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귀환] 수제 햄버거·커피·의류·액세서리 등 판매 꾸준히 증가

회사원 백진영(36ㆍ여)씨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수제 햄버거집을 찾는다. 백씨가 즐겨먹는 수제(手製) 버거 세트의 가격은 8000원대. 5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햄버거 세트보다 3000원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백 씨는 ‘수제’를 고집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수제 버거 가게에 들른 백 씨는 “햄버거 세트의 감자튀김이 해롭다는 보도를 보고 수제 버거를 찾기 시작했다”며 “몸에 해로운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수제를 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제(hand-made)’바람이 의식주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다. 햄버거와 커피 등 먹을거리 ‘수제’는 체인화까지 하며 대중화하고 있다. 액세서리와 옷을 비롯한 패션부문에서도 ‘수제’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비자가 손으로 직접 만드는 D.I.Y.(Do It Yourself)가구나 튜닝제품 역시 보편화 해 의식주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수제’바람을 웅변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갈수록 원자화되는 사회에서 교감과 소통의 매개로서 대면의 욕구는 점점 확산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인들이 상품과 소통하고 살아가는 한 경기와 관계없이 손을 통해 친밀감을 확인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비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제 버거’의 반격

‘수제(hand-made)’가 먹을거리 공포증의 대안으로서 식품의 주류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대량생산과 과잉공급의 포디즘(Fordism) 체제의 소비패턴에서 강조하는 효율성보다 인간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기성(ready-made)’에 비해 더 느리고 약간 비싸도 유기농 재료로 좀 더 정성스럽게 만들어 몸에 좋은 음식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수제 버거 붐은 이런 경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큰 국산 수제 햄버거 체인인 ‘크라제 버거’의 전국 47개 지점 가운데 17개 지점이 작년에 문을 열었다. 올해는 4월까지 7개의 점포가 문을 열었다. ‘크라제 버거’의 2008년 매출은 250억원 여에 이른다. 이 회사의 2009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5% 상승했다.

수제 버거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맥도날드’, ‘버거킹’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만족도가 높다. 고기의 어떤 부위가 패티에 섞이는지 확인할 수 없는 ‘레디 메이드’와 다르게 살코기를 쓰기 때문이다. 수제 버거는 대부분 자체 냉장육과 소스, 유기농 야채 등을 재료로 사용한다.

소규모의 개별매장을 보유한 정통 수제 버거 매장 역시 불황 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울 이태원동 ‘스모키 살룬’은 1년여 전부터 두툼한 패티와 유기농 야채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이태원동에는 이외에도 ‘썬더 버거’등의 유명 버거 가게가 밀집해있다. 서울 신사동의 ‘포크포크’는 매운 맛의 수제 버거로 유명하다.

‘손맛’ 대중화 하는 수제 커피

‘손맛’을 살린 ‘핸드 드립(hand-drip)’ 커피도 ‘스타벅스’나 ‘커피 빈’을 뛰어넘는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커피는 대형 커피체인에서 만드는 에스프레소 커피에 비해 제조시간이 더 걸리고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획일적으로 물 내림 하는 레디 메이드 커피에 비해 각 커피 원두의 맛과 향을 잘 살린 ‘손맛’으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형 커피체인에 길들여진 현대인 사이에서 획일성을 거부하는 소비문화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내수동 ‘나무 사이로’는 20여 종이 넘는 원두커피를 ‘핸드 메이드’ 방식으로 물내림을 해 입소문이 나있는 가게다. ‘핸드 드립’ 커피의 가격은 5000원~1만 1000원대로 다양한 맛의 원두 맛을 살린 커피를 찾는 손님은 날로 늘고 있다.

이 가게가 수입하는 커피 원두의 종류는 지난 2002년 3개에서 현재 20여 개 이상으로 늘었다. 커피를 로스팅하는 자체기기의 용량도 1Kg에서 6Kg으로 늘어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인기의 비밀은 ‘손 기술’에 있다. ‘핸드 드립’ 커피는 원두의 특성에 따라 물 내림의 방식을 달리해 원두의 맛과 향을 살린다. 일률적으로 기기로만 만드는 에스프레소 커피와 다른 점이다. 진하고 중량감 있는 향의 원두는 굵은 물줄기로 여러 번 내려 맛과 향을 살리되 불쾌한 쓴맛은 줄인다. 부드럽고 우아한 맛의 원두는 그 반대다.

서울 수송동 ‘커피친구’, 인사동 ‘커피흘림’ 등도 유명세를 얻고 있는 ‘핸드 드립’ 커피 전문점이다. 서울 삼청동 일대의 ‘빈스빈’이나‘클럽 에스프레소’, 청담동 일대의 ‘커미 미학’, ‘림가롱가’, ‘런던아이’등도 ‘핸드 드립’ 커피로 유명하다.

지난달 28일 ‘나무사이로’를 찾은 회사원 이혜진(27ㆍ여)씨는 “일주일에 3~4번은 온다”며 “같은 값이면 원두 향이 살아 있고 더 고소한 핸드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배준선(36ㆍ여) 바리스타는 “커피 원두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어 드립 방식도 달리해야 제맛을 살릴 수 있다”며 “산지와 종류가 다양한 원두커피에 저마다의 기호를 강조하는 손님들이 날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모자 브랜드‘루이엘’매장에는 계절 의류에 어울리는 모자를 고르려는 여성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모자 브랜드'루이엘'매장에는 계절 의류에 어울리는 모자를 고르려는 여성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핸드 메이드’가 패션 대세

패션에서도 유일무이한 가치의‘수제’제품이 인기를 끌며 ‘기성’을 뛰어 넘는 ‘자아 정체성’추구의 경향을 보여준다. 서울 삼청동 일대에는 수공예품.수제 패션 거리가 형성돼있다. 삼청동 일대가 문화의 거리로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객을 비롯한 유동인구가 작년보다 2배 이상은 늘었다고 상인들은 귀띔했다.

김형모(48)씨는 서울 삼청동 ‘코메타’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귀걸이, 목걸이를 비롯한 수제 액세서리를 직접 판매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이태리 베니스에서 수입한 원석을 사용한 수공예 액세서리 제품이 4만 원~9만 원대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이 가게의 하루 평균 방문고객은 작년보다 20여 명 이상 증가한 상태.

‘스토리(STORI)’는 한국적 소재와 디자인의 가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가게는 자개 소재와 문갑 모양 등 독특한 소재.디자인의 수제 가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복주머니 모양의 한국적 디자인 가방 역시 이색적이다.

‘루이엘’은 7만 원~20만 원에 이르는 자체 디자인 수제 모자를 판매한다. ‘루이엘’모자는 영화 ‘모던보이’에 배우 김혜수가 쓰고 나와 여성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김형모 씨는 “수공예 액세서리를 만드는 데 구상하는 시간까지 합해 최소 45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라는 수공예품의 가치가 창출 된다”며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층이나 전문직 여성의 수제품 수요가 날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