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매혹문명의 발상지 기반 여러 언어와 민족 공존하는 사회상의 산물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은 인도다. 빈민가 출신의 한 소년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TV 퀴즈쇼에서 우승해 부자가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인도는 단순히 시각적 배경만은 아니다.

교육도 받아보지 못한 소년에게 주어진 문제가 마침 자신의 삶과 관련된 것들뿐이었다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충실한 삶은 보상받는다는 동화적 서사가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곳이다.

그것은 우선 인도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역동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서의 인도를 ‘찰스 디킨스 시대의 영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 놓인 인도의 혼란상이 기회가 많았던 ‘옛날’이자 고착화된 현재와 대비되는 판타지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도가 서구는 물론, 국내 관객까지 매혹하고 있는 이유가 단지 그뿐일까. 인도 내에서는 이 영화가 자국의 빈곤함만을 주목해 ‘제3세계’ 이미지만 강조했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인도는 다만 서구의 ‘전근대’에 머물지 않는다. 주 배경인 뭄바이의 풍경은 종종 이야기와 상관없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빈민촌과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서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는 돔과 아치 형태의 건물들이 눈에 띤다. 이런 건축 스타일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맥락에서 나타난 것이다.

미술사학자인 구하원은 이 건축물들이 “영국의 식민 통치 정당화 의도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체국, 박물관, 대학교 등 식민 통치를 위해 갖추어야 하는 인프라들에 ‘대영제국’의 의미를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영국 통치자들은 유럽의 고딕 양식이나 고전주의 양식에 기반을 두면서도 인도의 궁전·사원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을 가미해 인도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되도록 했고 그 결과 인도만의 ‘사라세닉 양식’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건축물인 빅토리아 역사는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가 보여주듯 인도 문화의 특성은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기반에 지난한 역사적 과정이 더해진 데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경우, 급격한 역사 사회적 변동과 넓은 국토에서 여러 언어,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해왔다. 인도는 지역 표준어만도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카스트 제도가 상징하듯 계급 간 격차도 심하다.

오락적인 대중문화는 이런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완화하는 기능을 했다. 영화는 내러티브보다 모든 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춤과 노래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권선징악의 내러티브를 가진 흥겨운 뮤지컬 영화인 ‘발리우드’ 영화의 탄생 배경이다.

매년 인도영화를 꾸준히 소개해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권용민 프로그래머는 이런 영화의 형성은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약 12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수요층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도는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국가가 되었고, 특성화된 인도 영화는 세계 시장에서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IT 산업이 발전하고 해외 자본이 급속도로 유입되는 등 인도의 사회 구조가 또 한 차례 변화하고 있는 중이고 문화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미술의 경우 적극적으로 비디오 아트나 설치 미술 같은 뉴미디어 형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영화는 할리우드적 문법과 기술력을 도입, 초국적인 특성을 띠게 되었다.

권용민 프로그래머는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이 인도에 자회사를 차리는 등 해외 자본의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런 변화가 인도 영화의 성격 또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 인도 문화의 호소력은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의 속도 속에서 다채로운 논리와 요소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접붙는 모양이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것이 전세계가 혼란을 헤쳐 나가려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찰로! 인디아: 인도미술의 신시대’의 미키 아키코 큐레이터는 인도현대미술이 “후기식민주의 전지구적 시대 인도의 여러 매력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만화경”이라고 말했다. 그 안에 소용돌이치는 창의성은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