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증가 입지 넓혀…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걸음마 단계청계창작스튜디오- 공모 통해 3팀 선정 1년간 지원난지창작스튜디오- 출판물 발간 작가들에 힘실어 줘쌈지스페이스- 1998년 시작 10기 활동 끝으로 문닫아

젊고 유망한 미술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과거에는 공모전을 통한 데뷔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신진작가 발굴 공모전을 통해 미술계에 첫 발을 디딘 작가들은 각 화랑과 박물관의 신진작가 지원 전시에서 그 가능성을 검증 받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세계 무대에서 국내 미술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창작스튜디오’가 새로운 창작 지원·육성 프로그램으로 각광 받고 있다.

1998년 쌈지스페이스에서 만든 “쌈지스페이스스튜디오’를 시작으로 영은미술관의 ‘영은창작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창작스튜디오’와 ‘고양창작스튜디오’, 금호미술관의 ‘금호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창작스튜디오’, 가나아트센터의 ‘장흥아뜰리에’,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청계창작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해를 거듭할수록 창작스튜디오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를 통한 신진 작가들의 데뷔도 두드러지면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창작스튜디오는 작가들의 자유로운 작업환경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한적한 경기도와 서울 근교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에는 복잡한 서울 도심 속에도 특색 있는 창작스튜디오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도심 내 창작스튜디오들은 유리한 접근성을 바탕으로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예술과 일상이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이는 작가들과 작품, 대중과의 벽을 허물고 보다 친숙한 미술로서 신진 작가들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청계창작스튜디오’는 서울시 문화, 디지털 청계천 프로젝트 및 시각예술 분야의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지난해 12월 청계천 3가에 터를 잡아 1개의 전시갤러리와 창작 공방 3곳을 갖췄다.

공방과 전시갤러리를 통해 시각예술에 대한 다양한 전시를 기획, 시행함으로써 입주작가뿐만 아니라 일반 작가들에게도 창작·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공모방식을 통해 3팀(명)의 작가를 선발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1년간 지원하는 스튜디오에는 현재 일상의 잔상을 멀티미디어로 풀어내는 ‘김영미’ 작가와 인간을 위한 아날로그 기계를 조각하는 ‘남 지’ 작가, 청계천-P3 Project를 준비 중인 부부작가 ‘안지미’, ‘이부록’ 등 1기 입주작가 4명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전시와는 달리 청계천을 소재로 확장된 개념, 다양한 시도를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 잊혀졌던, 스쳐 지나갔던 청계천 일상의 단면과 새로운 청계천을 예술작품으로 생생히 전달한다.

김영미 작가는 이와 관련해 “스튜디오가 위치한 청계천은 금속, 전기, 전자, 공구 등의 상점들이 밀집한 곳으로 오래되고 낙후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곳곳이 고유한 문화를 간직한 채 보존돼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이는 도시를 소재로 작업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가장 이상적인 작업공간이자 독특한 지역적 특수성이 작업의 모티브가 돼주고 있다”고 청계창작스튜디오 입주 작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청계천 주변 광장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처음에 미술 작품을 만든다고 작가들이 왔을 때는 어리둥절했는데 막상 전시를 보니 이런 동네에서도 저런 미술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살면서 미술을 비롯한 문화 예술이 우리네 생활과는 동떨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쯤 지난 지금은 미술 작가나 전시회라는 것이 익숙하기까지 하다”고 감회를 밝혔다.

청계창작스튜디오와 더불어 또 하나의 도심 속 작업장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버려진 난지도를 리모델링 해 숙식이 가능한 28개의 작업실과 난지갤러리, 야외작업장, 야외조각공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2006년 제1스튜디오가 문을 열고, 이어 2008년에 제2스튜디오가 추가로 개관했다. 지금까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를 거쳐간 작가들은 김호준, 노정하, 박소영, 송지인, 심정은, 이윤미, 정명국, 최성록 등 1기 작가 17명과 김순임을 비롯해 박대성, 정상현, 김영섭, 이배경, 정직성, 박종호, 이원철, 주도양, 권정준 등 2기 작가 17명으로 총 34명의 작가들이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얼마 전 3기 입주작가 27명을 모집하는 공모에는 1,215명의 지원자가 몰려 약 45:1의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권기범, 금혜원, 나 현, 변웅필, 성유진, 오상택, 이강원, 이진혁, 이형욱, 임선이, 조병왕 등 27명의 3기 입주 작가들이 2009년 10월 31일까지의 활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중이다.

실제로 입주 작가들의 전시활동과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여타의 창작스튜디오와 비슷하지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출판물 발간을 통해 작가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차별화된 특징이 눈에 띤다.

이곳에서는 입주 작가들의 학술, 전시, 홍보 행사에 필요한 자료집, 도록, 리플릿, 소식지 등의 출판물을 직접 발간해 이를 국내외 주요 미술관, 갤러리, 창작스튜디오, 컬렉터 등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작가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2기 입주 작가로 활동한 이배경 작가는 “무엇보다도 1년 동안 작업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들에게 큰 경제적 도움이 되고 있고, 여러 분야에서 작업하는 작가들과의 유대와 더불어 작업진행 과정에서 이뤄지는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야 말로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다”며 “입주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방향을 돌아보고 새로운 기법이나 주제를 시험하거나 자신의 작업을 심화 시키는 기회로 창작스튜디오 입주기간을 활용한다”고 전했다.

한편 암사동 쌈지사옥에 최초로 창작스튜디오의 개념을 적용한 ‘쌈지스페이스스튜디오’는 벌써 10기째 입주 작가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쌈지아트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98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무상 제공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한 것이 효시가 돼 2000년에는 지금의 홍대로 이전, 쌈지스페이스를 개관하고 작가 스튜디오 10곳과 전시장, 공연장 등의 시설을 마련했다.

쌈지스페이스스튜디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1년 입주작가와 외국인 작가나 국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작가, 해외 레지던시 기관 교류작가 등의 3개월 단기 입주작가로 구분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특히 2002년부터 시작한 해외 레지던시 기관과의 교류는 현재까지 이어져 매년마다 호주 아시아링크센터를 통해 호주 작가 1명을 단기 입주프로그램에 초대하고 있다.

해외 작가들과의 교류가 더욱 활기를 띄며 2004년에는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예술아카스쿨과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의 작가를 초청했고, 2005년 들어서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해외 큐레이터들도 초청해 한국 작가들의 활발한 해외진출을 위한 초석을 제공하기도 했다. 베이징의 레드게이트, 도쿄의 도쿄 원더사이트, 스페인 앙가르 등과의 교환 레지던시 프로그램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랜 만큼 10년 동안 쌈지스페이스스튜디오에서 배출한 작가들 가운데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라선 경우도 많다.

이형구 작가를 비롯해 낸시랭, 한젬마, 정연두, 함경아, 조 습, 함 진, 플라잉시티, 잭슨 홍, 이수경, 박찬경, 김홍석, 장영혜, 고낙범, 진기종, 구동희, 박미나, 송상희, 이주요, 김창겸, 양혜규 등 이름만 들어도 작품이 떠오르는 스타급 작가들이 쌈지스페이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최정화 작가와 이 불 작가역시 국내외에서 전시를 개최할 때 쌈지스페이스의 도움을 받아왔고, 지금까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신진 작가들을 위한 아낌 없는 지원과 미술계에 일궈놓은 무수한 공을 뒤로한 채 쌈지스페이스는 2009년 3월 10기 입주 작가들의 활동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초창기부터 쌈지스페이스의 운영을 총괄해온 김홍희 현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정부가 지원하는 대안공간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고 상업적인 미술시장도 발전한 만큼 10년 간의 보람을 안고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며 “쌈지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쌈지나 헤이리 쌈지아트컬렉션 등이 계속해서 쌈지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고 쌈지스페이스 폐관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계속해서 미술계 안팎의 관계자들은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창작스튜디오들이 증가하면서 입지가 굳혀지는 듯 보이지만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걸음마단계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청계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 작가' 展

청계창작스튜디오는 개관 1주년을 맞아 1기 입주 작가들과 함께 한 해 활동을 정리하는 전시를 갖는다. 2008년 11월 28일부터 2009년 1월 10일까지 청계창작스튜디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1기 입주작가>전시를 통해 독특한 시선으로 해석한 청계천변의 다양한 모습들을 선보이는 ‘남 지’ 작가와 부부작가 ‘안지미·이부록’, ‘김영미’ 작가를 만나 청계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작가로서 그들이 걸어온 1년의 결실을 되짚어봤다.

5- 기계를 통해 시각예술의 사회문화적 소통을 이끌어 내는 작가 '남 지'

“1년 동안 빠듯한 일정으로 작업이 진행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1기 입주 작가라서 어깨가 더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전시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행사에 많이 참여해야 했죠. 그렇지만 서울시 한복판에서 그것도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마냥 구름에 떠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작업실도 호텔에 위치해서 새로웠고요. 한 해 동안 즐겁게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작품 세계를 넓혀나갈 생각이에요. 작가와 작품, 화랑과 관객이 모두 함께 호흡하는 전시문화가 하루빨리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6- 현대사회의 공적언어, 픽토그램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는 부부작가 '안지미·이부록'

“예전에는 청계천이란 공간이 주로 작품 재료를 구하기 위해 찾았던 곳이었죠. 이제는 이곳이 작품창작의 공간이자 생활터전이 돼버렸어요. 게다가 청계천은 토박이들이 오랫동안 살면서 쌓아온 고유한 문화가 숨쉬는 곳이지만 곧 떠나야 하는 서민들의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희는 환경과 그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작업의 소재가 되고, 그 안에서 사회적인 큰 흐름을 읽어가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침체돼 있지만 과거엔 가장 역동적이었던 청계천이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작업장인 셈이죠. 앞으로도 기회와 시간과 환경만 주어진다면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느낌을 느끼며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7- 멀티미디어를 가지고 다양한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가 '김영미'

“작가는 우선 작업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고 특히 작가의 아웃풋인 전시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절실하죠. 기존 작가들은 전시 한번 하려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에요. 하지만 창작 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전시 공간을 지원해줄 뿐만 아니라 작품 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저 같은 주부 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1년이라는 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면 작가로서의 역량을 백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광장시장 프로젝트는 거시적인 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는데 다음에는 좀 더 미시적인 공간,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까지도 탐색해 볼 계획이에요.”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