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귀환] 스토리 텔링 공원, 수공예품 장터 등 인간 관계의 장 회복 꿈꿔

서울 응암동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손길’로 삭막한 ‘시멘트’의 공간을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학교 입구의 콘크리트 옹벽은 거대한 피아노 건반 모양의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 타일과 아트타일로 대체됐다.

학교 입구로 들어가도 마찬가지. 건물까지 가려면 흙바닥과 콘크리트 대신 길이 18m, 높이 4m의 거대한 고래 형상을 통과해야 한다. ‘반딧불이 고래’는 안팎으로 조명으로 훤하다. 이 안에는 이 학교 학생들이 고래 뱃속에 들어갈 만한 것으로 상상해 직접 ‘손’으로 만든 모형이나 조각들을 채울 예정이다.

고래를 지나면 창작동화인 ‘반딧불이 고래와 숲의 비밀’의 서사에 맞춘 꽃길과 이야기 돌판이 있는 정원을 만난다. 학교공간의 재개발이 도식적인 ‘레디 메이드(ready-made)’ 방식과 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작부터 이 학교에 다니는 1천여 명의 서울시 소년의 집 어린이들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 메이드(hand-made)’가 가공의 도시공간을 사람냄새 나는 인간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용자가 참여하는 ‘스토리 텔링’ 공원 외에도 수공예품을 파는 ‘핸드 메이드’ 장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친환경 음식을 권장하고 외부의 패스트 푸드가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하는 슬로우 푸드에서 시작한 슬로우 시티의 탄생 역시 이런 변화의 일환이다. ‘손’의 귀환으로 건축과 도시공간의 주인으로서 인간이 관계의 장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임정희 연세대 인문예술대학 겸임교수는 “획일적 도시개발의 속도전이 빨라질수록 전통적 의미의 대면적 인간 관계를 앗아가는 것에 대한 향수 역시 커진다”며 “도시공간에서 핸드 메이드의 확장은 제의적 상징으로 가득찬 도시공간이 불러오는 단절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인간 관계의 직접성ㆍ생태성 회복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핸드 메이드’ 장터 vs. ‘월 마트’

수공예품이나 재활용 상품을 판매하는 ‘핸드 메이드’ 장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핸드 메이드’장터에서 파는 상품은 세련된 ‘레디 메이드’에 비해 투박하고 촌스럽기도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상품, 상인과의 면대면의 관계가 있어 아날로그적인 도시공간의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심의 대형마트 바로 옆에서 수공예품을 판매하며 인간성의 가치 회복을 웅변하는 장터가 인기다. 2006년 7월께부터 서울 홍익대 인근 주민광장에서 시작, 지금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인근 평화의 공원에서 격주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00마켓’이 그것.

지난해부터 규모가 부쩍 커진 이 시장에서는 판매자가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 핸드 메이드 드립 커피, 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사람과 식물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알려준다는 ‘씨앗가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동네 방송국’, 자전거를 고쳐줄 뿐 아니라 스스로 정비하는 법을 알려주는 ‘이동이륜정비소’도 이색적이다.

1, 2-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홍익어린이공원에서 토요일 열린 '프리마켓'
3-서울 응암동 알로이시오 초등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반딧불이 고래. 고래 뱃속은 아이들이 만들 미술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안연정 ‘00마켓’ 운영자는 “우리 시장은 미디어와 대형마트가 더 많이 소비할 것을 요구하고 소비를 통한 소유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하는 사회풍토에 대해 대안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핸드 메이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소유가 아닌 공유, 자생, 나눔을 통한 삶의 감각 회복”이라고 말했다.

2002년 6월께부터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홍익어린이공원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게릴라성으로 열려온 ‘프리마켓’도 유명하다. 미대생을 비롯한 젊은 창작자들이 손수 만든 금속공예, 도자공예, 목공예 등 ‘핸드 메이드’ 제품과 길거리 공연이 주력상품이다.

프리마켓은 2007년부터 참가열기가 높아져 장이 열리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몰리고 있으며, 현재 100여 명의 창작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손을 통한 ‘소통’은 ‘핸드 메이드’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김영등 일상예술창작센터 대표는 “프리마켓은 다양한 젊은 창작자들이 마땅히 작품을 판매할 장이 없는 상황과 홍대 앞 시민들의 문화 수요가 만나 열리게 됐다”며 “시민들이 생활속에서 예술을 직접 경험하고 창작하며 생활공간에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욕구는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슬로우 푸드 먹는 슬로우 시티

‘핸드 메이드’ 먹을거리인 슬로우 푸드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슬로우 시티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이고 있다. 건축이 밀도를 높여갈수록 소외돼왔던 인간을 도시공간의 중심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면, 신안군 증도면은 지난 2007년 슬로우 시티 국제연맹의 인증을 거쳐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 시티로 지정됐다.

1999년 파올로 사뚜르니니 이탈리아 크레베 시장이 시작한 슬로우 시티 운동은 고유한 자연환경과 전통을 지키면서 마을주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살리기 운동을 말한다. ‘속도 지향의 사회’ 대신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환경친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슬로우 시티는 대개 패스트 푸드의 유입을 제한하며 유기농 핸드 메이드 식품의 판매를 권장한다. 자동차 배기량을 억제하고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권장하는 등의 조치로 느리지만 친환경적인 인간의 손길이 묻어나는 방법으로 도시 운영을 한다. 슬로우 시티는 인간관계의 회복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라남도는 슬로우 시티 운영방안으로 ▲지역민 중심의 공동체 회복 및 휴먼웨어 구축 ▲ 지역별 특색 있는 관광콘텐츠 및 상품의 개발ㆍ운영 ▲관광객 수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 ▲통합 홍보ㆍ마케팅 체계 구축 ▲슬로우 시티 운동 정착을 위한 제도적 정비 등을 계획하고 있다.

유미자 전남도청 관광정책과 직원은 “슬로우 시티 운동은 단순히 불편함을 강요하거나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참살이 운동이자 전통의 복원, 약간 불편해도 자연 그대로의 생활방식을 수용하는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