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고소득 프리랜서 집중… 대부분은 비정규직 부익부 빈익빈 심해

‘나인 투 파이브(Nine to Five)’,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위 아래로 시간이 훨씬 늘어난 시대가 됐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에게 프리랜서는 하나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직장생활을 접고 ‘꿈’을 향해 과감히 프리랜서의 길로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그 ‘꿈’은 종종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스타 프리랜서들은 잠재적 프리랜서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역할 모델이 됐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더 이상 모든 직장인의 ‘꿈’이 아니다. 특히 정규직 채용 규모가 원래 타 분야에 비해 적은 문화계에서 프리랜서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를 달리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수년간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문화계의 전업 칼럼니스트들은 강의나 방송 출연 등의 일이 없으면 사실상 고학력 백수에 다름없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춰진 프리랜서는 소수의 고소득 프리랜서에 집중된 바, 그 결과로 프리랜서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굳건한 상황이다.

■ 프리랜서로 먹고 살 수 있다?

20세기 말부터 가끔 기사화되는 ‘21세기 유망 직종’에는 반드시 ‘프리랜서’라는 모호한 직업군이 속해 있었다. 사실 프리랜서에 대한 환상에 언론도 일조를 한 셈이다. 문제는 ‘유망 직종’이라고 할 만큼 프리랜서가 보편적으로 안정된 보수를 받을 수 있는가인데, 그동안 현실적으로 별로 유망하지 못했다는 데 기사와 현실의 괴리가 있다.

유망하진 않았지만 문화계의 구조상 프리랜서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이에 따른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프로듀서나 방송작가, 영화감독과 같은 영상물 제작에 관여하는 직군은 해당 영상물 제작이 끝나면 그 반응에 따라 다음 작품의 제작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경력 관리와 효율적인 업무 처리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프리랜서 에이전시 업체들이 등장해 문화계에 종사하는 프리랜서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기도 한다. 이 업체가 도와주는 프리랜서들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규 프리랜서부터 유명한 문화계 인사까지 다양하다.

특히 수입원이 안정적이지 않은 직종들, 즉 만화가나 소설가, 뮤지컬 연출가, 영화감독, 방송 프로듀서 등은 그 유명세에 관계없이 이런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 목록에는 곽경택 감독이나 서민원 북한전문 PD, 이현세, 황미나 만화가 등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의뢰사와의 관계 유지가 중요한 시대, 프리랜서 개인의 능력들이 효율적으로 관리되어 적재적소에 전달되는 유통 시스템의 등장은 더욱 치열해진 문화계의 환경을 반증한다. 이런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탄탄한 인맥도 없는 사람들은 사실상 생계유지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 프리랜서는 절대 '프리'하지 않다

부익부 빈익빈은 프리랜서 세계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회 일반에서 인구의 상위 10% 정도가 전체 부의 90% 정도를 소유하듯이, 프리랜서 세계도 소수의 고소득 프리랜서들이 일감을 독식하는 경향이 있다.

나머지 대다수의 프리랜서들은 이들이 미처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노력 대비 저소득의 일감을 나눠 갖는다.

하지만 이들 고소득 프리랜서들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프리’함에 이끌린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자유로운 출퇴근’은 사실 ‘밤새워 일하기’의 다른 이름이다. 이렇게 쉴새 없이 일을 해야만 모든 스케줄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자유롭고 멋진 일상을 보낼 수조차 없다.

이에 따라 건강의 악화나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렇게 해서 번 수익은 동종 업종의 정규직 근로자의 처우와 비슷하거나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적당히 쉬면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굴러온 일감을 내차고 적당히 쉬는 동안 업무 의뢰는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베테랑 프리랜서일수록 이런 양상을 알기에 더더욱 쉴 수가 없다.

때로는 ‘프리’해지기 위해 해외여행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프리’라는 꼬리표 때문에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유명 뮤지컬 배우 C씨가 여행을 위해 비자 신청을 했지만 소속이 없고 수입이 불규칙하다는 점 때문에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일화는 프리랜서의 단점을 말해주는 안타까운 사례다.

■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위한 몇 가지 조건

물론 프리랜서의 삶이 이처럼 부정적인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한다면 불황의 시대에 오히려 정규직보다 나은 점도 많다고 설명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준수해야 할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잡지 프리랜서의 실태에 대한 연구와 함께 프리랜서로서의 성공법에 대한 책을 낸 박창수 ‘프리서울(www.freeseoul.net)’ 대표는 “아무 생각 없이 이 생활을 시작하면 금방 그만 둘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구체적인 몇 가지 지침들을 말했다.

그 첫 번째는 ‘인내심을 가지고 시작하라’는 것. 그는 “돈이 안 되면 금방 포기하고, 일이 마음에 안 들면 안 하고, 이런 사람들은 조직생활도 잘 못할 사람이다”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두 번째는 ‘실력은 기본, 역량 업그레이드는 꾸준히’다. 프리랜서 입문의 가장 좋은 형태는 관련 업계에서의 경력이나 전문가 밑에서의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게 안 될 때는 어떤 경로로든 자신의 역량을 배가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꼽는 세 번째 조건은 ‘적극성’이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도 적극적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17년 경력의 나도 지금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가만히 앉아서 연락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상대방에 제안을 하며 적극적으로 자기 PR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최근의 트렌드로 ‘e-랜서(인터넷 프리랜서)’의 전망이 밝다고 설명하며, “정규직 채용이 없다고 막연하게 프리랜서를 꿈꾸기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업계의 현실을 파악하고 확신을 가진 후 도전한다면 프리랜서로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