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등 7개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대학·나이별 각각 7명·20명으로 최다짧게는 2~3년 길게는 7년 준비… 총 38명 문단에 첫발

“한 사람의 괴테가 독일 국민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무명의 시인들이 평범한 시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을까…한 사람의 천재가 태어나기 위해 100명의 범인(凡人)이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한다. 야마노나 구와타 등의 많은 인기를 위해서 나 한 사람 정도의 희생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기쿠치 간이 1918년 발표한 <무명작가의 일기>의 한 대목이다. 이름 없는 문청(文靑)의 고백을 통해 작가로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괴로운 것인가를 그린 이 작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 됐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누구나 글을 쓰고 공유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기성문단에 진입하는 것은 기쿠치 간의 표현대로 ‘100명의 범인이 고통 속에 살아간’ 후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지난 1일 언론사들이 일제히 발표한 신춘문예 당선작 선정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모 신문사 신춘문예 동시부문에는 1,456편이 응모돼 식지 않은 문학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평균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문단에 첫발을 디딘 작가들은 누가 있을까? 한국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 7개 중앙 일간지의 2009년 신춘문예 당선자 지형도를 분석했다.

■ 동국대 다수, 평론은 연고대

2009년 신춘문예 등단자의 특징으로 흔히 언론에서 ‘동국대 파워’와 ‘50대 등단 다수’를 꼽았다. 그러나 당선자 프로필을 분석해 보면 결과가 다소 다르다.

우선 대학 별로 등단 숫자를 보면 언론 보도대로 동국대가 7명으로 가장 많다.

한국일보 희곡 부문에 당선된 주정훈(35) 씨를 비롯해 최문애(동아일보, 희곡), 채현선(조선일보, 단편소설), 전성형(조선일보, 동화), 이주영(조선일보, 희곡), 정영효(서울신문, 시), 서희원(세계일보, 평론/ 문화일보, 평론) 씨 등이 동국대 출신이다. 특히 동국대는 소설과 희곡, 시와 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당선자를 배출했다.

다음은 중앙대로 조선일보 시조 부문에 당선된 배우식 (58,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씨를 비롯해 4명을 배출했다. 서울예대는 한국일보 희곡 부문에 당선된 황윤정(28) 씨를 비롯해 3명을 배출했다.

평론에서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강세를 보였다. 연세대는 동아일보 영화평론에 당선된 안지영 (31) 씨를 비롯해 강동호(조선일보, 문학평론), 박슬기(서울신문, 평론) 씨가 모두 평론분야에 당선됐다.

고려대는 송종원(경향신문), 오연경(동아일보) 씨가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됐고 이동욱 씨가 동아일보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한국종합예술학교는 최문애(동아일보, 희곡), 안재승(서울신문, 희곡) 씨가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이 둘은 학부가 아닌 전문사과정(일반 대학의 석사과정)에 있다. 이밖에 대진대, 인하대, 인천교대, 광주대, 한양여대, 순천대, 단국대, 명지대, 경희대 성신여자 사범대, 계명대, 전남대가 각각 1명을 배출했다.

나이 별로 분석하면 30대가 20명으로 가장 많다. 20대가 8명, 40대가 7명, 50대가 3명으로 ‘40~50대 선전’은 실제로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7년씩 신춘문예를 준비했다. 문화일보 시 부문에 당선된 강지희(47) 씨는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당선됐다. 강 씨는 “13년간 공예연구실을 운영했다. 공예품 해외전시회가 있어 작품설명서를 준비하며 글공부를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시를 배우기 위해 영남대와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에 등록해 7년 동안 배웠다. 한 사람이라도 감동하는 시 한 편 쓰는 게 목표였다. 투고는 4년 했다”고 말했다.

2009년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은 총 38명. 동국대 서희원(38) 씨가 문화일보와 세계일보 문학평론 분야에서 2관왕을 차지했고, 세계일보 시 부문 당선자는 없었다.

■ 동대미문, 말이화나 등 대학 모임서 배출


동국대를 비롯한 몇 개 대학이 신춘문예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 대학은 잘 갖춰진 대학 내 문학모임을 통해 ‘분위기’를 만든다.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중심으로 만든 ‘동대미문’과 국문과, 문창과 학부생을 위주로 짜인 ‘문학 분과’가 대표적이다.

서울신문 시 부문에 당선된 정영효 씨는 “동국대는 전공별로 다양한 분과가 마련돼 있다. 창작분과와 이론분과로 나뉘는데 창작분과에서는 시, 소설, 희곡 분과로 다시 나뉘고 이론분과는 고전과 문학이론 분과로 나뉜다. 학부생들이 보통 다양한 장르의 분과에서 모두 공부하다가 나중에 하나의 전공에 ‘올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분과 시스템’이 1970년대부터 이어온 것이라고 알고 있다. 나의 경우 시 분과에서 주로 공부했지만, 교수님들은 다른 장르 공부도 해야 시가 풍성해질 수 있다고 조언하셨다. 시 습작을 하면서 다른 장르의 문학작품도 자주 읽었다”고 덧붙였다.

서울예대는 시모임 ‘말이화나’와 ‘난파’, 소설모임 ‘창작과 비난’이 있다. 동아일보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정민 씨는 “말이화나에서 1학기 정도 활동했다. 그리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임은 아니지만, 시화전을 열기도 하고 습작을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명지대 문예창작과에는 시학회 ‘예감’(예정된 감동의 줄임말)이 있다. 역시 커리큘럼을 짜 시 이론을 공부하고 습작 후 합평(合評,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함)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선일보 시 부문에 당선된 민구 씨가 이 학회 출신이며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유진 소설가 역시 예감 출신이다.

한양여대의 문학모임에는 ‘현빈’이 있다. 문예창작과 장석남 교수(시인)가 이끄는 시모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습작을 발표하고 강평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동아일보 시 부문에 당선된 김은주(30) 씨는 “‘현빈’이란 이름은 장석남 교수가 직접 지었다. 나는 2기로 활동했고, 학교 과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 장석남, 권혁웅 교수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권혁웅 씨는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기성 작가가 강사로 초빙된 문학모임도

대학교 전공 동아리 이외에도 크고 작은 문학 모임을 통해 등단한 작가가 늘어난 것도 최근 신춘문예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모임이 계간지 <서정시학>에서 운영하는 문화아카데미.

‘월요반’부터 ‘토요반’까지 6개 시모임이 운영되는 문화아카데미는 여태천, 신해욱, 권혁웅, 조연호 등 중견 시인들이 선생님으로 참여한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은 매주 한 편 습작을 준비해 발표하고 학생들끼리 합평 후, 선생님의 촌평을 듣는 방식이다.

매일 저녁 6시 30분 서정시학 건물에서 1시간 30분간 진행된다. <서정시학> 관계자는 “일정한 기간 커리큘럼을 짜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서 배우고 싶을 때까지 배운다. 자리가 비워지면 학생을 받는 터라 가고 싶은 반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서정시학 문화 아카데미는 문인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문학모임이다. 지난 2008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유희경(30) 시인이 ‘금요반’을 통해 등단했고, 최근 몇 년간 계간지를 통해 상당수의 문인들을 배출해 냈다.

2009 신춘문예에서는 4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한국일보 시 부문에 당선된 이우성(30) 씨와 동아일보 시 부문에 당선된 김은주(30) 씨가 ‘금요반’을 통해 등단했다. 경향신문 시 부문에 당선된 양수덕(55) 씨가 ‘화요반’, 동아일보 단편소설에 당선된 이동욱(31) 씨가 ‘목요반’에서 수업을 받았다.

이동욱 씨는 200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바 있다. 이동욱 씨는 “시로 등단하기 전에는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주제가 잡히면 종이에 바로 쓰는 버릇이 있는데 어떤 메모는 시가 되기도 하고, 시로 만들기 어려운 글감은 다른 장르로 바꾸어 보기도 한다. 이번에 당선된 소설은 혼자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모임은 소설가 박상우 씨가 운영하는 소설 모임 ‘소행성 B612’이다. 소설<어린왕자>의 행성 이름을 딴 이 모임은 박상우 작가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이 문학모임 역시 이미 박혜상 작가가 제 6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조영아 작가가 제 11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9 신춘문예에서는 서울신문 소설부문에 당선된 진보경(37) 씨가 당선됐고, 지방신문 신춘문예에서는 대구매일신문 소설부문에 김은아 씨, 대전일보와 전북일보 소설 부문에 황정연(본명 황차이) 씨가 당선됐다.

작법반과 실기반으로 운영되는 모임은 첫 시간에 간단한 이론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작법반에서 소설 플롯 위주의 훈련을 하고 실기반에서 습작을 강평하며 수업이 진행된다.

3개월이 한 학기로 진행되며 2주일에 한 번씩 모임이 열린다. 진보경 씨는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대략 15명 정도다. 이 모임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 역시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고 말했다. 진 씨의 남편 은승완 작가는 2007년 제 57회 문학사상 상반기 신인문학상 중단편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과거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들은 향후 한국문단을 이끄는 중추가 됐다.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승옥 소설가를 비롯해 1972년 역시 한국일보로 등단한 정호승 시인 등 문단의 거목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들이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 만에 중견 작가로 성장하는 추세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하성란 작가가 3년 만인 1999년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급성장’했고, 2000년 서울신문으로 등단한 편혜영작가 역시 2007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인기 작가가 됐다.

물론 이렇게 등단한 수많은 신인 중 작품성을 인정받아 대중의 뇌리에 기억되는 작가는 다시 몇 명으로 압축될 것이다.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어느덧 중견 작가로 자리잡은 조연호 시인은 올해 한국일보로 등단한 이우성 시인에게 사석에서 뼈있는 말을 남겼다.

“열심히, 부지런히 써야 돼.”

올해 탄생한 신인들의 5년, 10년 후 행보를 눈여겨보자.

◇ 한줄 한줄 신인의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김금희 (한국일보- 소설), 김은주 (동아일보- 시), 민구(조선일보- 시), 채현선 (조선일보- 소설), 진보경 (서울신문- 소설), 현진현(경향신문- 소설), 황지운(문화일보- 소설)

주요 7대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인터뷰 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한줄 한줄 신인의 마음으로 쓰겠다는 이들의 각오를 지면에 옮긴다.

※ 김금희 (한국일보, 소설)

“기발한 상상력에 의지하기 보다는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30대인 저는 젊은 세대와 40~50대 중년 세대 사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두 세대의 소통의 매개가 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3살 때부터 살아온 인천은 서울과 가깝지만, 의외로 소외된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을 무대로 많은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 김은주 (동아일보, 시)

“요즘 영상세대는 시를 거의 읽지 않고 이미지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세대이기 때문에 시가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소통이 가능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 민구 (조선일보, 시)

“이제까지 200편정도 습작을 했는데 얼마 전 다 정리 했어요. 청탁이 들어오면 써왔던 걸 낼 것 같아서. 생각보다 등단이 빨리 돼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직하게 오랫동안 쓰겠습니다.”

※ 채현선 (조선일보, 소설)

“제 소설이 무겁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재밌고 따뜻한 소설을 썼으면 합니다. 많은 독자보다는 마니아층을 만들고 싶어요.”

※ 진보경 (서울신문, 소설)

“일상의 이면과 속내에 담긴 삶의 비밀과 진실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 고단한 인생에 따뜻한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 현진현 (경향신문, 소설)

“학부 마지막 학기때 김원우(계명대 문창과) 선생님께 독려를 받아 평론을 썼고, 평론 부문에 등단(1999년 동아일보 문학평론)하고 계속 작품을 읽다 보니 소설도 도전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품을 생각하고 있어요. 통상적인 소설구조와는 다른 작품을 쓸 생각입니다.”

※ 황지운 (문화일보, 소설)

“응모작을 내기 전에 컴퓨터가 고장 나서 두 달간 다시 썼어요. 딱히 어떤 스타일을 고집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