 이를 주목해야 한다. 가령 한국이 유럽과 일본의 선진 공공디자인을 소화해 다시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세계 공공디자인 산업의 중심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우리가 공공디자인의 경쟁력을 하루빨리 갖춰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 윤종영 부회장은…

독일 에센국립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독일에서 아우디자동차 연구소 연구원, 삼성자동차 연구소 자문위원, NRW주정부디자인센터 컨설턴트를 역임하며 공공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적잖이 수행하기도 했다. 1998년 귀국해 한양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인천국제공항 내곽도로 도로표지판(트래픽사인) 디자인, 새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