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시인 김경주·최연소 등단 김사과·정통소설 맥 잇는 손홍규

최근 몇 년 사이 문학계 최대 화두는 세대교체다.

2005년 소설가 김애란이 25세의 나이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일제히 ‘문학계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1970~80년대 출생한 젊은 작가군은 문학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또한 운문성(韻文性)의 무시, 절제미의 파괴 등 해체적 방식의 시 쓰기로 이른바 ‘미래파’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구심점에는 20~30대 젊은 시인들이 있었다. 젊은 소설가들 역시 언어파괴와 독특한 소재 인용으로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유망주를 소개한다.

■ 스타 시인의 탄생, 김경주

시가 몇몇 문청(文靑)들의 ‘마니아 문화’로 변하고 있는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김경주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2004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 시인은 2006년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 씨가 이 시집에 붙인 발문은 두고두고 문단 안팎에서 회자됐는데, 당시 그는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김경주의 첫 번째 시집이 문학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이전 한국 시의 특징을 파괴하는 듯한 난해한 그의 시는 주류 시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새로운 활기를 주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의 첫 시집은 시집으로는 드물게 1만 권 이상을 팔았다.

그의 시가 평론가와 독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난해함 속에 표현되는 서정성이다.

문학평론가 박수연 씨는 “지난 해 발표한 시집은 언어가 아름다웠고 삶의 아득한 그리움을 시의 언어로 나타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는 “그의 시는 때로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은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고 외려 빨아들이는 이상한 난해함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유하는 감각’의 권능일 것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지난 10월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기담>은 조사의 쓰임새를 뒤집거나 뜬금없는 문장을 연속으로 나열하는 등 ‘불구의 언어’로 세상의 부조리를 나타낸다.

더 깊은 상징과 형식미, 실험성을 갖추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한편에서는 첫 번째 시집 이상의 새로움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박수연 평론가는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시들은 소통하면서 새롭게 만들어 나가려는 시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나갔던 세계에 대한 극단적인 자기 방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가 난해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 언어를 통해 시를 읽어 나가는 사람과 함께 무엇을 만들어 갈 것인가, 시인과 독자 간에는 공통점이 중요한데 김경주에게는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의 엇갈린 평가 속에도 그가 ‘가장 유망한 시인’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경주 시인은 올해 계간 <서정시학>이 조사한 ‘젊은 시인’ 1위에 선정됐다. 평론가 50인을 대상으로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시인 가운데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이끌 시인 10명씩을 추천받은 이 조사에서 김 시인은 평론가 36명으로부터 추천받았다.

■ 치열한 사유, 김사과

현재 언론이 소설가 김사과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린 나이’ 때문이다. 2005년 단편 ‘영이’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21세. ‘황석영 이후 최연소 등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소설가 오정희, 김인숙 씨가 이 나이에 등단했다. 김사과 작가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4학년이다.

2007년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프라하, 뉴욕 등을 여행했고 이때 쓴 작품이 2008년 발표한 장편소설 <미나>다.

여고생이 단짝 친구를 살해했다는 모티프로 출발한 이 작품은 가볍고 빠른 호흡의 대화로 10대들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주목할 것은 이 젊은 작가가 보여주는 섬뜩한 언어보다 메시지다.

소통보다는 경쟁과 승리를 중시하는 획일적인 인간형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물든 386세대 부모에 대한 날선 비판이 작품을 관통한다. 최근 젊은 여성작가들이 쏟아내는 ‘칙릿 소설’이나 ‘전략적 글쓰기’(본지 2248호 참조)로 새로움을 시도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는 거리를 둔다.

거친 표현과 서툰 문장은 그가 신인임을 드러내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들이 오히려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미숙함은 신인으로서 새로운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같은 과 선배이기도 한 김애란 작가는 사석에서 “제가 무서워하는 동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사과 작가의 치열한 사유와 뚜렷한 자기 고집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오창은 씨는 “김 작가는 뚜렷한 자기 고집과 치열한 사유가 있다. 그 장점이 젊다는 현실과 맞물려 가능성을 갖는다. 또한 돌출적이고 야성적이다. 지금 당장의 성취는 미흡할지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밀어붙인다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새로운 얼굴의 리얼리즘, 손홍규

언어파괴 등 다양한 형식이 시도되는 2000년대 문학계에서 손홍규 작가의 성취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파괴된 농촌현실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작품 속 주인공 (단편소설 ‘봉섭이 가라사대’의 응삼)과 닮은꼴이다.

2001년 <작가세계>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장편 <귀신의 시대>와 <청년 의사 장기려>, 단편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를 썼다. 1975년생으로 9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한 마지막 학생운동 세대다. 그의 이력은 장점과 현재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손 작가는 이주노동자 문제와 농촌의 파괴된 현실 등 한국 사회의 문제를 소설로 풀어낸다. 탄탄한 구조와 묵직한 메시지에 안정된 문장이 더해진다. 전북 정읍 출신의 이 작가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해학을 더한다. 해박한 고유어 지식과 구수한 입담은 같은 세대의 작가보다 원숙미를 가졌다는 평가다.

그는 신인답지 않은 솜씨로 희망과 변혁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손 작가의 작품은 1980~90년대 리얼리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행태의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평가다. 다만 그의 작품 속에 묻어 있는 ‘사회과학적’ 계몽의식이 소설의 미학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문학평론가 고명철 씨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리얼리즘 문학이 퇴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받는다. 손 작가의 데뷔작부터 ‘봉섭이 가라사대’까지 살펴보면 선배들의 리얼리즘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단순한 비판의식이 아니라 일종의 현실과 밀착해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들을 경직되지 않게 다루는 측면이 강하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다만 현실 인식이 앞선 나머지 인물이 생생히 살아있어야 하는 시점에서 계몽의식이 앞서간다. 계몽의식을 미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 스타로서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김경주 시인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김사과 작가, 정통 소설의 맥을 잇는 손홍규 작가는 각각 지향점과 스타일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능성 충만한 유망주’란 점에 대해 문학계의 이견은 없다.

이들 외에도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으로 2008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윤고은 작가와 장편 <미안해, 벤자민>을 쓴 구경미 소설가, 시집 <뱀 소년 외출>을 낸 김근 시인과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의 신용목 시인 등이 문학계 유망주로 꼽힌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