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다리 한쪽 잘린채 보호소로 뛰어들어 미국입양 후 새삶 아주 운좋은 경우

작년 12월 한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경기 포천시의 유기견 보호소에 생후 3개월된 강아지 한마리가 뛰어들었다. 앞다리 한쪽이 잘려나가 심하게 피를 흘리는 상태였다. 인근 식용 개 사육장에서 수백마리의 개와 갇혀있던 유기견 ‘구원이’(사진)는 함께 갇혀있던 다른 개에 물려 도망을 나왔다.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소의 보호를 받던 ‘구원이’는 지난 9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인 레스큐(Rescue)의 소개로 한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 ‘구원이’는 입양 후에 동물병원에서 정식으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고 한살이 돼서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주인집에서 지어준 새 이름은 코아(Koa)다. 한살배기 ‘구원이’의 주인은 동물사랑실천 협회에 보내온 편지에서 “아직도 낯선 곳에서는 그냥 주저앉아서 잘 안 움직이지만 이제 40파운드 나가구 많이 컸어요. 귀도 완전히 다 스구요, 표정도 항상 밝구요”라고 전했다.

그러나, 구원이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우리나라 애완동물 숫자는 늘어가고 있지만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유기동물 역시 나날이 늘고 있어 ‘반려동물’ 문화의 정착은 더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애완동물’이란 말은 사람에게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 되는 존재로서 인간의 부속물과 같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포함된 개념이다. 반면, ‘반려동물’이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로서 삶의 동반자인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새롭게 쓰여지고 있는 이름이다.

■ 늘어가는 애완동물 vs. 유기동물

우리나라의 애완동물 숫자는 증가일로에 있다. 한국애견연맹을 비롯한 애완동물 관련 단체들은 애완인구를 1,000만명 가깝게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5가구 중 한 가구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애견 미용을 비롯한 애완산업 시장규모는 성장추세에 있어 현재 4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유기동물 숫자 역시 나날이 늘고 있어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 서울시의 <유기동물 보호관련 자료>에 의하면 시 보호 유기견 숫자는 지난 1월 827마리에서 10월 1,535마리로 연초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했으며 매달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유기 고양이 역시 1월 202마리에서 10월에는 507마리로 연초의 2배를 넘어섰으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통계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유기동물은 보호소에 있는 숫자의 10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이들은 ‘로드 킬(Road Kill)’을 비롯한 갖가지 위험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경기가 어려워지고 서민과 중산층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사료값 부담 등으로 버려지는 유기동물 숫자가 나날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3- 한 지자체 위탁 유기동물 보호소의 열악한 광경. 수십마리의 개가 좁고 지저분한 공간에 방치돼있어 전염병 감염 위험성이 높다. '사진제공=동물사랑실천협회'
4-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 애견 참피온 전람회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쓴 강아지가 운동장을 활보하고 있다. /박서강기자

■ 유기동물 학대하는 위탁보호소 문제

보호시설에 들어왔다고 해서 이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작년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경기 고양시에 고발한 한 시 의탁 유기동물 보호소는 유기견을 돼지우리에 빽빽하게 가둔채 한달 동안 사료도 주지 않고 방치하고도 안락사 처리비를 챙긴 혐의를 받았다. 협회에 따르면 고발된 보호소 운영자는 식용 개의 번식, 판매업자로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동물보호법상 올 1월까지 동물보호소에 맡겨진 동물들은 30일의 보호기간 동안 주인을 찾거나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시키게 돼있었다. 유기동물 보호소 시설이 대부분 열악해 유기동물을 오래 모아 둘 경우 전염병 발병 등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농림부의 동물보호법 개정안 시행에 의해 유기동물의 보호기간은 30일에서 10일로 줄어들었다. 법에 의하면 유기동물의 안락사는 깊은 마취상태에서 약을 먹이도록 돼있지만 대부분의 유기동물 보호소가 이를 지키지 않은 채 안락사 약만 먹이는 실정이다.

문제는 시, 군 직영보호소가 아닌 위탁보호소가 제대로 된 보호시설을 갖추고 넉넉한 공간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동물보호 업무편람>에 의하면 정부집계 동물보호소 181개(2006년) 가운데 시,군 직영 보호소는 12개에 불과하다.

■ 아쉬운 반려동물 문화, 부풀려진 '길양이 공포증'

동물을 인간의 액세서리 역할을 하는 ‘애완동물’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반려 동물’로 바라보는 시선의 재고와 문화의 성숙이 아쉬운 현실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애완동물 콘테스트는 유독 참가동물이 얼마나 순혈인가를 따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왜곡된 애완동물 문화가 생명체인 동물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고양이 중성화 사업(TNR, Trap-Neuter-Return)을 벌여 ‘길에 사는 고양이(속칭 길양이)’를 수거했다 중성화수술 후 방사하고 있다. 문제는 고양이를 데려온 지역과 풀어놓는 지역이 다르다는 점이다. 영역권 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고양이가 방사된 지역에서 적응에 실패해 죽는 경우가 많다.

1년에 2~3번 발정기를 겪는 야생 고양이의 수명은 2~3년에 불과하며, 5마리 가량의 새끼를 낳지만 황량한 도시 여건상 1마리도 살아 남기 힘들다. 왕성한 번식력을 걱정하며 ‘길양이 공포증’을 부추키는 일부 주장과 현실은 다른 셈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