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고전은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편성을 가진 현자의 목소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혜안을 준다. 난세의 시대, 고전이 더 주목받는 이유다.

우리시대 사람들은 어떤 고전을 읽고 있을까? 고전은 그들에게 어떤 지혜를 던져 주었을까? 사회 각계 인사들이 소개하는 고전과 이들의 소감을 들어본다.

사회생활 하는 데 많은 가르침 준 '중용'
신홍순 예술의전당 사장

신홍순 예술의전당 사장은 <중용(中庸)>을 꼽았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중용은 논어, 대학, 맹자와 더불어 사서(四書)로 꼽힌다. 신 사장은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대할 때 정성이 있어야 함을 가르쳐주었고, 나 자신을 다스릴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전은 경영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신 사장은 이 책을 추천하며 책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모든 일은 미리 계획하면 성립되고,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은 미리 생각해 놓으면 본 말에서 벗어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먼저 결정해 놓으면(추진에) 곤란을 당하지 않는다. 행동은 미리 정해 놓으면 실수하지 않고, 도(道)가 미리 정해져 있으면 궁하지 않게 된다'는 부분이다.

"매사는 사전 준비가 절대 필요합니다. 성실하게 살아가야 도(道)가 세워질 수가 있고, 또 도가 구체화되고 실천될 수 있을 겁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신용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용>은 이처럼 당연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신 사장은 "중용에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에 대한 가르침도 있다. 초심과 양심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어 주었다"고 말했다.

신홍순 예술의 전당 사장(왼쪽), 김훈 소설가(가운데), 김인식 킨텍스 전 사장(오른쪽)
'근사록' '퇴계집' 작가의 자세 다지게 해
김훈 소설가

김훈 작가의 인터뷰 기사에는 유독 논어와 맹자 등 동양 고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는 논어와 같은 동양 고전을 읽으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고전을 읽을 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과 인간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대표작 <칼의 노래>가 대학시절 읽었던 <난중일기>를 모티프로 쓰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달 인터넷 서점이 주최한 한 행사에서 그는 주희의 <근사록>과 퇴계의 <퇴계집>을 소개하며 작가의 자세를 다지게 됐다는 말을 했다.

"<근사록>이라는 책에서 봤더니 주희 선생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 <논어>와 <맹자>를 읽기 전과 읽은 후가 같다면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시더군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니까 평생 책을 읽어도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인간이 책을 읽고 뭔가 변하는 게 있다면 길이 있는 것이고 변화가 없다면 길이 없는 것인데, (변화가 있다면) 책에 길이 있는 게 아니고 책을 읽는 인간 안에 있는 것이죠."

이어 퇴계집의 내용을 설명하던 그는 글을 쓴다는 행위가 인간과 세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근사록>과 <퇴계집>을 읽으며)인간의 존재와 현실로 연장될 수 없다면 책 속의 진리란 공허하고 덧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느낌을 받는 것은 아주 겁나는 일이죠. 두려움 속에서 앞으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나가겠습니다."

대학시절 충격으로 다가온 '역사의 연구'
김인식 킨텍스 전 사장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김인식 킨텍스 전 사장은 다독가다. 일 년에 40권 이상을 읽는다고 하니 어림잡아 일주일에 한 권은 읽는 셈이다. 평소에도 고전에 관한 책을 자주 추천했던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읽는 책이 가볍다"는 말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킨텍스 면접 때 '인생관에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젊은이들이 거의 대답을 못했어요. 경영학 관련 책은 이야기 하는데, 고전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 성장을 위해서도 고전을 읽을 필요가 있어요."

김 전 사장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꼽았다.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이 책은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역사의 연구>는 세계사를 21개 문명권으로 설정해 그 가치와 의미를 다룬다. 문명발생의 계기로 '도전과 응전'이라는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문명의 발생, 성장, 쇠퇴, 해체의 주기적인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1946년 출간된 이 책은 고전 중 '최신작'인 셈이다.

김 전 사장은 30여 년 간 코트라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때, 토인비가 말했던 문명의 흥망성쇠를 직접 체험하게 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작지만 강한 나라를 지향해야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 만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세계인류사와 문화사에 무엇을 기여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채근담' 불안감 잠재우는 데 특효약
김승범 나다텔 대표이사

비디오 부품 업체 (주)나다텔의 김승범 대표이사는 노자의 <도덕경> <소크라테스의 대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선가귀람> <벽암록> <금강경> 등 여러 권의 동서양 고전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동서양 고전을 접하며 뚜렷하진 않지만 진리를 향한 방향을 잡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30대 중반 회사를 창업했을 때, 압박감을 느낄 때마다 인문학 서적과 고전을 읽게 됐다고. 그는 "누구에게 질문하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경제상황일 때 고전에서 지혜를 빌려온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 대표는 40대 들어서면서 자기 전 30분에서 1시간 매일 책을 본다. 고전을 읽으면서 멀리 내다보는 지혜, 인내심,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홍자성의 <채근담>은 불안감을 없애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동경이 일시적인 불안을 잠재우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