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작가들의 아지트] 20~30대 젊은층은 홍대·중장년층은 인사동서 문학적 교감 나눠

반포치킨과 은성, 아리스 다방이 한국문단의 거목들이 '칩거'했던 낭만의 공간이라면 2000년대 작가들의 아지트는 20~30대 젊은 문인들이 즐겨 찾는 홍대와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 인사동으로 나뉜다.

<문학과 지성사>를 비롯해 <해냄>과 <생각의 나무> 등 중견 인문, 문학전문 출판사가 밀집한 홍대와 합정역 부근에서 젊은 작가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아이돌스타나 배우처럼 얼굴로 활동하는 예술가가 아닌 만큼, 독자들은 작가를 보고도 지나치기 일쑤겠다.

인사동은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 술집과 다방이 밀집해 있다. 아는 사람만 가는 곳에 위치한 '시인'과 '소설'처럼 술집 이름도 참으로 문학적이다. 작가들의 사인과 육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이들의 구성진 노래 자락도 들을 수 있다.

홍대 앞 스쳐간 그가 작가일수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과 <문학과 지성사>(이하 문지)로 한국문학의 흐름이 양분되던 시절을 지나 2000년대 한국문학은 이제 '자유경쟁체제'가 됐다. 각 출판사의 특징이 모호해졌을 뿐더러 한 출판사만 고집하는 작가도 거의 없다.

창비와 문지, 문학동네를 자유롭게 오가는 2000년대 작가들은 문학적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24시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탐 앤 탐스' 광화문 점과 홍대점, 홍대 근처 북카페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작품이 풀리지 않거나 마감을 코앞에 둔 경우 가끔 외도를 하는 정도다.

젊은 작가들의 '개인주의 성향'보다는 문명의 발달이 끼친 영향이 크다. 이제 작가들은 한글이나 워드 파일로 작업한 원고를 이메일로 출판사에 전송한다. 원고료는 통장으로 입금되는 시대이니 이들이 문학 교류를 하는 것은 당연히 연중행사로 치러지는 출판사의 송년회나 작가 대담이 전부다. '아지트' 개념의 카페와 술집을 찾기가 힘든 것이다.

마포구 극동 방송국 맞은편 '버즈'는 아직 문인들의 아지트라 불릴 만하다. 문지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문학과 사회> 편집회의가 있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문학과 사회 동인들을 비롯해 문지 출신의 젊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술과 안주는 특별하지 않지만, LP음반의 옛 추억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강추'인 장소다. 주인장 DJ가 선곡한 올드 팝과 포크송을 듣다 보면 80~90년대가 새록새록 생각나는데, 벽 한쪽을 꽉 채운 LP음반은 운치를 더한다. 이미 몇 해 전부터 7080 아날로그 문화가 다시 인기를 모으며 올드팝 장소로 유명한 곳이 됐다.

홍대 주차장 골목 중간에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도 젊은 작가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작가들이 자주 가는 곳 중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라 지난 해 문학과 지성사 송년회를 이곳에서 했다.

좀 더 젊은 감각을 원한다면 홍대 기찻길 근처 '설탕바'를 가보라. 소설가 한유주, 김태용, 시인 이준규와 최하연 씨 등이 결성한 동인모임 '루'의 뒤풀이를 주로 한다. 강정과 김경주 등 시인과 영화인들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신촌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사이'는 문지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인문사회 아카데미인데 이곳에서 일했던 김경선 씨가 홍대 설탕바의 사장이다.

인사동 옛 집의 추억

60~70년대 명동에 북적이던 문인들은 80년대부터 인사동과 안국동에 본격적으로 둥지를 틀었다. 인사동에 있는 카페 '귀천'은 대표적인 케이스. 카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해 자연스럽게 문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새로 생긴 귀천 분점(인사동)은 문인보다 일반인들이 명성을 듣고 찾는 경우가 많다.

인사동 중간에 위치한 '차 박물관'은 2000년대 문을 연 세련된 공간으로 현기영 소설가, 신경림 시인, 정희성 시인 등이 약속 장소로 자주 찾는다. 특히 현기영 작가는 인터뷰 장소로 이곳을 꼽았는데, 찾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다 다양한 차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물론 이들 중견 원로 작가들도 저녁이 되면 80년대의 '시인'과 90년대의 '소설' 등 술집을 찾게 마련이다.

'시인'은 이름처럼 시인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김사인 시인의 시집 제목인 '가만히 좋아하는'으로 이름을 정했다가 나중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이 술집은 시인들의 문학상 시상식 뒤풀이나 모임장소로 애용된다. 딱히 단골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시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또 다른 인사동 명물 '소설'은 김정환, 이시영, 박형준 시인을 비롯해 성석제 소설가 등이 단골로 찾는 장소다. 김지하 시인이 직접 이용악의 시 '그리움'을 쓴 벽지로 이름을 알린 80년대의'평화만들기'도 인사동 중장년 작가들이 자주 찾는 아지트다. 소설가 황석영, 문학평론가 하응백 씨 등도 가끔 찾는다.

그 밖의 아지트

2000년대 작가들의 아지트는 홍대와 인사동으로 크게 나뉘지만 그밖에 작가들이 드나드는 장소도 있다.

6호선 광흥창역에 있는 '광장호프'는 민족문학연구소 평론가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민족문학연구소 소속 이명원, 오창은 평론가가 만든 인문사회과학 연구 모임 '지행네트워크' 사무소가 광흥창 역 근처에 있는 까닭이다. 광장호프는 이들의 세미나 뒤풀이나 한 달에 한번 일반인을 대상을 한 정기 콜로키움(colloquium 세미나와 토론회)의 뒤풀이 장소로 애용됐지만 지난해 문을 닫았다.

마포역 근처 '탱크호프'도 지리적 위치 상 작가들의 모임 장소가 됐다. 2000년대 초반 작가회의 내 소모임인 '소설합평회' 모임과 '청년분과위원회' 회의의 뒤풀이,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뒤풀이까지가 모두 거기서 열렸다. 작가회의 소모임에 참여했던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 문학평론가들이 이곳을 찾았다.

물론 강남에도 문인들의 단골집이 있다. 양재역 인근 뱅뱅 사거리에 위치한 '도이치호프'도 문인들이 자주 찾는 술집의 하나. 깨끗한 맥주 맛과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문인들이 자주 찾는다. 소설가 김원일과 문학평론가 박덕규, 방민호 씨가 이곳의 단골이다. 신촌 현대백화점 뒤의 '섬'은 시인 김정환 씨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현준만, 소설가 김인숙, 공지영 씨 등이 오랜 단골인 술집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