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신현수 등 젊은 아티스트 '한예종 파워' 과시… 예술영재교육원 출범

최근 젊은 아티스트들이 국제 콩쿠르를 휩쓰며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에는 또 하나의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재학 중인 순수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국제 콩쿠르’ 결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이 격년으로 개최되는 이 콩쿠르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바이올린 부문에서 ‘세계 5대 콩쿠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망있는 대회다. 신현수는 이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상과 솔로 리사이틀상도 수상하며 겹경사를 맞았다.

지난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에 이어 국내 교육만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가를 키워낸 한예종의 쾌거이기도 하다.

■ 예비학교, 글로벌 예술가들의 요람

어린 나이에 세계 예술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급속한 성장은 예비학교를 운영하며 예술영재들을 육성하고 어린 예술영재들을 특별 전형으로 뽑는 한예종의 교육 시스템에 기댄 바 크다. 신현수도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던 당시 특별 전형으로 한예종에 입학해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에게 실기 중심의 교육을 받은 경우다.

특히 한예종이 개교와 함께 운영해온 예비학교는 영재들의 예술적 잠재력을 개발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교육 과정으로 최근 문화예술 분야의 ‘한예종 파워’의 원천을 이룬다.

한예종 예비학교는 사실상 국내의 예술영재교육으로는 유일한 전문기관이었다. 2001년 영재교육진흥법이 마련됐지만 영재는 아직까지는 수학·과학 분야의 영재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예비학교의 존재는 일찍부터 그 재능을 계발해야 하는 예술영재들에게는 최고이자 유일한 기회였다. 예비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의 학생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중3 이상의 학생들 중 특별히 예술적 재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은 학사과정으로 뽑아 빠르면 16세부터 대학 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한 한예종 관계자는 오늘날 한예종의 성공 배경에는 재능이 뛰어난 어린 학생들의 발굴과 지속적인 육성이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문화관광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예종이 맡아 운영하던 예비학교는 우수한 교수진으로부터 수준 높은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학기당 100만 원이 넘는 학비로 부담을 주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부와 문광부는 3년 전부터 보다 공공성을 띤 예술영재학교 설립을 추진하며 기존의 예비학교를 보완하는 제도를 마련해왔다.

이때 문광부는 한예종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원장 이영조)을 개원해 음악·무용·미술 등 분야별 예술영재 판별 도구를 개발하고, 창의성 함양을 중심으로 한 교수·학습법, 영재교육 정책, 지원 시스템 개발 등 예술영재학교 설립을 위한 기초연구를 시작했다.

이스라엘·미국·러시아 등을 영재교육 선진국에 가서 교육체계에 관한 정보와 운영방식을 고민해온 이영조 원장은 영재들을 어릴 때부터 교육시킨다는 것과 전액 국비로 지원한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3- 파리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신현수
4- 피아니스트 임동민

■ 예술영재교육원 출범, 영재 육성 본격 시작

현재 운영 중인 예비학교는 예술영재교육원으로 전환되어 정부가 지원하는 최초의 예술 분야 영재교육원이 된다. 예술영재교육원은 개인레슨에 따른 사교육비 부담을 더는 효과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나 주말, 방학기간에 교육하기 때문이다. 한예종 교수와 강사진이 직접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예비학교 시절과 다르지 않다. 학생 100명에 강사진은 150여 명으로 학생 수보다 강사진의 수가 더 많아 1대1 교습도 가능하다.

기존 예비학교와 다른 점은 교육비를 전액 국고에서 지원한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재능은 있어도 형편이 어려워 전문교육을 받지 못했던 영재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예비학교가 일주일에 1시간 실기 위주로 교육해온 반면, 영재교육원은 일주일에 2~3번의 교육을 통해 전공을 받쳐주는 기초과목까지 함께 가르친다는 점도 다르다.

이에 따라 창작이나 테크닉의 연마뿐 아니라 문학사, 예술이론, 철학 등 인문학과 음악이나 영화 등의 감상교육도 함께 이루어진다. 이 같은 변화는 예술 분야 사교육을 완전히 흡수한다는 장점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논의를 거쳐 지난 9월 문을 연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은 첫 번째 단계로 우선 미술 분야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내년에 선발될 타 분야의 인원을 제외하고 미술 영재 24명을 선발한 교육원 측은 매주 토요일 한예종에서 수업을 진행 중이다. 음악(20명)은 내년 1월, 무용(30명)과 전통예술(26명) 분야는 내년 2월 선발해 3월부터 1년 과정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내년 나머지 3개 분야의 선발을 앞두고 있는 예술영재교육원 측의 반응은 여전히 신중하다.

예비학교의 정원이 400명이었던데 반해 100% 국가지원인 영재교육원의 선발인원은 예산 상황상 100명으로 한정돼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예비학교에서 영재교육을 해왔던 음악이나 무용 분야와 달리, 이번에 처음 모집한 미술 분야의 경우 선발 기준과 전형 준비에 대한 문의가 폭주해 과열 양상마저 빚은 바 있다.

특히 기존 예비학교 학부모들은 아이가 영재교육원에 선발되지 못할 시 계속 교육을 받지 못하기 됐기 때문에 아쉬운 상황이다. 한 교육원 관계자는 “‘영재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어린 아이들이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고 또 경쟁에서 탈락할 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한 아이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새로운 교육 시스템에 관한 부분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조심스런 의견을 밝힌다.

새롭게 출범하는 예술영재교육원이 예비학교가 거둔 성과 이상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예술의 목적이 콩쿠르 우승 등의 ‘성과’에만 맞춰진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인식이다.

영재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재능있는 아이들을 더 일찍 발굴, 육성해 그 재능을 더욱 꽃피우게 도와주는 제도적 도움에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게 될 한국영재교육원의 신중한 태도는 이러한 교육적 고민에서 비롯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