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구조 살려 리모델링 2012년 북촌일대 아트밸리 구심점으로 재탄생

1-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2-기무사 배치도. 우측하단 십자모양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본관.


기차역에서 인상주의 작품의 성지로 변신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화력발전소에서 런던을 대표하는 컨템포러리 미술의 메카로 발돋움한 테이트 모던.

기존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한 시대의 예술을 담아내는 거대하면서도 유기적인 그릇으로 변신한 성공적인 사례다. 이들처럼 서울에서는 군(軍)시대의 상징물이 현대미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경복궁 동쪽을 마주보고 올라가는 삼청동 길은 화랑과 갤러리가 빽빽이 들어선 '미술관 거리'이다. 이곳은 시민들에게 전통과 현대의 문화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걷고 싶은 거리'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이 거리의 중앙을 차지한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는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버티고 서서 분위기의 흐름을 끊어왔다. 그러던 이곳이 2012년이면 삼청, 사간, 소격, 가회, 통의동에 이르는 북촌 일대를 아트 밸리로 묶어주는 구심점으로 거듭나게 된다.

지난 1월 15일 정부는 기무사 터에 지난 20여 년 간 미술계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계획을발표했다. 미술계는 물론 주변 상권과 시민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1970년대부터1990년대까지 뉴욕의 예술계를 이끌었던 뉴욕의 소호라던가, 소호에서 옮겨온 화랑과 갤러리, 미술관들로 현재 뉴욕의 현대미술 요지로 자리 잡은 첼시와 미드패킹디스트릭트는 미술이 지역에 꽃을 피우면서 상권까지도 활성화된 곳이다. 시들어가던 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과도 같은 현대미술관 건립 이후 생겨날 변화들은 뉴욕의 소호와 첼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대미술관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경우에 한정된다. 이를 위한 주요한 논의가 정부와 미술계 안팎에서 숨 가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요 쟁점들을 살펴봤다.

어떻게 지을 것인가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사한 후 남겨진 부지는 2만 7354m²(8289평), 건평은 3만 4490m²(1만 451평)에 이른다. 건물 수는 병원 구역에 있는 건물 5개 동과 국군기무사령부 구역에 있는 건물 8개 동 등 총 13개 동이다.

이곳은 청와대와 경복궁이 인접해 있어 건물 높이가 16미터를 넘지 못하는 고도 제한을 받고 있다. 이 일대에 4층 이상의 건물이 없는 이유다. 여기에 건축가 박길용이 설계해 1929년에 지어진 기무사의 '본관' 건물은 현재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현대미술관으로 조성할 때에도 건물 외관에 손을 쓸 수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미술관 정책을 맡고 있는 용호성 예술정책과장 역시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가급적이면 전체 틀을 살리면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기무사 터 미술관 건립'을 주도해온 정준모 감독(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은 "기존의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리모델링을하되, 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버 브릿지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한편 기무사는 과천으로 완전히 이전되었지만 병원만은 여전히 기존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청와대와 논의 중인 문광부는 올해 상반기 마무리되는 건립기본계획의 마무리와 함께 존치 여부를 확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외관의 형태에 대해서는 구겐하임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그리고 2007년에 지어진 도쿄의 신국립현대미술관처럼 '현대미술관'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특색 있는 건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관에 담길 작품이다. 과거 작품의 보존뿐 아니라 미래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입장이다. 현재 문광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미술, 사진, 영상, 디자인, 뉴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복합장르 등을 담아 세계적인 현대미술 트렌드의 최전선인 공간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덕수궁미술관은 순수미술, 사진, 판화, 드로잉, 건축 등을 포함해 한국 근대 미술을 연구, 전시하는 국립근대미술관으로 특화하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 섬유, 공예 등을 망라하는 국가의 대표 미술관이자 미술작품의 수집과 연구, 미술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미 운영 중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미술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덕수궁미술관은 소장품이 전무하고 학예사가 세 명뿐이다. 국립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턱없이 작아, 현재의 서관에 동관까지 합쳐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국가 대표 미술관의 역할을 하게 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불과 8천 점에 불과해 뉴욕의 MoMA나 테이트 모던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소장품 구매 예산이 해가 갈수록 줄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미술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문광부는 새로 개관할 현대미술관에서는 컬렉션한 작품을 저장하는 수장고의 기능은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수장 공간보다는 전시 공간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미다.

문광부의 용호성 과장은 "공간의 활용가치를 최대한 높이자는 관점에서 볼 때 수장고라는 기능이 도심 한 가운데 있을 필요는 없다."면서 "서울관이 전국에서 하나만 존재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지방 분관까지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성공적인 현대미술관 운영의 관건은?

같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걸어놓는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들의 발길을 유도하는 생기 넘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큐레이터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재기 넘치는 기획전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턱없이 부족한 큐레이터의 인력구조가 꼽히고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하는 행정직 공무원 대비 학예직 공무원의 비율은 8:2 정도로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한 최열 미술평론가는 "신문사에 경영지원직원은 많고 정작 기사 쓸 기자가 없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은 1:1 정도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 최열 평론가는 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면서 학예직 위주로 채용해 과천과 인력 교체를 하는 하나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기무사를 미술관으로 꾸미는 건물의 외형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부 시스템이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준모 감독은 '병원의 존치여부'를 예로 들면서 "미술관 건립이 정해졌지만 각 부처의 협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한 이후의 과제들에 역점을 두어줄 것을 당부했다.

"소장품의 확보라던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미술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역할 분담을 통한 시너지 효과 방안의 검토, 예상치 못한 난관을 뛰어넘기 위한 대책강구 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문광부의 용호성 과장은 "컬렉션 비용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컬렉션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국내 미술관에는 전무한 '기부 문화'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화두이기도한 '지속 가능한' 미술관 건립을 위한 각계의 치열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뮤지엄 쿼터'는…
예술장르 망라한 복합문화공간… 벤치마킹 할만 한 모델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내의 역사적 공간인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박물관. 이들 건물의 길 건너편에는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젊은 전시공간인 뮤지엄 쿼터(Museums Quartier)가 자리하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2001년 6월 미술관 단지로 개관한 이곳은 미술을 축으로 다양한 예술장르가 망라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은 제쳐두고라도 꼭 들러볼만한 랜드마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자연사박물관과 미술박물관과 뮤지엄 쿼터까지 합쳐서 3만 평에 이르는 부지를 가늠해본다면 뮤지엄 쿼터는 약 1만 평 정도의 부지를 가진 것으로 보여 진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벤치마킹 대상은 달라지지만, 부지의 크기나 여러 건물의 공간구성 측면에서 2012년에 건립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곳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미술계에서 나오고 있다.

전체 틀을 둘러싼 마구간의 형태를 그대로 남겨둔 채로 안에서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퐁피두센터가 한 건물에 수직적으로 존재한다면 이들은 넓은 공간에 흩어지듯 자리하고 있는 형태다.

레오폴드 미술관, 현대 미술관 무목(MUMOK), 그리고 전시기능만을 갖춘 '쿤스트할레 빈', 줌 어린이 미술관과 담배 박물관 같이 전시 위주 공간과 함께 건축전시 및 공연 이벤트 공간인 건축센터, 무용 이벤트 공간인 탄츠쿼르티에, 실험적인 뉴 미디어 전시공간인 퍼블릭 넷베이스, 어린이 전용극장과 영화관, 디자인숍, 카페테리아 등 10여개의 독립적인 공간이 유기적으로 커다란 단지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단지 미술을 보러 오지 않더라도, 다른 예술장르를 접하면서 전체를 아우르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