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전망 거의 없어 루저는 있어도 루저문화 형성은 어려워

1-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2-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3-드라마 '메리 대구 공방전'


1980년대의 최고 인기 만화는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공포의 외인구단>은 야구판에서 낙오됐던 선수들이 프로야구 팀을 결성, 전승 우승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2009년 드라마 <2009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또 1980년대에는 가난하게 살았던 남자가 재벌 총수나 전문 경영인이 되는 KBS <욕망의 땅>, KBS <야망의 세월>같은 드라마가 인기였다.

2009년 현재 MBC <에덴의 동쪽>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두 형제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내용으로 미니시리즈 시청률 수위를 다투고 있다. 1980년대와 2009년 사이의 이 동일한 현상들은 한국에서 '루저'는 있을지라도 '루저문화'는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루저들은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처럼 '지옥 훈련'을 하든, <에덴의 동쪽>의 동욱(연정훈)처럼 사법고시를 보든, 빠른 시간내에 사회 주류로 편입해야 한다.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잭블랙처럼 비디오 대여점에서 소일하며 유쾌한 인생을 사는 루저란 존재하기 어렵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건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태처럼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이 많을 때다. 미국의 그런지 음악을 꽃피운 루저들은 잭블랙처럼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루저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영국의 록 밴드들은 성공하기 전까지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골방에서 음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청춘들은 '88만원 세대'로 불리기 전에도 정규직이 되는 것 외에는 최소한의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얻기 힘들었다. 게다가 IMF와 최근의 경기불황은 루저로 사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한국의 루저들이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의 루저들은 서구의 루저와는 다른 모습을 갖는다. 서구의 루저들은 자신이 루저라는 것을 인정하고,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삼아 그들만의 정서를 루저가 아닌 대중들에게 설득한다.

미국에서 그런지 음악이 인기를 얻자 미국의 청년들은 헝클어진 머리와 다 헤진 옷을 유행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국의 루저들은 정규직 직장인들보다 더 많은 대중문화를 소비할 여력도, 스스로 창작물을 만들어낼 인프라도 갖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루저들은 자기인정 대신 자기부정을 통해 사회에서 생존한다. 루저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루저란 사회 낙오자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취업을 못한 이들에게 '백수'와 '백조'라는 이름이라도 붙었다. 그들은 언젠가는 취업을 할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적당히 부모의 눈치를 봐가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루저들은 더 이상 백수와 백조가 될 수 없다. 대신 그들은 매일 '엄친아'와 비교당하며 쉴 새 없이 취직을 강요받는다. 백수는 사라지고, 대신 '취업 준비생'이라는 모호한 말이 들어선다. 취업 준비라도 하지 않으면, 실직자는 그 자체로 죄악인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루저문화는 존재한다. 스스로를 '뇌 없음'으로 지칭한 노 브레인이 '청년폭도맹진가'를 부르고, 크라잉넛이 '닥쳐!'라며 '말달리자'를 부르던 그 때, 루저 문화는 주류 매체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의 에너지를 가졌다.

그러나, IMF이후 점점 더 사회안전망이 약해지는 한국에서 루저 문화는 그것을 꾸준히 지탱할 소비 시장을 가지기 어려웠다. 대신 루저 문화는 인터넷에서 자리잡았다.

주류 문화에 대한 수많은 비아냥과 패러디물을 탄생시키는 인터넷 사이트 DC인사이드는 한국 루저 문화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존재고, 인터넷에서 인기를 끄는 웹툰(웹 만화)들은 조석의 <마음의 소리>처럼 자기 스스로를 '못나고 인기없는' 남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루저들은 월 몇만원의 인터넷 회선비로 공짜 만화와 음악과 영화(와 야동) 등을 감상하며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정서를 뿌린다.

<88만원세대>가 나오기 전부터 루저들은 '대졸 연봉 초임 3000만원'같은 기사에 울분의 댓글들을 쏟아냈었다. 영화 <방문자>에서 별다른 일 없이 인터넷으로 세상에 욕을 하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식 루저 캐릭터다. 그러나 영향력을 가질 정도의 소비 문화를 갖지 못한 루저들은 인터넷에서의 강력한 영향력과 비교해 실제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많이 갖지 못했다.

10여년 전 홍대 인디씬의 중흥과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성공, 그리고 최근 장기하와 얼굴들의 미니 앨범이 1만장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한 것이 루저 문화의 얼마 안되는 성공 사례들이다. 특히 2007년과 2008년 초까지 만들어진 일련의 '루저 드라마'들은 루저문화의 희망과 좌절의 과정이다.

KBS <얼렁뚱땅 흥신소>는 만화책으로 온갖 지식을 습득한 실업자와 망해가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태권도 선수가 황금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고, KBS <쾌도 홍길동>과 KBS <최강칠우>는 '난세'에 세상사에 관여하기 싫어했던 루저들이 결국 세상에 참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돈이 없으나 꿈을 향해 사는 남녀 실업자의 이야기를 그린 MBC <메리 대구 공방전>은 루저문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은 모두 '마니아 드라마'로 머무른 채 사라졌고, 2009년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재벌 후계자인 고교생이 주인공인 KBS <꽃보다 남자>다. 극도의 경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루저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은 좀처럼 성공하지 못한다.

갈수록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지고, 사회 안전망은 사라지는 한국의 청춘들은 앞으로 더 많은 숫자가 루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루저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물론 '엄친아'들은 루저 문화가 생기든 말든 상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루저도, 루저의 문화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약자에 대한 어떤 여유도 주지 않는 사회라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 루저의 문화는 청년 실업자들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들을 그들 스스로조차 인정할 수 없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는 자명하다. 그 점에서 지금 루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루저라는 자기 인식과, 루저들의 자기 연대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루저에게 가장 좋은 일은 루저에서 벗어나는 것이겠지만, 그 전에 그들은 지금 그들의 인생을 보다 행복하게 살 권리 역시 있다. 그 점에서 젊은 루저들은 '중년 남성 루저'들의 현재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한국에서 기존의 루저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가진 건 한국의 '평범한'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일정한 수입이 있지만 대부분 자식들의 엄청난 교육비를 감당하며 사는 탓에 늘 빠듯한 소비 생활을 하고, 직장에서는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기러기 아빠'와 '사오정'등은 그 루저들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 등 중년 루저들의 인생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지지를 보냈다. 한 때 TV에서 사라졌던 최양락과 이봉원의 복귀에도 이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나 아이콘적인 존재에게 그들이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는 성원을 보낸다. 하지만 젊은 루저들은 아직 매스 미디어상에서 '루저 주인공'을 스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최소한 그들이 지지하는 루저 주인공이 재벌 2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을 때 루저들은 자신이 루저라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루저 문화의 매력은 루저문화를 통해 스타가 되는 루저들이 나올수록 여전히 루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지가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지금 이준익 감독이 더 이상 루저가 아니라고 해서, 혹은 홍대 인디씬의 명문대 출신 루저들이 어느날부터 주류 음악씬에서 주목하는 스타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 '루저 정신'을 배신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선수들이 '나 혼자' 잘하려는 루저들이었다면, 루저문화는 루저들이 '대동단결'하여 점점 더 많은 루저들을 문화적, 경제적으로 더 살만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지금 루저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루저들은, 혹은 '정신적 루저'들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루저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