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능력은 곧 국력, 국익 위한 국정원 개혁 앞장서야

국정원의 직무범위와 관련된 국가정보원법 개정문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달 초 국정원의 기능 및 역할을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이후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찬반 입장을 극명하게 표출하면서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 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안 발의자는 “세계 각국의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입법취지를 밝히고 있고 보수진영에서는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이라며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지만, 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위험하고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 국정원의 직무는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에 한정돼 있지만, 개정안에서는 국정원의 정보활동의 범위를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중대한 재난과 위기를 예방·관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 그리고 산업기술에 대한 보안정보에 이르기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국내 정보 수집의 범위를 국가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보 등에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야당과 일단의 시민단체들은 해당 내용이 국정원의 정치사찰을 통한 정치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군부권위주의시절의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자행되었던 불법적이고 부적절했던 정치적 탄압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1994년에 국정원의 직무를 엄격히 제한한 것은 정치사찰이나 권한 남용에 따른 인권침해 등의 폐해를 막고 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한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오늘날 엄격한 통제위주의 직무규정으로 인해 국정원이 수시로 법적 정당성 시비에 휘말리는 등 안보현실에 걸맞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안보환경이 크게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속한 세계화와 정보화에 따른 다문화사회로의 진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질서의 재편, 체제 위기에 봉착한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공세 등 우리의 국가안보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전을 소홀히 수행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세계 주요 국가 정보기관들은 국익 증진을 위해 각기 자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강화를 위한 정보전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정보전은 외교 및 군사 등 전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에너지, 자원, 첨단기술 등 새로운 영역으로 크게 확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정치권이 이분법적 시각으로 대립각을 세우며 정쟁만 일삼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야가 진정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위한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국정원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지식정보화시대에 정보능력은 곧 국력이다. 그렇다고 정보능력 강화를 빙자하여 국정원이 월권과 인권침해를 자행할 만한 소지는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일환 (한양대 교수, 정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