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작업세계 이혜인·사진계 신예 최원준 등 관심집중

최근 수년간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한 서도호, 이불, 이형구, 정연두, 최정화, 홍경택 등 이제는 스타급 작가 대열에 오른 젊은 작가들의 뒤를 이을 신진 작가들에게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랜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술공모전 <중앙미술대전>에서 ‘2007년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이혜인(27) 작가의 독특한 작업세계가 주목을 받는다.

같은 해 송은미술대상전에 입선을 하기도 한 작가는 현대산업사회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한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실제 눈으로 본 것과 비록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 남아 있는 기억, 경험의 이미지들을 겹치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도시라는 공간에 살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발과 파괴의 현장을 소재로 사실적인 재현을 꾀하며 물 속에 잠긴 아파트 풍경이나 침몰하는 건물 등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상상, 파괴와 생성의 복잡한 도시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가득 채워진 물은 복잡함을 정제시키고 단순화시켜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2007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전>을 비롯해 <헤이리 아시아 청년작가 프로젝트>, 대학미술협의회의 기획전 <공간의 생산>(2005), 스페이스 셀(Space Cell)에서의 단체전 <자몽>(2005) 등 크고 작은 전시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역량을 쌓아온 이혜인은 지난 5월 ‘표 갤러리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 <비정한 세계>를 개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검증 받았다.

<비정한 세계> 전시와 관련해 미술평론가 조은정은 “이혜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옛 추억에 젖어 든다”며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즐비한 차갑고 건조한 동네가 아닌 유년시절 뛰어 놀았던 고즈넉한 동네, 재개발 되기 전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주택가가 연상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나이 어린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시각으로 표현한 도시 공간이 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작가는 단순한 도시 풍경을 묘사하기 보다는 기억과 경험을 현실에 접목시킨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확대된 시각과 자유로운 표현 의식을 느끼게 한다.

1981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나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을 개최해온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추영 학예사는 현대미술의 장르별 유망주를 추천했다.

영상분야에서는 이완과 이진준 작가를, 설치작가로는 고등어와 권경환을, 드로잉분야에서는 김시원, 한국화에서는 이재훈 작가를 주목할만한 신예 작가로 꼽았다.

3- 최원준 '콜라텍 시리즈(신당동 콜라텍)'_C print_2005년.
4- 사진작가 최원준

이추영 학예사는 무엇보다 신진 작가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설명하며 “2000년대 한국 현대미술은 미술 시장의 팽창이 두드러지면서 시장 입맛에 맞춰 예술 경향의 존폐까지 좌우됐다”면서 “앞으로 젊은 작가들은 표피적인 대중주의와 물질 가치 중심적인 미술 시장에 함몰된 예술의 다양성과 작가 고유의 역할을 회복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진계에서는 최원준(29) 작가가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 받고 있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교류지원을 받으며 활동 영역을 국내에서 세계 무대로

넓혀나가기 시작한 작가는 200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르코 아트페어 특별전 <도시를 둘러싼 질문들>과 미국 뉴욕에서의 <스콥 아트페어>, 중국 베이징 따산즈 798에서의 <듀얼 스페이스> 등 다양한 해외 전시에 작품을 소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6회 타이페이 비엔날레와 러시아 국제현대사진페스티벌에도 참가해 사진작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굳히기도 했다.

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이미지는 주로 지하철 건축 현장이나 군부대, 집창촌과 같은 폐쇄적이면서 격리된 곳들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공간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그곳에 직접 거주했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숨은 공간’들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신선함을 더한다.

최 작가는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에 접한 경찰기동대 건물 내부 사진은 사진을 찍게 된 계기이자 내가 찍는 공간 사진의 출발점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또 “미아리텍사스 업소들의 내부 공간을 기록 사진 형식으로 정면에서 담담하게 담아낸 2004년 작품 <텍사스 프로젝트> 역시 군복무 시절 휴가 때 접한 미아리텍사스 집창촌이 군대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착수하게 된 작업이다”라고 밝혔다.

인물을 배제한 채 별다른 연출 없이 현실 공간 그대로를 담아낸 <텍사스 프로젝트>에는 흔히 떠올리는 집창촌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장소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에게 이 연작 사진은 그저 화려한 조명과 인테리어의 일반 영업장처럼 여겨질 뿐이다. 이후 그가 촬영한 <콜라텍> 연작과 지하철 공사현장 연작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사회학적’인 공간이 미학적으로 담겨져 있다.

갤러리 비비스페이스에서 2006년 <방아쇠를 당겨라!>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조명한 바 있는 큐레이터 류병학은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을 창조하는 그의 작업 세계를 희망적으로 바라봤다.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이라는 구분이 불필요한 상황에서 그 양극 사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오가고 있는 최원준의 작업이 현대 미술 안에서 사진이라는 장르가 스스로 매체적 특성을 간직한 채 발전해 나가는 하나의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