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향악단의 조건] 교향악 축제 20년정상급 연주자·유망주 협연 등 성대한 만찬클래식 애호가는 즐거워

한국 오케스트라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인 부츠여사와 피아니스트 박경화와 이유경을 주축으로 창단한 중앙악우회를 그 시작으로 본다. 당시 단원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홍난파도 있었다.

처음으로 조선 사람들이 연주하는 교향악단이었던 중앙악우회는 그러나 프로 교향악단인지 아닌지 가 불분명하다.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이후 음악가로서의 삶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좀 더 근접한 과거로 내려가보면 지금의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해군교향악단을 흡수해 1957년 설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향과 더불어 국내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KBS교향악단은 한 해 전인 1956년에 육군교향악단을 토대로 창단되었다.

정확한 수치가 나와있지 않지만 현재 청소년 교향악단까지 포함할 경우, 국내에 오케스트라는 100여 개 정도로 추정된다. 그 중 서울에서 활동하는 프로 교향악단이 10~20개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지나치게 밀집되어 있는 데다가 창단 연주회 후에 유야무야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풍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그에 앞서 국내에서 오케스트라의 옥석을 구분하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고 묻는 시각도 있다.

“프로는 프로로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가. 가령 프로 교향악단이라면 정당한 보수와 함께 의무와 권리를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가. 한편 정부는 교향악단을 제대로 육성했는가. 연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가를 생각해보면 현재 국내 교향악단의 수준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서울시향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재정적으로 안정된 오케스트라를 찾기 어렵다. 민 교수의 의견대로라면 의무와 권리를 거론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는 현재로선 서울시향뿐이라는 말이다. “삼위 일체라고 봅니다.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 뛰어난 지휘자와 단원, 관객을 생각하는 음악, 그것이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죠.”

좋은 오케스트라를 이 같이 정의한 민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정명훈 지휘자의 도전은 국내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우울한 현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교향악단의 전반적인 연주력 향상에 기여해온 교향악 축제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으며, 새삼 그 존재가치를 빛내고 있다. 매년 봄이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교향악의 만찬. 교향악 축제는 1989년 음악당 개관 1주년 기념으로 공연되었지만 음악 애호가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연례축제로 이어져왔다.

(위 좌)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우)피아니스트 유영욱

지난해까지 중복으로 셈할 경우, 324개 교향악단이 참여했고, 457명의 협연자가 출연하였다. 첫 10년은 교향악단의 양적인 증대에 기여했다면 이후 10년은 질적 향상에 기여해왔다. 초기 일부 단체의 연주력이 도마 위에 오르거나 관객들의 무관심 속에 치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기획과 공연 프로그램에 내실이 기해지면서 교향악 축제는 전국 교향악단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 이상의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단 두 번을 제외하고 18번이나 교향악 축제의 포디엄에 오른 박은성 지휘자. 서울시향, 수원시향, 코리안 심포니 등 함께 오른 교향악단도 가장 많은 일곱 단체에 이른다. 그는 교향악 축제의 20주년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 20여 개 교향악단을 한 자리에서 견주어볼 수 있는 곳은 교향악 축제뿐이죠. 국내 오케스트라의 기량향상에 절대적으로 이바지 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도달했을 수준이겠지만 그 시기를 앞당겼다고 보여져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음악적 성과라던가 지방과 서울간의 교향악단이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드물지요.”

2009년 교향악 축제는 지난 3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객원지휘: 최희준)와 피천득의 외손자로도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브의 협연으로 성대한 만찬을 차렸다. 오는 21일까지 17개의 교향악단이 참여하는 교향악 축제는 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들과 젊은 유주들의 협연 역시 기대를 모은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양고운, 김현아, 피아니스트 허승연, 김원, 유영욱 비올리스트 김상진, 플루티스트 윤혜리, 하피스트 곽정, 피아니스트 김태형, 김규연, 임동민, 첼리스트 고봉인 등이 축제를 뜨겁게 달구었으면 또 남은 기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열기로 가득 채울 예정이다.

최근 국내외 클래식 음악계, 그 중 지휘자에 부는 여풍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20주년 교향악 축제의 달라진 점이다. 올해 처음으로 여성 지휘자 여자경이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지휘봉을 잡는다.

몇 년 후면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가 국내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 난해하고도 난감한 질문이지만 우리 오케스트라의 현재가 펼쳐지는 무대에서 그 미래까지의 거리를 살짝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