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드러그 전성시대]우울증·발기부전·비만치료제 등 생활 혁명 가져와약물남용·과신으로 금연·운동 소홀 등은 주의해야

혁신적인 발기부전 치료제로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효과를 불러온 '비아그라'가 최근 탄생 11주년을 맞았다. 이 약은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연구 개발되고 있었다.

그런데 임상시험 중 개발자인 화이자 제약회사 연구팀은 혈압상승과 발기개선이라는 뜻밖의 부작용을 발견한다. 결국 비아그라는 본래의 개발목적과 다른 용도로 1998년 3월27일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승인을 받았다.

이 알약은 발매 후 전세계 120여 개국에서 팔리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상품이 됐고, 논란과 관심 속에 사회문화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비단 발기부전제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치료제의 개념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약물인 '해피 드러그(Happy Drug)'의 어마어마한 시장규모나 무서운 성장세를 보면 가히 신드롬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위한 발기부전제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우울증 치료제, 노화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쓰는 보톨리눔 독소제 등 행복을 위한 약들은 대박행진을 계속하며 어느덧 다수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해피 드러그 전성시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 걸까.

약의 개념 새로 쓴 블록버스터 '푸로작'과 '비아그라'

행복해지기 위해 먹는 약의 수요가 얼마나 폭발적인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해피 드러그 범주에 속하는 약의 시장규모가 어느 정도이고, 성장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살펴보는 것도 해피 드러그 전성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해피 드러그의 원조는 1988년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ly) 사가 출시한 우울증 치료제 '푸로작(Prozac)'이다. 프로작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 신비의 항우울제에 '해피 드러그'란 별명을 붙였다.

푸로작은 세계 최초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 약물로,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양을 균형 있게 조절해 줌으로써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항우울제와 달리 세로토닌의 재흡수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이 약은 불안감, 불면증, 성적 불능, 설사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 외에 신경성 식욕 증가, 강박증, 월경전 증후군, 우울증으로 인한 피로감 등 다양한 질환에 놀라운 효과를 보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한국 릴리의 관계자에 따르면 1988년(한국 출시는 1989년) 첫 선을 보인 이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푸로작은 여전히 우울증 치료제의 대명사로 불리며, 처방 받은 환자수가 무려 5천4백만 명 이상에 달한다.

푸로작의 인기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면서 팍실, 졸로푸트, 셀랙사, 랙사프로 등 SSRI 계열 우울증 치료제가 경쟁적으로 출시돼 모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IMS헬스에 따르면 2008년 국내 항우울제 시장 규모는 약1,160억 원에 달하며, 2007년 990억 원에 비해 약 10% 성장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우울증 치료제가 블록버스터 상품이 되고, 사회현상으로까지 대두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울증을 앓는 환자의 치료용으로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활력과 자신감이 넘치는 행복한 일상을 위해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질병 치료의 목적이 아닌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개발된 최초의 행복을 위한 약은 비아그라다.

파란색 다이아몬드 모양의 알약, 비아그라는 발매 후 1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18억 정이 소비됐고, 공식적으로만 세계 120여 개국에서 약 3천5백 만 명의 남성이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아그라의 성공은 성문화를 바꿔놓았고, '자이데나', '레비트라', '시알리스' 등 경쟁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등 발기부전 치료제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다.

IMS헬스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1999년 21억원에서 2007년 770억원으로 8년 새 무려 37배 가까이 늘었다.

업계는 또, 지난해 이 시장의 규모는 1000억원 대까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불법 유통되고 있는 '짝퉁 비아그라'까지 고려하면 발기부전제 시장은 더욱 불어난다.

해피 드러그 시장 천문학적, 종류도 다양해져

상한 통조림이나 썩은 고기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의 독소를 정제해 만든 보톨리눔 톡신 제제를 근육에 주사하면 신경전달물질의 전달을 막아 근육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 소량을 사용하면 근육의 국소 이완 효과가 있다.

이러한 작용 때문에 보톨리눔 톡신은 안면 경련이나 뇌졸중 후의 팔다리 강직, 뇌성마비 뿐 아니라 다한증, 요실금, 통증, 편두통 등 다양한 질병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 주사제가 누구라도 알 만큼 유명해진 것은 치료가 아닌 미용목적의 사용 때문이다. 1990년대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사들이 이 주사제로 치료한 환자들의 눈가에서 주름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차츰 미용적 용도로도 쓰이게 됐다.

또, 서구일(모델로 피부과 원장) 피부과 전문의가 2003년 보톨리눔 톡신의 사각턱 시술효과를 미국 피부과학회지에 세계 최초로 발표한 이래 보톡스는 주름제거뿐 아니라 사각턱 교정을 비롯한 안면윤곽술, 몸매교정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보톨리눔 톡신제는 미국과 중국, 유럽 등의 제약사에서 제조 판매하고 있으나,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제품이 미국 엘러간 제약회사에서 시판하는 '보톡스'다. 보톡스는 보톨리눔 톡신 제품 가운데 유일하게 미 FDA에서 공인을 받은 제품이다.

국내 보도 내용을 보면, 세계 보톨리눔 톡신 시장은 1조5천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보톡스를 시판하고 있는 미국 엘러간 제약사의 2008년 수익이 1조2천억 원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시장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추산된다.

이밖에 다이어트 보조제와 발모제, 노화방지 용 호르몬제 등의 시장규모나 성장추세도 놀랍다. 그뿐 아니라, 해피 드러그의 종류도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엔 '공부 잘하는 약'까지 등장해 사회적 논란을 낳기도 했다.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가 강남권 정신과 의원에서 학습효과 향상을 목적으로 처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를 보면 ADHD환자 수는 지난 4년간 3.3배 증가한 반면, 치료제에 대한 보험 청구는 21배가 증가했다. 치료가 아닌 다른 용도로 폭넓게 처방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해피 드러그 폭발적 증가....행복은 글쎄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는 데 대한 욕구불만이나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해피 드러그 시장의 급팽창은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해피 드러그는 이제 별난 소수가 아닌 일반인들의 애용품처럼 되고 있다.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제약회사들이 해피드러그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며 관련 제품 개발에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고, 앞다퉈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회사 간에 경쟁이 불붙으면서 제품의 질은 계속 향상되고, 종류도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또, 약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지고 있다.

해피 드러그는 '신이 내린 선물', '마법의 약', '위대한 발명품'이란 찬사를 받으며 생활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청춘을 돌려 받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또는 똑똑해지기 위해 손쉽게 훌륭한 약을 구할 수 있는 세상. 이제 세상 살기가 더 좋아진 걸까.

화이자제약이 전세계 발기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 의하면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의 정도나 연령, 동반질환에 관계 없이 다양한 환자군에서 높은 효과를 보였으며, 비아그라 사용이후 발기기능이 개선됐다고 보고한 환자들의 비율이 82%에 달했다. 또, 국내 발기부전 환자 133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허가 임상시험에서도 비아그라는 88.2%의 발기력 향상을 나타냈다.

그런데 발기기능 향상이 반드시 만족할만한 성생활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화이자 사는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렉티브'를 통해 2008년 5월에서 7월까지, 아시아태평양 13개국 3,957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성생활 만족도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남성이 57%, 여성이 64%로 대부분의 이들 국가에서 현재 성생활 만족도가 매우 낮게 나타났다. 특히, 성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한국남성은 19%, 한국여성은 11%로, 한국인의 성생활 만족도는 아태 13개국 가운데 12위를 기록했다.

발기부전제를 복용한 국내 환자 88.2%가 발기력 향상을 보인데다 국내 발기부전제 시장의 규모나 급성장 추세를 감안하면 이 같은 조사결과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해피 드러그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슈다. 건강한 사람이 푸로작을 복용하면 흥분상태에 빠지거나 자아 통제능력이 약해진다는 여러 차례의 보고가 나왔다. 또, 영국에서는 이'마법의 약'이 자살충동까지 야기시킨다는 노스웨일즈 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발표가 언론에 소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사각턱 교정에도 많이 쓰이는 보톨리눔 톡신은 오남용 시 식도마비를 일으키는 등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모델로 피부과 서구일 원장은 "제작년 겨울 미국에서 소아 뇌성마비 환자에게 이 주사를 과다 투여해 호흡곤란으로 사망케 한 사건은 있었지만, 보톨리눔 톡신을 치료가 아닌 미용목적으로 사용했을 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는 전세계에서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용목적의 사용에서도 오남용의 소지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주름치료 시 이 약의 용량을 과다 사용하면 광범위한 근육이 경직돼 표정에 변화가 올 수 있는 것도 한 예다. 약의 효능이 일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항우울제의 경우 수개월이나 1년 후부터는 그 효과가 감퇴하고, 약을 끊은 후에는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

들뜬 기분에서 약 복용을 중단한 뒤 다시 옛날의 우울한 상태로 돌아갔다가 더 큰 상실감을 맛보고 자살한 환자가 영국에서 발생한 사례도 있다. 보톡스로 널리 알려진 보톨리눔 톡신의 미용효과는 대개 3~6개월, 길어야 1~2년을 넘지 못한다. 효과가 영구적이지 못한 것은 다이어트 보조제도 마찬가지. 약의 복용은 6개월 이상 하기 어렵고, 약을 끊음과 동시에 요요현상이 오는 게 보통이다.

최근 불거진 태반주사 약효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 해피 드러그 중 효과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것도 부지기 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높은 삶의 질을 열망하는 인류는 해피 드러그 소비를 주춤하기는 커녕 더욱 늘려가고 있다.

박수룡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가 바라본 해피 드러그와 행복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추구하게 됐다. 또, 미래보다 현재 삶에서의 만족을 중시하는 풍조도 생겼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의 질과 관련된 질환에 적용 되는 약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해피 드러그는 대중화 시대를 맞고 있다. 비만 치료제가 국내에서 매년 10% 정도의 성장을 하고 있고, 탈모 치료제 시장도 매년 50% 정도씩 커지고 있는 것만 봐도 해피 드러그 신드롬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해피 드러그를 이용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욕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추세다.

그러나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건강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젊음이나 아름다운 외모 등 타인에 의한 외면적 평가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건강한 삶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오히려 불편, 고통, 노화 등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약물의 사용으로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리라 믿는 맹신은 금연, 절주, 운동 등 라이프 스타일 교정에 소홀하고, 부부 사이의 정서적 교류 같은 인간적인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드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만큼 오남용의 소지도 충분히 있다. 이들 약품 대부분은 비급여 약품으로 정책 당국의 관리가 곤란하고, 가짜 약물이 범람할 위험도 크다고 본다.

결국 행복을 위해 의약품을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되, 얼마나 그것을 현명하게 선택하고 이용하는가 하는 과제는 일반인들이 풀어야 한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