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기 승리는 국가의 승리 국위선양의 정점, 한국 스포츠 독특한 문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0분토론’ 손석희입니다. 오늘 토론주제는 ‘한국야구, 봄은 왔는가?’입니다.”

지난 주 MBC‘100분 토론’의 주제는 ‘한국야구’였다. 사회 이슈와 방향타를 제시하는 시사 프로그램의 주제가 한국야구라는 사실은 지난 한 주 한국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가 야구, 정확하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는 말과 등식을 이룬다. 사람들은 이념과 종교와 성별을 초월해 텔레비전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런 현상에 대해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의 저자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우리는 참으로 독특한 스포츠 문화를 가졌다”고 말한다. 우리 국민은 스포츠 종목, 팀, 선수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오직 금메달과 외국에서 코리아 브랜드를 높이는 스포츠 선수들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이다. 한국에서 스포츠 경기는 국위선양의 정점이고, 국제경기의 승리는 곧 국가의 승리가 된다. 때문에 ‘체력=국력’이다.

정희준 교수는 “여타의 대중문화와 달리 스포츠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분석의 대상에서 떨어져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스포츠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스포츠를 필요로 했다”고 말이다.

식민지와 개발독재, 자본주의 홍수에서 우리는 강대국에게 위협받는 ‘열등생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탈출구는 스포츠였다. 한국인의 우수성과 현대국가로의 발전을 증명하는데 있어 스포츠는 가장 탁월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박치기 왕’ 김일부터 국민남매 박태환과 김연아까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스포츠 영웅도 함께 탄생했다.

이를 테면, 스포츠는 모든 삶의 시름을 덜어주는 판타지인 셈이다.

스포츠는 인민의 아편일까?

스포츠가 판타지가 되는 것은 그 열정이 사회의, 개인의 내재된 에너지와 접목되기 때문이다. 과도하고 편중된 스포츠 판타지는 자칫 사회 통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개인의 삶을 굴절시킬 수 있다. 1960~70년대, 1980년대 내셔널리즘으로 무장된 스포츠 판타지가 특히 그러했다.

2002년 월드컵은 스포츠 판타지의 절정을 이뤘다. 대한민국과 국민의 무한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통합과 발전의 잠재력을 확인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스포츠에 대한 전국민적 맹신, ‘스포츠 민족주의’가 지적되기도 했다.

그리고 4년 뒤 2006년 월드컵에서 스포츠 판타지는 다시 거리를 점령했고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과의 연속 경기는 애국심에 불을 당겼다.

“국가가 있고 야구가 있는 거 아닙니까, 국가가 없으면 야구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지난 2008년 11월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WBC 감독 수락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번 WBC 대회에서 쾌거를 이룬 원동력과 국민에게 열광적인 스포츠 판타지를 심어준 배경이 어쩌면 ‘국가가 있어야 아구가 있다’는 김 감독과 선수들의 신념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스포츠는 스포츠’라는 명제를 스포츠 판타지가 넘어설 수는 없다. 그래야 스포츠와 그 영웅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다는 것을 스포츠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