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열정 직장인 260명 지원 31명 엄선 '세종 나눔 앙상블' 조직주부·의사 등 다양한 조직원… 2009년초 데뷔공연 앞두고 맹연습

음악과 연주를 사랑하지만 바쁜 일상과 직장 생활에 묻혀 멀어져 간 무대의 꿈! 하지만 잊혀져 만 가는 듯 하던 무대 위 연주자의 꿈이 비로소 실현됐다.

이름하여 ‘오케스트라의 외인구단’, 세종문화회관(사장 이청승)이 문화예술 나눔 활동의 일환으로 최근 조직한 클래식 오케스트라단 의 정식 명칭 ‘시민 체임버 앙상블’ 또는 ‘세종 나눔 앙상블’의 별칭이다.

별칭에서처럼 ‘시민 체임버 앙상블’은 ‘정식’ 오케스트라단은 결코 아니다. 음악에 종사하지 않지만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는, 그리고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싶은 일반인들만이 단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거나 학창시절 악기 연주를 동경했던 사람들. 하지만 직장생활 그리고 가정에 묻혀 연주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일반인들이 그들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오케스트라 외인구단’ 조직(?)에 나선 것은 지난 10월. 역시 TV 드라마에서 ‘베토벤 바이러스’가 한창 열기를 내뿜고 있던 시기다. 이 역시 최근 우리 사회에 거세게 일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대중화’ 신드롬 연장선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접수를 예상했던 인원은 많아야 30~40 여명 정도. 하지만 예상을 완전 뒤엎으며 무려 260 여명의 지원자가 쇄도했다. 드라마가 일으킨 오케스트라 바람을 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응모 인원이 넘쳐 나자 선발 방법과 절차도 변경됐다. 당초 서류 전형 만으로 뽑으려던 절차를 서류 심사에 이어 개인별 오디션까지 실시하게 된 것. 서류 심사를 통과한 130여명은 직접 악기를 갖고 연주해 보는 오디션을 거쳐야만 했다.

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된 인원은 모두 31명. 세종문화회관측은 당초 20여 명만 뽑으려 했지만 ‘워낙 열정이 넘치는 지원자들이 넘쳐’ 훨씬 늘어난 인원을 선발했다. 이 중 악기가 연주 공연에 상시 들어가는 정단원은 26명, 곡에 따라 가끔 포함되는 악기를 연주하는 준단원 5명.

그럼 ‘오케스트라 외인구단’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오디션을 처음부터 진행하고 이들의 연습을 이끌고 있는 김은정 세종문화회관 노조지부장은 “생각 외로 응시자들의 악기 연주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악기별, 지원자별로 편차도 적지 않았다.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거의 음악 전문인 수준이었던 지원자도 있었던 반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연주자도 있었다는 후문.

그렇다고 합격자들 전원이 ‘초 우량급의 연주자’들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다. 물론 실력도 중요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장 먼저 선발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실력은 아직 부족하더라도 연습을 통해 충분히 끌어 올릴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구성이 완료된 ‘시민 체임버 앙상블’은 엄밀히 말해 완벽한 오케스트라단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80여명 이상이 대부분인 오케스트라와 관악, 혹은 현악기로만 구성되는 앙상블의 중간 수준. 보통 앙상블이 15~20여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고 앙상블만도 아니다. 때문에 일종의 ‘미니 오케스트라’인 셈.

실제 세종문화회관 측도 당초 앙상블을 염두에 두고 모집에 나섰지만 응모자가 폭주하면서 욕심(?)이 커져 규모가 훨씬 불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름은 여전히 ‘시민 체임버 앙상블’로 쓰고 있다. 최종 선발된 정단원은 바이올린 10명, 비올라 3명, 첼로 4명, 더블베이스 1명, 플루트 3명, 클라리넷 4명, 오보에 1명, 준단원으로는 트럼펫 2명, 색소폰 2명, 타악기 1명 등이다.

오케스트라 외인구단이 처음 아이디어로 기획된 것은 지난 여름. 김은정 지부장이 사내 게시판에 연주를 하고 싶어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보자는 취지의 안을 올린 것. 사내에서 기획안으로 검토되던 중 때마침 베토벤 바이러스 바람을 타면서 현실화가 ‘순식간에’ 이뤄졌다.

선발된 단원들은 12월부터 맹연습에 들어가 내년 초 본격 무대 공연 데뷔를 서두르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연습실에 모여 연주를 하고 있는데 연습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Divertimento No.1 K.136, Piano Concerto No.23 K.488, Symphony No.29 K.201과 브람스의 Hungarian Dance No.5가 선정됐다.

그렇다고 이들 단원이 1주일 중 단 하루 2시간 만의 연습으로 끝내는 것은 아니다. 주중 개인별로 각자 맹연습을 벌이고 있기 때문. 김은정 지부장은 “선발 후 첫 공연 때 ‘오합지졸’들의 연주 아니냐는 지적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선발된 단원의 사회적 배경도 모두 제 각각이다. 평범한 가정주부, 의사, 약사, 게임회사 직원, 학교 선생님, 서비스 A/S 기사 등. 이 중 첼로의 고원경, 이주나씨, 더블베이스의 남두영씨는 모두 현직 개업 치과 의사란 점으로 눈길을 끈다. 또 학생 시절 같은 오케스트라 동호회에서 활동한 동료들도 다시 단원으로 만나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홍보팀 강봉진 과장은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이 이들 삶의 원동력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라는 점”이라고 전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이들이 드디어 ‘세종나눔앙상블’이라는 지붕 아래 모였다는 것.

단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지도강사로는 백정엽(지휘겸 피아노), 유남규(지휘겸 바이올린), 이주은(바이올린), 김정아(플릇), 구수정(첼로), 정은원(클라리넷)씨 등이 나선다. 이들은 입단식 때 트리치 트래치 폴카(Tritsch Tratsch Polka)와 집시의 세레나데(Gypsy Serenade)를 시범 연주를 선보이며 향후 세종나눔앙상블이 만들어갈 아름다운 청사진을 보여줬다.

세종 나눔 앙상블은 정기적인 연습을 거쳐 2009년 2월 서울대 피아노과 장형준 교수가 주관하는 캠프 참가가 계획되어 있다. 또 이들의 데뷔 무대는 국제적인 공연이 될 전망. 이들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독일 음악가 다니엘 안다 리차드 브라운은 이들과 함께 이 때 같이 무대에 서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다.

시민 체임버 앙상블은 앞으로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주관하는 공익 공연인 '천원의 행복',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 나눔 행사인 '함께해요 나눔예술', '뜨락/별밤 축제' 참여와 창단 기념 연주회, 기념 음반도 제작할 계획이다. 그래서 앙상블의 또 다른 이름은 ‘세종나눔 앙상블’이다.

세종문화회관 이청승 사장은 "아마츄어 연주자로 구성된 '세종 나눔 앙상블'이 다양한 공익 공연에 참여하여 문화예술의 감동을 함께 나누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저변확대를 위한 모세혈관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이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