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순 사장 '비타민 스테이션' 등추진 문화예술공원 조성에 박차

한 해에 예술의 전당을 찾는 이들은 공연, 전시 관람객만 200만 명을 헤아린다. 산책을 하거나 휴식을 위해 찾는 사람까지 더해지면 300만 명이 훌쩍 넘는다. 매일 공연이나 전시를 보지 않고 들렀다 가는 시민들만 2천 명인 셈이다. 초창기 5년에서 10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지만 이젠 예술의 전당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그 동안 공연, 전시 관람이 아닌 휴식을 위한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음악분수였다. 3월부터 11월까지 월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네 차례 리듬에 맞춰 춤추는 음악분수는 예술의 전당의 명물이다. 한동안 네티즌 사이에서는 하트 모양으로 변한 음악분수 사진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음악분수 외에는 앉아서 쉬거나 먹고 즐길 곳이 없다는 것이 휴식처로서의 예술의 전당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다.

그 아쉬움을 완전히 덜어주는 공간이 지난해 말 보수공사를 끝낸 예술의 전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들이 편안히 쉬고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공원'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신홍순 사장의 의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공간, 바로 '비타민 스테이션'이다.

예술의 전당 초입, 공연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은 예전의 어두컴컴함을 벗어났다. 투명한 유리관으로 꾸며진 공간은 자동 유리 문을 통과해 공연장이나 미술관 등으로 빠져나가는 출구까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넓게 자리잡은 매표소와 전에 없던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카페가 눈길을 끈다. 오페라하우스나 한가람 미술관으로 나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바로 옆의 물방울 분수도 신선하다.

식당이 추가로 입주할 공간이 구획되어 있고 그 외의 공간은 'V-갤러리'라 이름 붙여진 로비 전시회장으로 쓰인다. 이곳에선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자동차 디자인 전시가 열리기도 했고 3월 29일까지 20세기 디자인 거장 '찰스 임스'가 디자인한 가구와 작품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전시는 무료다.

'비타민 스테이션'은 낮 동안의 예술 콘텐츠가 전시에 한정되어 있다는 데 착안해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즐길 거리를 개발하자는 것이 출발점이다.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로비를 무료 전시장이나 다양한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해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데서 힌트를 얻었다. 예술의 전당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공연이 끝난 후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카페의 입주는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로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따금씩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러 스파게티 면의 삶은 상태까지 체크 할 정도로 비타민 스테이션의 퀄리티 유지를 위한 신홍순 사장의 숨은 노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같은 변화엔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과 예술의 전당의 경영개선을 위한 재원조성 창구의 다양화라는 복안이 있다. 부대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곧 양질의 예술프로그램 제작과 고객관리, 마케팅 시스템 구축에 재투자 해 경영의 선순환을 꾀하고자 함이다.

이곳이 먹거리의 즐거움을 만족스럽게 채워준다면 한가람 미술관 옆, 야트막하게 원목으로 지어진 작은 무대는 볼거리의 공간이다. 거리 예술가를 적극 유치해 아티스트에게는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예술의 전당은 '예술공원'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예술장터 운영과 도서전, 이벤트형 전시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즐길 거리도 풍성하게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공간 조성을 위해 실외에는 나무, 꽃 등을 심어 안락한 휴식처가 될 수 있게 하고 실내에 화분이나 예술소품을 설치해 거대한 공연장이라는 위압감이 아닌 예술이 주는 안락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변화 이면에서도 예술의 전당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국립예술상주단체와 협력을 위해 마주잡은 손이다. 앞으로 제작보다는 공연 기획과 홍보, 마케팅 등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신홍순 사장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간 예술의전당과 국립예술단체 공연 장르가 동일해 협력방안이 적어 상주의 의미가 없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종종 외부로 표출되곤 했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 역할을 바꾸어 국립예술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양질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홍순 사장은 그 동안 벌어졌던 상주단체와의 균열을 메우고 상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 가장 먼저 평등 상주 계약을 체결하고 공연 프로그램 구성과 운영협조를 위한 공식 협의체를 구성했다. 신홍순 사장을 비롯해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코리안심포니 상임지휘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미뤄졌던 오페라단의 연습실 건립 역시 기지개를 펼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최근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작된 객석기부에는 신 사장의 기부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드러난다. 예술의 전당의 재정자립도는 2007년 기준 82%로, 시드니오페라 하우스 38%, 런던 바비컨센터 43%, 일본 신국립극장 35% 등 국내는 물론 해외 아트센터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재정자립도가 82%라는 말은 곧 국가에서 받는 지원금이 전체 예산 중 18% 정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곧 지원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모두 예술의 전당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내야 한다는 의미. 그러나 공익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60~70%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기치 못한 화제로 한 해 앞당겨 2008년에 지어진 오페라하우스에서 진행되는 객석기부는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를 기업과 정부 외에 개인으로까지 확장 시키고 있다. 그 동안 국내에 장학기금, 불우이웃돕기 등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개인 독지가의 기부는 있어왔지만 선진국과 같이 문화예술기관에 대해 개인의 기부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국내에 이러한 형태의 기부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여기에 세금혜택 등의 문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신 사장은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세금 혜택에 대한 논의를 끌어낼 계획이다. 이외에도 기업후원 및 협찬 유치와 더불어 정부지원 유치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

지난 2008년은 예술의 전당 설립 20주년으로, 올해 새로운 20년의 원년을 맞았다. 신홍순 사장은 2008년 7월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3년 동안 이루고자 하는 다섯 가지 과제를 내놓은 바 있다. 예술의 전당을 문화예술공원으로 조성, 새로운 경영정책 수립, 세계적인 아트센터로 발돋움, 수익성과 공익성의 조화, 대관방식의 변화 등이다. 이들 중 이미 실행에 옮겨진 것도 있지만 아직 많은 부분들이 목표로 향하는 과정 중에 있다. 지나간 6개월과 앞으로 남은 2년 6개월, 그 동안 예술 지원에 적극적인 대기업 CEO였던 신홍순 사장은 이제 예술의 전당을 화폭 삼아 문화강국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꿈을 그려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