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희망의 판타지]태권도서 핸드볼·역도·스키로 스크린 지평을 넓혀이데올로기 도구서 스포츠 자체의 매력 표현으로 변화

1-'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클레멘타인' 3-'국가대표' 4-'킹콩을 들다'

한국을 대표하는 몇 가지 스포츠 종목이 있다. 물론 한국은 이제 매번 10위권을 유지하며 다양한 종목에서 고른 성적을 거두는 스포츠 강국이 됐지만, 어떤 종목에선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게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다. 태권도와 양궁은 그 대표적인 종목이다.

최근엔 핸드볼과 역도도 한국을 연상시키는 그 무엇이 됐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이후 영화 속에서 스포츠가 다루어지는 방식은 관제 이데올로기적이거나 가족주의에 경도된 신파적 요소가 강했다. 혹은 그 두 가지가 결합된 형태였다. 하지만 태권도로부터 시작된 한국 대표 스포츠들은 조금씩 변화를 거듭하며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스포츠영화의 오랜 굴레, 국가와 가족

서울올림픽의 성공은 당시 시범종목이던 태권도를 12년 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게 했다. 태권도가 처음으로 채택된 이 대회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딴 것은 물론이다. 이후 10년째가 되어가는 지금, 세계인에게 태권도는 한국의 정신, 태권도 정신은 곧 한국이다.

하지만 극강의 이미지는 때로는 타자에겐 종종 거부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올림픽 이듬해 제작된 ‘미국’ 태권도영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1989)에서는 이런 ‘한국 태권도’에 대한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우리편’은 미국 대표팀이고 그 적은 (강력하고 흉폭한) 한국 대표팀이다.

미국 대표팀의 일원인 한국계 미국인 타미는 한국 대표팀 최강의 선수에게 죽임을 당한 형의 복수를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 마침내 왠지 ‘북한스러운’ 분위기의 장충체육관에서 결승전이 벌어지고 고군분투 끝에 타미는 형의 원수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타미는 복수의 주먹을 멈추고 그대로 경기는 한국팀의 승리로 끝난다. 시합 종료 후 한국인 ‘적’은 미국인 타미에게 사죄하며 패배를 인정한다. 스포츠로 하나 된 지구촌 형제의 감동 스토리!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는 한국관객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한국계 미국인이 주축이 되긴 했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철저히 미국인 중심이었고 한국인은 ‘싸움을 잘하는 거친 사람들’ 정도로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극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응원을 하는 한국 국민들의 모습도 전체주의 국가의 ‘인민’처럼 그려졌다.

한국 관객들로서는 타자화된 자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낯선 방식에 찝찝한 뒷맛을 느꼈을 것이다.

역시 태권도를 소재로 한 영화 ‘클레멘타인’(2004)은 이와 반대로 철저하게 한국인 중심의 스포츠영화다. 미국 LA에서 펼쳐진 세계태권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주인공인 한국 최고의 파이터는 주최 측인 미국의 농간에 힘입은 미국 파이터에게 억울하게 패해 우승을 놓치게 된다.

실의에 빠진 주인공이 할 일이란 당연히 방황이다. 영화는 격투기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클리셰를 총동원한다. 마음잡고 살려 해도 폭력조직이 그의 싸움 솜씨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정의의 주인공은 끝까지 반항하지만, 비겁한 무리들은 으레 그렇듯 주인공의 딸을 납치해 그를 협박한다. 결국 주인공은 딸을 구하기 위해 불법 이종격투기 무대에 서게 되고,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인 미국 파이터와 또 한 번 맞붙게 된다.

태권도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이종격투기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를 끌어들여 만든 ‘클레멘타인’은 국제적 경기이기는 하지만 국가간 경기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태권도란 ‘태권도적 발차기’의 다른 이름이고, 따라서 이 영화는 스포츠영화라기보다는 스포츠적 요소가 내재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대신 스포츠를 느껴라

최근 국가간 스포츠 경기를 소재로 스포츠영화만의 감동을 제대로 구현한 영화는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올림픽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비인기 종목으로 꼽히는 핸드볼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과 훈련과정을 그리고 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생순’이라는 어휘가 스포츠 중계에서 돌아다니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이룩한 ‘신화’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포츠영화들과 다르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결국 승자가 되지 못하며 모든 이가 잘 살게 되는 해피엔딩도 아니다. 그 이유는 ‘핸드볼’이라는 비인기종목이 주는 현실적인 설움에 기인한다.

4년에 한 번, 여자대표팀은 메달을 따기 어려운 구기종목 중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그들이 사투 끝에 거머쥔 메달은 또 다시 척박한 국내 핸드볼의 현실에 묻힌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역시 처지는 비슷하게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성공 사례가 없는 ‘스포츠영화’인데다 그것도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실제 대표팀 환경만큼이나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최고의 순간’을 포착해 감동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감동이 스포츠영화의 전형적인 감동과 궤를 달리하는 것은 ‘핸드볼’이라는 스포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배우들이 실제 선수들처럼 몸을 만들고 핸드볼을 배우며 경기 도중 쓰러져 우는 과정을 보며 그네들의 고통과 함께 실제 선수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된다.

선수들의 현신인 배우들을 보며 진짜 ‘핸드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만세’가 아니라 ‘이것이 핸드볼’이라고 투박하게 말하는 영화는 당연히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다.

스포츠영화의 지평을 넓힌 만큼 그 안에서 변주할 영역도 늘어났다. 6월 개봉을 앞둔 영화 ‘킹콩을 들다’(2009)는 시골 여자중학교 역도부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역도’와 ‘여중생 선수’이야기라니, ‘우생순’의 전례가 없었다면 생각지 못했을 결과다. 여전히 비인기종목인 스키점프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국가대표’(2009)도 하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포츠영화는 오랫동안 한 국가의 영광을 위한 선수들의 희생과 성취, 또는 ‘가족을 위해 뛴다’는 가족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가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 대신 스포츠 본연의 속성과 즐거움을 자아내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