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주명덕 사진전

수분이 빠진 꽃잎엔 주름이 깊게 패였다. 겹겹이 쌓인 얇은 이파리는 바스라질 듯 위태롭다. 풍만하고 팽팽하게 젊음을 과시하던 붉은 색의 장미는 없다.

언젠가 까미유끌로델이 조각했던 늙은 여자의 주름진 몸을 떠올린다. 한참 발길을 잡아둔 것은 작품의 사실적인 표현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 조각처럼 무채색의 나이든 장미는, 어쩐지 그윽한 향을 뿜어내는 것만 같다.

나이 들어가는 장미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 이는 40여 년을 현역으로 살아오고 있는 사진작가 주명덕이 포착한 장미의 ‘생애’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세대로 전쟁 이후부터 줄곧 사람과 도시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그의 프레임에 담긴 현상은 기록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일상의 존재에 으레 자연스럽게 매치시켰던 형용사는 그의 렌즈에서 전혀 다른 단어로 대치된다. 익숙한 존재를 향한 낯선 시선, 사진을 통해 작가는 그것이 바로 사진작가의 본령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주명덕이 초기 ‘홀트씨 고아원’과 ‘인천 차이나타운’을 통해 사회적 기록으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1980년대 이후 ‘잃어버린 풍경’ 시리즈로 풍경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뿌리채 흔들어놓았다. 실루엣조차 희미한 검은 풍경은 실체 너머를 환기 시켰다.

지난 해 말 ‘차가운’ 도시가 아닌 ‘우리를 보듬는 둥지’로서의 도시를 담아낸 전시로 찾아왔던 그가 이번엔 ‘장미’라는 피사체에 주목했다. 다소 거시적인 대상과 현상에 주목해왔던 그가 지난 1년간 ‘장미’라는 작고 여성스러운 대상에 천착해왔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미의 생명력이 소멸되는 과정을 담은 사진 속엔 ‘검은 풍경’의 낯선 어둠처럼, ‘꽃의 여왕’이란 애칭을 가진 장미의 화려함과 풍만함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잡아둔다. 마치 꽃 한 송이에 인간이, 자연이, 인생이, 시간이 담겨진 것처럼, 주명덕의 장미는 작가와 관람객 사이를 노련하게 부유한다.

도시와 자연과 사람 속에서 치열하게 ‘세상’을 찾아왔던 주명덕은 이제 작은 장미 속에서 ‘생의 진리’를 발견한 듯했다. 세월을 잊은 그의 예술혼이 또 한 번 ‘새로운 사진’을 제안하고 있다. 전시는 이달 13일부터 7월 25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02-418-1315)에서 열린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