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열정·특화된능력·끝없는 자기계발·인간 관계 등 갖춰야

‘힘든 한 해가 지나고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현실에 대한 고민없이 쓰여진 이런 문장은 지금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정부는 새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내다봤고 ‘IMF 시즌 2’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은 이미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채 한 해를 시작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정규직 채용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회사인간’의 꿈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비정규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 문화계 종사자에게 ‘프리랜서’란 이제 당면한 현실이다. 프리랜서는 더 이상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한 번 쯤 거쳐야 할 길이 됐다. 하지만 전체 파이가 한정되어 있는 문화계에서 프리랜서로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비정규직 시대의 도래를 맞아 그동안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온 각계 프리랜서들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들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다방면에서의 노력은 프리랜서 세계에 대한 만만치 않은 현실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 쉴 틈이 없어도 이 생활이 좋다

SF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듀나(DJUNA)는 이른바 ‘얼굴 없는’ 작가다. 그는 한국에서 소설가로 인정받기 위해 거쳐야 할 관행에서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누구도 그의 얼굴을 모르고, 그 또한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프리랜서가 된 것은 직장생활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90년대 중반 PC통신 하이텔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그는 90년대 이후 꾸준하게 활동하며 전문작가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또 그만의 개성이 빛나는 영화 칼럼은 모든 언론 매체들에게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다. 주목할 만한 영화가 등장하면 영화 담당 기자들은 그에게 리뷰를 청탁하기 바쁘다.

하지만 듀나의 일과는 더 바쁘다. 매주 들어오는 칼럼 청탁분과 함께 영화전문지에 고정적으로 쓰는 원고, 단행본 집필, 심지어 시나리오 집필도 있다. 이전에는 라디오 대본도 썼다고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는 말은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런데도 그가 생계유지를 하는 수단은 대부분 영화 칼럼을 통해서다. 전업소설가가 다른 수익 창구 없이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한국의 현실은 인기 SF작가인 듀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프리랜서 생활을 계속 하겠지만, 생산력의 고갈에서 오는 불안감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장일범 음악평론가는 방송을 통해 이름이 익숙한 스타 프리랜서다. 그는 KBS 클래식FM ‘장일범의 생생클래식’ DJ를 맡는가 하면, CBS-TV On stage , 고양아람누리 토크쇼 ‘장일범의 예술가와 만나고 싶다’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는 월간 ‘객석’에서 기자로 일하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러시아 유학을 택했다.

러시아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귀국 후 음악전문지와 각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 아트센터 등에서 잇따라 협업 제의를 받았다. AFN만 빼고 거의 모든 음악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던 그는 아트선재센터와 함께 진행한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거쳤던 모든 과정들을 ‘벽돌을 쌓는 것’에 비유한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클래식 음악 서클에 들고, ‘객석’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러시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모든 일련의 경험들이 프리랜서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내 동종 단체에서는 그에게 걸맞은 보수를 주기 어렵다고 단언할 정도로 현재 그의 보수는 높다고 알려져 있다. 보수가 높은 만큼 그의 일과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빼곡이 채워져 있다.

이 점 때문에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균형’이다. “들어오는 일이 많다고 해서 욕심을 부려 다 맡으면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되고, 이 경우 일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일을 너무 안 맡으면 불안해지고요.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노련한 프리랜서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바쁜 그에게 체력유지는 필수. 그래서 그는 시간나는 틈틈이 운동으로 체력관리를 한다.

김경채 포토그래퍼는 광고 화보 촬영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프리랜서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 때문에 직장보다 혼자 일하는 길을 택했다.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의 매력은 역시 높은 수익에 있다. 스튜디오나 언론계에 종사하는 다른 사진 전공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이 프리랜서라는 선택의 이유다.

반대로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번거로운 일이다. 가령 세금 처리 같은 일이 그렇다. 김 포토그래퍼는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잡무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익숙한 정도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 프리랜서라는 형태의 단점이라고 설명한다.

■ 그래도 지붕 있는 집이 따뜻하다

한편 프리랜서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지만 현실의 고달픔 때문에 정규직을 희망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는 1999년 이후 10년 동안 ‘무비스트’, ‘조이씨네’ 등 영화 웹진과 시사주간지 ‘위클리솔’, ‘피플’ 등의 매체에 기획과 편집위원으로 참여해온 베테랑 프리랜서. 평소 날카로운 시선과 재치있는 표현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심형래 감독의 <디 워>를 보고 평소대로 ‘솔직한’ 리뷰를 썼다가 영화에 열광한 네티즌의 도마에 오르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라고 자조섞인 농담을 던지면서도 “영화판엔 원래 자리가 많이 없고, 경력과 나이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조직이 꺼리는 이유”라고 시원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한때 원고료 만으로도 직장생활자 만큼의 수입을 거두던 그도 작년부터는 일감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토로한다.

소위 ‘글빨’도 있고 인맥도 탄탄한 그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바닥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원고료 안 받고도 쓰겠다는 사람들도 줄서 있습니다. 사실 아무나 이름 뒤에 붙이면 ‘영화칼럼니스트’가 되는 세상이잖아요.”

그는 프리랜서로서 자유로운 시간 관리도 좋지만, 일주일에 원고 두세 개를 정기적으로 써내고 일이 밀릴 때 몇 개를 추가적으로 더 하는 상황을 프리랜서로서 괴로울 때로 꼽는다. “바쁠 때는 글을 그냥 머리에서 뽑아야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건 글이 아니라 그냥 알고 있는 것들의 나열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회의감이 들어요.”

이런 경제적 어려움과 프리랜서로서의 고충에 질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직장 생활로의 복귀다.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족해보이는 음악계도 사정이 여의치 않기는 비슷하다. 강성은 객원 플루티스트 역시 기존 오케스트라에서 자리가 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프리랜서로서 경력을 시작한 경우다. 그는 현재 서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CTS교향악단(기독교 방송국 오케스트라), 글로리아 체임버 오케스트라 세 곳에서 플루티스트 겸 피콜리스트 객원연주자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성공전략은 틈새시장의 공략이다.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Ecole Normal de Musique de Paris) 플루트 전문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그는 국내에 피콜로 전문연주자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 에꼴 노르말에 신설되었던 전문 피콜리스트 과정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만의 경쟁력이 되었고 피콜로 연주 때문에 그를 찾는 곳이 적지 않다.

그가 내세우는 성공의 또 다른 덕목은 책임감과 성실성. “연주실력은 기본이고, 페이가 많건 적건 모든 연주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해요. 합주 연습시간에 꼭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같은 객원 연주자들은 특히 늦지 않게 시간을 잘 지켜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스스로를 ‘보따리장수’라고 표현하는 그는 소속감이 없는 데서 오는 허무감을 프리랜서 생활의 단점으로 꼽는다. “오페라의 경우 끝나면 악단 사람들과 더 이상 못보기 때문에 연대의식을 느끼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죠. 그래서 몸이 안 좋아서 그만두는 경우를 제외하면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프리랜서 생활로도 생계유지는 되지만 이러한 불만족 때문에 그는 풀타임 연주자로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자신이 원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프리랜서로서 성공하고 있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자질이 있다. 바로 자신만의 특화된 능력과 그 역량의 끊임없는 업그레이드가 그것이다.

책임감과 성실성으로 다져진 인간관계의 유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고용형태로든 이 일을 계속 하려고 하는 의지다. 비단 비정규직의 시대여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언제나 프로의식을 발휘하며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프리랜서는 불황기를 헤쳐나가는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꾸준한 실천의 과정, 그것이 바로 프리랜서의 진짜 모습이다. 그래서 ‘진짜 프리랜서’들은 어쨌거나 오늘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