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기부문화의 새바람 재능기부]정선희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세스넷) 상임이사회계사·노무사·전현직 CEO 등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 지속 가능 성장 도우미 자청

40여 명의 지적 장애인들이 만드는 유기농 먹거리 ‘위캔쿠키’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10억 원에 달했다. 밀가루 반죽부터 쿠키 굽는 과정까지 교육에만 수개월이 걸린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였지만 점차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춰가는 위캔쿠키의 올해 매출 목표는 12억 원. 최근 전문 회계법인의 도움으로 가격정책을 정립한 이들은 조만간 백화점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공공 실현과 수익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롤 모델이자, 스타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위캔쿠키. 이들 뒤에는 지적 장애인들의 땀방울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기부’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경영적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전문성 기부’가 바로 그것.

사회적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사회적 기업 지원 네트워크, ‘세스넷’의 정선희 상임이사를 만났다.

“취약 계층을 고용한 사회적 기업은 인적, 물적, 기술적 기반 역시 무를 수밖에 없어요. 이들이 지속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지만 접근성은 떨어지죠.

사회적 기업이 사회, 시장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연결다리가 ‘전문성 기부’라고 생각했습니다.” 2007년 7월부터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시행 중인 정부가 현재까지 인증한 사회적 기업은 218개. 세스넷은 이들뿐 아니라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자 하는 이들에 경영 전반에 대한 전문지식을 ‘전문성 기부’라는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즉, 전문성을 기부하고자 하는 영리 기업과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 사이를 맺어주는 형식이다.

경영 컨설팅은 이언그룹에서, 회계 관련 업무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하 딜로이트)에서 전문 경영지식을 제공한다. 특히, 딜로이트는 각기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11개의 본부가 직접 선택한 11개의 사회적 기업과 1:1결연을 맺고 있다.

“딜로이트는 그 동안 고아원과 양로원에서 노력봉사를 해왔어요. 지난해 우리와 만나면서 전문성 기부 참여의사를 밝혔습니다. 직원이 1800명 정도인 회계, 컨설팅 전문회사인데요. 본부마다 맡은 역할이 달라서 기존에 해오던 ‘1사 1사회적 기업’이 아닌, ‘1본부 1사회적 기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 ‘위캔쿠키’는 딜로이트에 원가분석을 요청했다. 두루뭉술하게 정해졌던 가격은 과학적 근거를 갖게 됐고 이를 계기로 딜로이트는 위캔쿠키를 전 직원의 생일 선물로 구매하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 50억 원을 달성하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 중인 청소대행업체 ‘함께 일하는 세상’도 홈 클리닝 사업 진출 타당성 검토를 요청해 진행 중이다. 수 백 만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컨설팅 비용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사회적 기업에 ‘전문성 기부’는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오아시스로 향하는 이정표인 셈이다.

전문성 기부를 자청한 기업은 이들 외에도, 온라인 포털 다음과 나우콤, 열린사이버대학 등이 있다. 특히, 다음은 웹 마케팅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14개 사회적 기업에 블로그 제작지원을 했는데, 운영 전문성을 위해 모집한 36명의 희망 블로거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회적 기업의 홍보와 블로그 운영을 맡고 있다. 기부가 기부를 낳아, 희망 블로거들은 또 하나의 재능 기부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대 기업의 전문성 기부도 순풍을 타고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세스넷의 기반은 개인 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단단하게 지지하고 있다. 회계사, 노무사, 전현직 CEO, 언론계 인사 등 60여 명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정 상임이사가 ‘백미’라는 표현을 쓸 정도의 핵심 동력이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나 ‘다음’의 협력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문성 기부뿐 아니라 예비 사회적 기업의 사업계획서 심사, 강의도 해오고 있어요. 두부제조업체인 ‘짜로사랑’에 경영 전반의 솔루션을 제공했고 지금까지도 멘토가 되어 사업방향 설정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이들의 역할을 좀 더 확장해가려고 합니다.”

세스넷의 전반적인 멘토링 프로그램 역시 체계화할 예정이다. 법률, 노무, 회계, 디자인, IT 등 자문영역을 체계적으로 구성해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딜로이트가 진행하는 온라인 Q&A를 제외하고는 다들 협의 중인데,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전문성 기부를 하고자 하는 기업도 많아져서 문의전화도 늘었구요.”

하지만 기부를 원하는 이들과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원활한 것은 아니다. 양자 간 기대치의 균형점을 찾고 무엇을, 얼마나 요구해야 하는지의 범위와 수준에 대한 교육도 세스넷의 몫이다. 딜로이트가 사회적 기업과 조인을 맺을 때도 조정할 사항은 적지 않았다.

당장 매출이 급급한 한 사회적 기업은 첫 미팅에서 당장 물건을 구매해줄 기업을 소개해달라는 난감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철저한 영리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윈윈(win-win)하고 만족하는 결과가 나와야 하죠. 한쪽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관계가 되면 오래가기 힘듭니다. 해외에선 서로 다른 욕구와 자원을 연계하는 역할을 브로커리지 서비스(brokerage service)라고 해요. 우리가 하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겁니다.”

미국 은퇴자 만 여명이 모여서 영세업자에 대해 창업 컨설팅을 해주는 SCORE나 전문성을 기부할 기업을 사회적 기업과 연계해주는 영국 BITC의 프로헬프 프로그램 등 해외의 사례를 많이 적용하고 있다는 정 상임이사는 계속해서 국내 환경에 맞는 형태의 지원 방식을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최근 2-3년 사이 ‘사회적 기업’에 대한 국가적 관심에 따라 전문성 기부 혹은 재능기부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과 호응도 늘어나는 긍정적인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

‘캠페인을 통해서 전문성 기부와 사회적 기업에 대해 알려나가겠다’는 정선희 상임이사는 사회적 기업을 위해 ‘전문성 기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문성 기부 참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세스넷 홈페이지(http://www.sesnet.or.kr)나 전화(02-337-6763)로 문의하면 된다.

정선희 세스넷 상임이사는…

서울대 역사학과 졸업,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회사업학 석사를 마쳤다. ‘기부정보가이드’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세스넷)의 상임이사, 실업극복국민재단 정책연구위원, 노동부 중앙사회적일자리 추진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기업 육성과 지원에 헌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익을 만들고 행복을 나누는 사회적 기업> <한국의 사회적 기업> <성공하는 사회적 기업의 모든 것>등의 저서를 써냈다.


사회적 기업이란?

공익 실현을 목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 판매해 수익 창출하는 기업을 말한다. 가령, 미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인 ‘파이어니어 휴먼 서비시즈’는 급식회사, 택배회사 등 10개의 업체를 운영하며 연간 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피고용자는 재활치료과정을 거친 알코올 중독자나 교도소 출소자들. 그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동시에 피고용자를 위한 교육 훈련, 상담 치료, 주거 제공 등 사회적 프로그램 개발에 수익을 재투자한다.

2007년 1월,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은 사회적 기업을 ‘취약계층에게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