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농민가' 환경문제는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접근해야 함을 보여줘

윤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농민가’는 사천 농민회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제문의 마지막 구절에 귀가 뜨인다. ‘농업이 천하근본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시길 비나이다.’ 저 오랜 잠언은 언제부터 잊혔던 것일까.

지난달 25일 막을 내린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가 ‘농민가’에 심사위원 특별상과 아베다 환경영화상을 안긴 것은 언뜻 의아해 보인다. 이 영화의 초점은 통상적인 ‘환경영화’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에 주목하는 대신 한미 FTA 협상이 한국의 농업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갖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이나 멸종 직전 야생 동물들에게 경탄의 시선을 보내는 대신 지자체장 투표소 앞에서 벌어진 농민들 간의 왈가왈부를 담는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한미 FTA 협상에 반대하는 사천농민회의 투쟁 과정이다. 농촌의 풍경을 세속과 동떨어진, 그대로 보존해야 할 순수의 상태로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한국 농업과 농촌 사회가 세계화된 자본의 논리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한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환경영화다. 환경문제는 생태계의 모든 구성 요소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데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 무자비함이 오늘날 ‘녹색 성장’을 기치로 내걸면서도 정작 가장 생태적 산업인 농업을 경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낳았음을 영화는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농업과 농민의 처지는 ‘환경’의 처지를 상징한다. “농사 지으면서 환경도 많이 생각하게 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여기 공장이며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선다 하면서도 그 피해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보상금 몇 푼 받아봐야 돌아서면 없어지는 걸. 환경이 깨끗하면 누구라도 거기에 기대어 살 수 있다”고 말할 때 농민들은 온 환경의 대변인이 된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윤덕현 감독은 “친환경이란 자연스러운 본성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영화를 보면 환경 문제를 탈정치적이고 소비문화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확신이 든다. 그것 자체가 이미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영화 '농민가'

▲ 그렇다. 많은 환경 재앙들이 그런 맥락에 있다. 예를 들면 광우병도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장형 대량축산의 결과 아닌가. 환경 문제의 해법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는 것처럼. 이것은 정치적 태도와도 연결된다.

일상 속에서 친환경의 방법들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강을 시멘트로 바르려는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농민은 농업을 중하게 여기는 정치인을 뽑는 것이 자연스럽다.

-농민이 농사를 접게 되는 상황의 여러 의미를 잘 보여준 것 같다.

▲ 전 세계적으로 농민의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하면 합리적 선택인데, 그만큼 ‘멸종’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여러 생물 종이 사라지는 현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 환경문제의 본질은 관계의 단절로 볼 수도 있다. 인간과 자연, 도시민과 농민, 한 사람 안에 공존했던 물질적 욕망과 정서적 욕망 간 관계 등등이 분리되었다. 그것이 생태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윤리를 잊게 만든 원인 아닐까.

▲ 오늘날 농산물 유통 과정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산업 사회 이전에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분리된 개념이 아니었는데 오늘날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특히 수입 농산물이 개입하면서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이 거리를 좁혀야 한다. 물리적이든 사회적이든.

-영화 속에서 ‘농민회’는 일종의 ‘공동체’처럼 보인다.

▲ 이런 자생적 조직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꼭 ‘농민회’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제 자리를 지키면서 촘촘하게 결속하는 움직임 말이다. 이런 공동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