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순 예술의전당 사장민간기업 CEO출신 첫 수장, 문화 향유 계층 확대·세계적 아트센터 도약 앞장"가장 좋은 공연 저렴하게 공급해 문화 향유 계층 확대할 것"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변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시대이다. 산업화시대의 근간을 이뤘던 경제 위주의 삶은 이제 문화가 중심이 되는 생활 패러다임으로 바뀌었다. 인간다운 삶, 삶의 질을 중시하는 21세기 웰빙시대를 추동하는 요체는 문화이다. 오늘날 문화는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 그 자체로 우리 생활과 사회 변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주간한국은 국민의 '문화적 삶'을 고양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모범적인 선례를 보이는 각 분야 지도자를 발굴, 선양하기 위한 문화 CEO 코너를 신설한다. 여기에 소개되는 '문화 CEO'는 21세기 웰빙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들로 한국 사회의 상징적 좌표라 할 만하다.

광복 직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국립극장 음악회를 관람한 6살 아이는 이내 음악에 빠져든다. 고교 때는 틈만 나면 클래식 감상실을 드나들고, 대학에서는 팝과 재즈를 섭렵한다. 병행해 미술과 문학은 어린시절부터 붙어다녔다.

아이는 사회인이 되어서도 예술을 늘 가까이하며 남과 공유하고, 예술가를 지원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그는 국내 예술 공연시설을 대표하는 예술의전당 사장이 됐다. 연륜이 쌓인 '예술 이력'이 민간기업 CEO 출신을 최초로 경영자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바로 신홍순 사장이다.

지난달 중순 그의 이름을 중진 작가의 전시회 뒷풀에서 우연히 들었다. 한 뮤지션이 어려웠던, 시절 기업 CEO이던 신홍순 사장의 도움으로 연주회를 열수 있었다고 했다. 어느 미술인은 신 사장이 미술계에도 적잖은 지원을 해왔다고 부연했다.

예술을 알고 이를 아껴온 신홍순 사장이 예술의 전당을 이끌게 되면서 많은 변화와 발전의 기대를 갖게 하는 배경들이다.

'뷰티풀 라이프!'신홍순 사장이 내건 예술의 전당 슬로건이다. 국민들이 문화예술의 향기 속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와드리겠다는 선언이다. 신홍순 사장은 이를 위해 문화 향유계층을 확대하고 세계적 아트센터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미 각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하드웨어 강화, 국제 역량 배양 등 세계적인 복합아트콤플렉스의 위상을 갖춰가고 있다.

신홍순 사장이 예술의전당과 함께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문화강국'이다. 문화로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행복을 전하는 그런 나라다.

그 원대한 꿈, 문화예술을 통한 뷰티풀 라이프를 선도하는 문화 CEO 신홍순 사장을 만났다.

예술의전당과는 취임 전부터 인연이 깊죠?

"공연이나 전시를 자주 보러 온 것도 있지만 예술의전당에서 제야음악회를 열고 해외 동포 화가들을 후원해 국내에 전시를 여는 등 이런저런 인연이 많습니다"

민간기업 CEO 출신이기에 예술의전당에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CEO 출신이기 때문에 변화가 있기 보다는 예술의전당의 역사가 변화를 이끌어 왔다고 봅니다. 예술의전당은 가장 먼저 생긴 복합문화콤플렉스입니다. 예술상품을 제조하고 공급하는 것으로 20년 전에 시작됐죠. 우리나라 클래식문화를 확산시키고 관객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바가 큽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작사가 많이 늘어났고 공연예술이 산업으로서의 기반이 잡혀있어요. 예술의전당은 공연 콤플렉스로서 그동안 공연 기획과 제작을 동시에 수행해 왔는데 앞으로는 제작을 줄이고 기획중심으로 나아갈 겁니다. 오페라 제작도 개관작인 <피가로의 결혼> 이외에는 제작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요. 상주하는 국립단체의 제작능력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이들과 협력이 잘 되면 제작에 쓰던 비용을 기획쪽으로 활용하여 남은 예산으로 더 좋은 공연을 올리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입니까?

"예술의전당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고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주는 문화예술공간입니다. 이런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공익성과 교육성을 내재한 우수한 예술프로그램을 합리적인 가격에 보급하는 것과 누구나 편안히 쉬고 즐기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드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예술 소비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연도 기획 중심으로, 대관방식도 단기대관에서 중기대관으로 개선하고 있어요.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을 늘려 문화 휴식처의 면모를 일신했고요. 또 예술의전당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시아 최대의 복합아트콤플렉스인 만큼 이에 걸맞는 하드웨어를 강화하고 질적인 향상도 꾀하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을 운영하면서 해외에 벤치마킹 대상이 있는지요?

"런던의 바비칸센터가 복합적 구조를 가졌다는 면에서 우리와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국고와 기업 후원 외에도 개인들의 후원이 많이 필요해요. 비타민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을 붙인 예술의전당 입구에 식당을 늘려 먹을거리를 늘리고 아트숍 같은 곳에서 살거리 등 즐길 장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긴 부대수익을 예산에 넣기 위해 이러한 사업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Before & After라고 해서 공연 전과 후에 즐길거리를 늘릴 예정이고요."

문화예술 향유 계층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고 봅니다.

"다양한 계층이 다양한 문화를 저렴한 가격, 또는 무료로 향유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개발하고 있어요. 11시 브런치 콘서트나 청소년 콘서트는 1~2만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인데 이처럼 공연 마니아를 키우고 클래식 애호가들을 가장 많이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예술성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교육기회를 주고 지방 사람들이 공연보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공익의, 양질의 교육적인 공연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 그리고 젊은 층에게 20-30% 싸게 티켓을 구입하게 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마련하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예술의전당이 강남 부유층을 위한 문화공간이라는 비판이 있는데요.

"그런 시각은 예술의전당이 강남에 위치한다고 해서 생긴 편견이라고 봐요. 예술의전당 회원 주거분포도를 보면 서울, 위성도시, 일부회원은 지방에도 거주하고 있어요. 전국에 공연문화 확산을 위해 전국문예회관협회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예술의전당 사장이 그 협회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어 우수 프로그램 교류와 공연행정, 무대기술 교육도 활발합니다. 부유층만을 위한 곳이라는 지적은 고가의 티켓발행이 문제된 것으로 보는데 한국의 경우 외국에 비해 내한시 공연횟수가 적고 단기간에 공연 준비를 하다보니 공연단가가 높고 협상에도 불리해 높은 개런티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중장기 대관방식으로 바꾸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운영과 관련해 대중가수공연 수용문제로 인한 대중문화 차별화 논란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순수예술 전용극장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 뿐인데 이들은 그런 시설에 맞게 설계돼 대중공연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좌'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도 극장을 특화시켰어요. 상업성이 강한 대중공연을 개최하다보면 교육성과 공익성이 강한 순수예술이 설 자리가 없어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특성에 맞게 보완, 발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술의전당을 특성화한다는 취지를 밝혔는데 구체적인 입장은 무엇인지요

"예술의전당은 국가 브랜드 공연장으로서, 특화된 공연장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발레 등을 위주로 공연하기로 했고 콘서트홀은 클래식을 위주로 하되, 크로스오버 수준의 음악 역시 10-20% 정도는 수용하려고 합니다.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은 대중을 위한 뮤지컬이나 연극을 위주로 하고 서예 전문관은 서예뿐 아니라 전통문화를 위한 공연장으로,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은 서양의 예술을 담아냅니다. 문광부는 지난해 이 같은 특성화된 공연장 운영에 대한 예술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같은 정책에 찬성합니다. 요즘 뮤지컬 전용극장이 속속 개관하거나 착공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우리도 기업의 후원을 받아 가장 먼저 리노베이션 하고 싶은 곳이 토월극장입니다. 이 곳의 좌석을 두 배로 늘리면 뮤지컬을 수용할 수 있어요."

예술의전당이 세계 5위권의 문화예술공간이 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오페라 하우스 리모델링을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봐요.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의 시설은 괜찮지만 서예관, 토월극장, 자유소극장 등이 리모델링 되고 나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5위권 안에 들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서예관은 '국학'의 전시관으로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 고유의 것을 담아낼 수 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 다음은 질적인 문제인데 창작 오페라가 너무나 취약합니다. 현재 해외 성악가나 연출가가 와서 우리의 성악가와 함께 공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페라가 이런 면에서는 많이 처지지 않나 해요. 전시는 세계적인 전시가 많이 들어와서 상당히 수준이 높아졌어요. 클래식 역시 매년 진행하는 교향악 축제는 아시아권에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봐요. 서울시향 역시 아시아에서는 상위권에 속하고요. 질적인 면은 우리 창작만으로는 아직 어렵죠.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우리 성악가들이 유럽에서 최고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고 기악이나 피아노에서도 젊은이들의 활약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공연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3년 전에 준비를 하는 중기 계획으로 공연기획에 중점을 두어 질 높은 공연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해외 공연장과의 교류는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얼마전 해외의 주요 공연장의 사장들과 미팅을 했어요. 현재 런던의 바비칸센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교류 중인데 그들은 공기 빼고는 모든 것을 후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들에게서 후원을 받는 형태나 경영적인 교류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문화가 달라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후원의 일환으로 현재 객석기부를 시행 중인데 성과는 어떤지요?

"오페라 극장의 객석과 발코니에 대한 기업과 개인의 후원을 받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성과를 말하긴 어렵지만 호응을 얻게 될 것 같아요. 기업은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가 문제이지만 협찬금이 이어지고 있고, 개인의 기부는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문화예술 선진국에선 기부가 관행인데 우리는 상속이 대세여서 기부가 미진해요. 해외처럼 죽으면서 기부하는 유증제를 하거나 사회가 증여세 혜택 등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에서 법적 보장이 되지 않으면 기부가 이루어지기 어렵죠. 이 같은 법적 보장이 미국의 기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3년인데 임기 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스템이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죠. 누가 오더라도 시스템이 일을 하도록 하는, 그런 조직이 갖춰지도록 기본을 만드는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사항이라고 봐요. 국가 기관으로서 갖출 자세나 윤리문제, 가령 직원들은 임금이 낮지만 보람을 느끼고 정도를 갖추어 가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아트콤플렉스라 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이 제대로 커가고 좋은 공연을 올리면서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곧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일 겁니다."

예술 공급주체로 소비자인 국민, 그리고 정부에 전할 말이 있다면

"기업에 있을 때 문화를 후원해왔습니다. 전략적으로도 기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본거죠. 개인도 작은 돈이지만 지원해줌으로써 전국을 대상으로 문화를 보급하는 역할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대중적 문화예술 돕기, 나누기 운동이나 캠페인 등도 언론에서 다뤄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해요. 경기불황으로 전체 분위기가 무거운데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수록 정신적 즐거움을 줘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급하고 대관료를 줄여주는 것과 비는 좌석에 대해서 교사나 학생, 젊은 층에 싼 값에 공급하는 것 등을 정부에서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올해 주목할만한 공연을 꼽는다면

"오페라하우스 개막작인 '피가로의 결혼'이죠. 기발한 연출가의 색다른 오페라여서 기대하고 있어요. 연간 스케줄이 최근에 작성되었는데, 3월말에 있는 오페라극장의 발레 '신데렐라'와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4월),'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4월)'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9월) 공연이 생각납니다. 뛰어난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교향악축제도 눈여겨볼 만하죠."

예술의전당이 시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가진 공연장이 되길 바랍니까?

"우선 가장 좋은 공연을 하는 곳, 민간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곳이라는 인상이죠. 실제 오페라 하우스와 콘서트홀은 국내 최고입니다. 예술인들은 공간만 있으면 모두 여기에서 하고 싶어하는데 얼마 전 내한한 플라시도 도밍고도 리허설을 하면서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죠.

예술의전당이 시민들에게 복합아트콤플렉스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 국민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에 기여하는 복합문화예술기관이라는 이미지 말이죠."



진행 = 박종진 편집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