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출신으로 해외 진출 성공… 전정아·김무겸·최은아 "우리도 할수 있다"

18살의 한 소년은 옷이 좋아 무작정 옷 장사에 뛰어든다.

동대문 입성 2년 만에 다른 브랜드에서 디자이너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 시작한다. 3년째부터 해외 컬렉션을 순회하며 디자이너로서 담금질해 나간다. 그리고 2003년 동대문 출신으로는 최초로 서울 컬렉션 무대에 선다. 이후 11차례의 컬렉션 출품. 비로소 2006년 30살의 나이로 그는 프랑스 파리 쁘렝땅 백화점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입점시킨다.

동대문에서 파리로 뻗어나간 드라마틱한 도전 성공기는 남성복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로 최고 디자이너 자리에 오른 최범석 씨의 이야기다. 그는 디자이너의 감각이나 실력보다 출신이 중시되던 당시 디자인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변화를 주도한 장본인이었다.

동대문에서 활동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최범석 디자이너는 롤모델이나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브랜드숍을 운영하고 있는 동대문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제2의 최범석을 꿈꾸며 동대문 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쇼룸삼아 자신들의 꿈을 디자인하고 있다.

■ 전정아 실장
미래지향적 스타일을 꿈꾸는 'C.U.U.M(쿰)'


1999년부터 두타에서 활동을 시작한 쿰의 전정아 디자이너는 데님 전문 디자이너다. 이제는 두타를 비롯한 동대문 디자이너크럽과 홈플러스 마트 시흥점, 중계점, 부천 상동점, 대전 유성점에 자신의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미국과 일본, 대만 등 해외 패션 시장으로도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디자이너브랜드답게 쿰은 차별화된 아이템을 자랑한다.

“시즌별 200여 개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어요. 최근에는 우븐에 데님 디테일을 적용하면서 코디 상품의 비중을 높였고요. 주로 20~30대 여성 고객들이 많이 찾으시는데 나이가 좀 있으시지만 멋을 아는 분들도 많이 오세요.”

전정아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평범한 데님 스타일이 아니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한 화려한 디테일의 접목이 많다. 구슬이나 단추를 달아 메탈릭한 느낌을 더하며, 독특한 프린팅이 적용된 옷들은 수공예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대학 때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 5년 동안은 쁘렝땅 계열사 디자인실에서 있었어요. 동대문에 자리잡은 건 99년이죠. 두타가 지하1층에 디자이너브랜드몰 두체를 오픈 하면서 개최한 두타디자인컨퍼런스에 응모한 것이 계기가 돼서 두체에 입점하게 됐어요. 동대문 디자이너 초창기 멤버라고 할 수 있죠. 이때부터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에요.”

지금은 디자이너브랜드로서 기반을 마련했지만 쿰이 두타에 입점할 때만 해도 동대문 시장에서의 패션 디자이너는 생소한 존재였다. 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쿰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시장을 찾는 고객들은 주로 제품의 디자인이나 스타일보다는 효율성이나 가격을 많이 따지잖아요. 동대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저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삼았죠. 때마침 서울패션센터에서 해외시장개척단을 뽑았는데 일원이 돼서 라스베가스 매직쇼, 홍콩 패션위크 등 다양한 해외 의류 전시회를 둘러볼 수 있었어요. 그 때 알게 된 해외 바이어들과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며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동대문 시장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내수 시장에서의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패션 시장 자체가 포화 상태인데다 백화점이 아닌 시장에서의 디자인브랜드는 정확한 가격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제품의 가격 책정 또한 쉽지 않다. 이에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동대문은 고향 같은 곳이에요. 디자이너로서 첫 시작을 동대문에서 했고, 또 지금까지도

동대문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까요. 지난해부터 마트 쪽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는데 계속해서 입점 계획이 있어요.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둘 중 하나가 쿰을 알게 되는 그날까지 저는 디자인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 김무겸 대표
여자가 탐내는 남성복 'J Museum(제이 뮤지엄)'


디자이너 김무겸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좋아하는 남성복을 만든다. 몸매에 자신 없는 남성들은 그의 매장을 둘러보기만 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돌린다. 라인이 살아 있는 그의 옷에는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남자인 그의 로망이 담겨있다.

“동대문에 오기 전에 신사복 맞춤 전문 브랜드 토오루 옴므에서 일을 했어요. 디자인을 하면서도 새로운 영감이 자꾸 떠올랐죠.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 매장이 있어야겠더라 고요. 2006년 서울패션센터에서 진행하는 신진디자이너 인큐베이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에어리어6 지하 넥스트 디자이너 존의 매장을 무상으로 제공받았어요. 그때부터 여성이 더 탐내는 남성복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평소 옷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특별한 날이 되면 입고 나갈 옷이 없어 걱정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동병상련을 느끼는 남성들을 위해 직접 옷을 만들게 된 것이다.

“모던 마카로니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마카로니는 18~19세기 유럽에서 여자보다 더 멋을 부려 손가락질 당하던 남자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보시다시피 제 옷들이 굉장히 화려하고 슬림 하잖아요. 보통의 남자 고객들은 살 엄두를 못 내시죠. 특별한 날 한번쯤은 가장 특별한 남자가 되고싶은 분들을 위한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무겸 디자이너의 옷들은 클럽이나 패션쇼, 시상식 장에서나 볼 법한 독특한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옷을 구입하고 그냥 옷장에 고이 모셔두는 고객들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더 좋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 옷이 우리나라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인건 사실이죠. 그래서 해외 진출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올해 일본 패션 기업과 계약을 맺기로 돼 있는데요. 그 회사 역시 일반적인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 개성 있는 스타일의 옷을 주로 선보여요. 세계 각지 아방가르드 스타일 패션을 모아서 전시회를 열고 판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셈이죠.”

현재 그는 동대문을 비롯해 청담동과 압구정동에서도 매장을 운영하며 디자인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최은아 대표
여성의로망, 아름다움을그리다. 'Senorita(세뇨리타)'


“여자라면 누구나 예쁘고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잖아요. 세뇨리타의 옷을 입는 순간 그들이 여자로서 예뻐지고 사랑스러움을 느낀다면 저는 목표를 달성한 거죠.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우아한 페미닌 스타일이에요. 유행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세뇨리타의 최은아 디자이너는 두타를 대표하는 젊은 디자이너다. 여운이 긴 즐거움이 곧 예쁜 옷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그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의 패션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딸 여덟 중 막내딸이에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인형 옷이나 작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걸 좋아했죠. 전공은 아니었지만 대학 시절엔 방학마다 복장 학원을 다녔고 의상학과 수업을 청강하면서 의상 공부를 했어요. 졸업과 동시에 소규모 내셔널 의류 브랜드에 들어가 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았어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밑거름이 돼준 셈이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덕에 세뇨리타의 매장 소품을 비롯해 제품 태그와 로고, 쇼핑백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래서인지 제품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로 직접 디자인한 소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2004년에 두타에 입점했는데 수수료 매장이라 임대료와 계약금을 내지 않아도 됐었죠. 처음 400만원을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샀어요. 옷도 도매에서 사다가 판매하는 식이었고요. 그러다 조금씩 직접 디자인한 옷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디자이너브랜드 세뇨리타까지 운영하게 된 거에요.”

지금은 두타 1층 가장 목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세뇨리타는 단골들의 입소문만으로 방송의상을 협찬하기도 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톡톡 튀는 연기를 펼쳤던 박해미의 패션이 세뇨리타의 제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2007년 프리뷰인 상하이 전시에 처음으로 디자이너로 참가했었는데 그 때 알게 된 바이어가 중국 진출을 도와주고 있어요. 중국에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고, 트렌드 주기도 우리나라보다 1년 정도가 늦어서 세뇨리타가 경쟁력이 있다고 보신 거죠. 제가 디자인한 도안을 중국 기업에 팔면 중국 현지 공장에서 제작하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은아 디자이너는 세뇨리타가 입점한 중국 매장의 제품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샵마스터 들의 판매교육까지도 도맡아 하며 중국 패션 시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