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몸의 언어展

1-김준, Cradle Song-Vivienne Westwood
2-한효석, Unmasked Exposing What Lies Beneath

몸이 뭔가. 얼굴이 지워진 채 온갖 색과 형으로 현현한 사지가 묻는다. ‘문신’을 소재로 작업해온 작가 김준의 작품이다. 새겨진 문양들은 그 캔버스로서의 피부의 존재에 주목하게 한다. 현란한 체위는 몸에 잠재된 저 놀라운 약동을 새삼 짐작하게 한다. 이것이 몸이다, 라는 강한 외침이다.

그 몸을 문득 만지고 싶었다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는 말 것. 몸은 본래 시각적이 아닌 촉각적인 ‘매체’다. 작가 이용덕의 몸 ‘조각’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재미있는 것은 손 닿기 좋게 도드라져 보이는 이 몸들이 실은 음각이라는 점이다. 스킨십이 개체와 개체 사이 구분을 넘는 가로지르기이며, 접촉을 부르는 것은 결핍이라는 뜻일까.

한효석의 작품들은 더 노골적이다. 그의 붓은 몸의 ‘육질’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정육점 조명’ 아래 ‘진열’된 매매춘 여성을 볼 때의 느낌이다. 너무 순수해서 잔혹한 시선으로 대한 더 이상 세속적일 수 없어서 성스러운 몸.

이런 몸들 앞에서는, 한낱 찰나의 편협에 불과한 어떤 잣대로 미추를 논하는 것이 부질없다. 다만 어느새 우리에게 공고하게 깃든 저 어리석은 잣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편협을 반성할 밖에. 데비 한은 아름다움의 화신 ‘비너스’의 머리를 한국 여인들의 몸에 접붙인다.

사내를 품고, 아이를 기르며 이 땅의 거칠고 서툰 것들을 눅이고 채우는 저 몸들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아닌가.

3-데비 한, Seated Three Graces
4-박원주, Installation View, Chair For Monophobia
5-이용덕, Diving 0609
6-김용문, Excel the Death, Prevent the Evil, The Release of Captive Animals
7-문범강, The Red Foot

그래서 김용문은 정말 이 ‘땅’으로 몸을 빚었다. 그가 만든 흙인형들은 신라 시대 ‘토우’의 맥을 잇는다. 저 작은 몸들은 역사라는 거대한 시공간을 제 삶으로 받치고 겪어온 민중을 상징한다. 김용문의 작업은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서 살리는 의미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몸 없는 작품이 있다. A4 용지로 만든 사형 집행용 의자다. 작가 박원주는 미국 뉴욕주 오스닝에 위치한 싱싱주립교도소에서 1928년부터 1963년까지 실제로 사용된 전기 의자의 도면을 작업의 근거로 삼았다.

몸의 멸종을 의도한 것이니 몸의 대척이다. 그런데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있어야 완결된다. 그래서 몸이 보인다. 보이기 이전에 느껴진다. 부르르 부르르, 내 몸이 여기 있다고 떨린다.

여기까지가 ‘몸의 언어’ 전의 1부다. 보편적인 몸의 의미를 탐색하는 이 전시는 이달 24일까지 열린다. 이후 29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는 좀더 시대사회적 맥락에서 구체화된 ‘몸’을 다룬 2부가 이어진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등장 이후 20세기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몸 담론을 정리한 미술평론가 윤진섭의 동명 책 출간과 함께 기획되었다. 장소는 파주시 헤이리에 위치한 갤러리 터치아트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