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기업 작품에 매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역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논쟁으로 뜨거웠던 2006년, <순정만화>, <타이밍> 등을 포털에 올려온 만화가 강풀은 연재를 하루 쉬고 ‘FTA를 말하다’라는 만화를 올린 적이 있다.

그는 한미 FTA를 작고 여려서 엄마의 보호가 필요한 아이와 옆집에 사는 덩치 큰 고등학생과의 ‘맞짱’에 비유하며 신자유주의의 실상을 폭로, 네티즌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국내 예술계 역시 이러한 비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단 해외 유명 작품의 무차별적인 내한이라는 범주를 넘어, 이제 막 싹을 틔운 예술이 자라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조성되어 있는가를 보면 대개의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최근 몇 년 사이 변화하고 있는 예술지원방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매우 반갑다.

과거에는 제작비 지원 혹은 공모전을 통해 지급하는 상금처럼 일차원적인 지원방식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예술가가 온전히 작품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방식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같이 예술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들이 두 발로 온전히 설 수 있게 육성하는 방식을 ‘아트 인큐베이터’라 부른다.

문광부의 든든한 지원으로 올해 출범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재교육원은 미술, 음악, 무용 등의 예술 영재들을 키우는 ‘아트 인큐베이터’다. 영재교육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예비학교가 일정한 등록금을 받고 예술 새싹을 교육했던 것과 달리 영재교육원에서는 전액 장학금이 지원된다.

이미 예비학교의 교육방식은 피아니스트 김선욱, 손열음, 임동혁, 유니버설의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황혜민과 엄재용, 뮤지컬 배우 오만석, 극작가 겸 연출가 장유진과 김태웅 등 수많은 예술가를 길러내며 ‘아트 인큐베이터’로서의 수준급 교육방식에 대해서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기업들의 지원방식도 특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마이너리티에 머물렀던 ‘인디밴드’에 대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2년째 이어오고 있는 KT&G 상상마당은 영화육성프로그램에서도 굵직한 결과물을 배출해내고 있으며 사진과 디자인으로도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2005년 온라인에서 태동할 당시만 해도 커뮤니티 수준에 머물렀던 움직임은 홍대 앞에 상상마당이란 복합문화공간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연강홀을 재개관하면서 ‘아트 인큐베이터’를 표방했던 두산아트센터와 신춘문예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르코예술극장의 행보도 공연 전문가들의 기대와 눈길을 모은다.

쌈지를 시작으로 열렸던 미술인을 위한 국내 창작스튜디오의 역사는 올해로 10년을 헤아린다. 쌈지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창작스튜디오의 문을 닫지만 그동안 창동 창작스튜디오, 난지 창작스튜디오, 장흥 아뜰리에, 청계천 창작스튜디오 등이 문을 열어 미술인들을 위한 작업 공간은 한층 더 늘었다.

이들은 단지 무료로 작업 공간을 대여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작가들의 작품을 발로 뛰며 알리는 역할까지 자처하며 ‘적극적인’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 다소 달라진 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예비학교나 쌈지의 창작스튜디오가 보여 준 것처럼 ‘아트 인큐베이터’안에서 틔운 싹이 결국 국내 예술계 전반을 풍요롭게 한다는 선순환 과정에 이들은 주목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창작육성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수현 피디는 “그동안 메세나가 일차원적이고 고급예술 편향적이었다면 세분화되고 현장 전문가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보다 현실적인 작업이 되고 있다”고 ‘아트 인큐베이터’의 의의를 설명했다.

서울보다는 많이 열악한 실정이지만 지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부산의 한 재활용업체가 내준 빈 공장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아트팩토리 숨’이란 창작공간으로 태어났다.

그 동안 미술인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음악과 영상, 문예창작으로까지 확대한 다원 예술을 아우른다. 예술 장르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장르 간의 ‘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충북 청주에 자리한 하이브 캠프 역시 미술, 영상, 문학 등의 예술가들이 모인 창작공간이다. 다원예술이라는 점 외에 국내 작가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예술가들도 함께 작업하는 공간이란 점이 특징이다.

지난 11월 14일부터20일까지 하이브 캠프는 지난 1년간 생활한 국내 작가 9명과 3개월 동안 레지던시에 참여한 아시아 작가 9명의 창작 결과물과 그들의 작업실을 개방해 ‘선물’을 주제로 한 작품의 전 과정을 선보이는 행사를 열어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다.

최근 문광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아트 인큐베이터’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월 문광부는 대구의 옛 KT&G 연초장, 전남 신안 염전, 경기 포천 폐채석장 등 5곳을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조성 사업’의 2009년 시범사업지로 선정했다.

특히 대구의 옛 KT&G 연초제조창은 예술 창작 인큐베이터로, 포천의 폐채석장은 창작 스튜디오로 조성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문화예술지원 전담기관으로 특화되는 서울문화재단은 192억으로 내년 예술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그 지원 내역에는 창작욕구를 불어 일으키는 환경을 적극 조성해 예술가 양산에 기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남산창작센터, 청계창작스튜디오를 비롯한 5곳의 창작공간을 활성화하고 연희동에 창작스튜디오, 문래와 독산동에 아트팩토리 조성, 신당에 창작아케이드, 남산드라마센터, 홍대복합센터 등 6곳의 '아트 인큐베이터'를 내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하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 11월 24일에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분명 바람직하지만 태생만큼이나 ‘아트 인큐베이터’라는 공간이 풍만한 예술혼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가꾸어 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