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의 새 중심 루비살롱] 인디음악 불모지 인천서장르 구속받지 않고 참신한 실험으로 새 바람

이달 초 ‘인디 밴드들의 잇따른 해외 공연’ 소식이 전해졌다.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프랑스의 음악 페스티벌 ‘La Fete de la Musique’에 참가하고, 국카스텐이 중국 상하이에서 공연한다는 내용이었다. 둘다 인디음악 레이블 루비살롱 소속이다.

루비살롱은 최근 인디음악계에서 들려오는 솔깃한 소식들의 진원지다. 작년 말 홍대 앞에 코스모폴리탄적 감성을 불어 넣으며 등장한 검정치마, 한국 록큰롤 1세대 이야기를 담은 영화 ‘고고 70s’에 출연한 문샤이너스, 데뷔 앨범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 올린 이장혁 등도 여기에 적을 두고 있다.

지난 4월 열었던 500석 규모의 첫 레이블 쇼는 매진을 기록했다. 지난 13~14일 연 두 번째 레이블 쇼는 프로레슬링을 컨셉트로 진행되었다.

인디음악의 중심지 홍대 앞을 뒤흔들고 있지만 루비살롱의 본거지는 뜬금 없이도, 인디음악의 불모지 인천이다. 이 ‘굴러온 돌’의 혁명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인천 록 키드의 귀환

루비살롱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이 곳의 대표 이규영의 개인사를 훑어야 한다. 레이블을 포함한 ‘독립음악 커뮤니티’의 기원인 인천 부평구의 라이브클럽 루비살롱은 그의 개인 작업실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규영 대표는 아마도 사라진, 인천 록 ‘문명’의 마지막 수혜자일 것이다. 항구 도시로서 근대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였던 인천에는 일찍이 심지 음악감상실, 대명 라이브 하우스, 클럽 록캠프 등의 록 음악공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인천 토박이인 이 대표는 고등학생이던 90년대 초 이 곳들을 전전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가 스스로 밴드를 결성, 홍대에 입성한 것이 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홍대 앞은 펑크의 전성기였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의 걸출한 밴드들의 역사도 이때 시작됐다. 이 틈에서 이규영 대표도 푸펑충, 글로벌 코포레이션, 락 타이거즈 등의 밴드에서 활동했지만 2000년대 초반 아들이 태어나면서 잠시 음악을 접고 인천으로 돌아간다.

2005년 원맨밴드 하이라이츠로 복귀한 이 대표는 2006년 문을 닫는 록캠프를 인수했다. 그가 “처음으로 공연했던 곳”이었다. 개인 작업실로 쓸 요량이었는데, 발 넓은 이 대표의 주변 뮤지션들이 찾아오면서 주말 공연을 마련하고 아예 라이브 클럽으로 개조했다.

레이블 역시 자신의 앨범을 만들려고 시작했는데, 여러 뮤지션의 뒤를 봐주다 이렇게 규모가 커졌다.

홍대 앞 인디음악의 ‘피신처’이자 ‘실험실’

그러므로 루비살롱의 성공 비결은 오히려 사업으로 시작하지 않았던 데 있었다. 이규영 대표가 “피신처”라고 말하는 인천이라는 지역성은 그 자신에게도, 이 곳을 찾는 다른 뮤지션에게도 홍대 앞과는 다른 의미로 자극이 되었다.

홍대 앞에서 13년간 활동했고 현재 루비살롱 소속으로 앨범 발매를 준비하고 있는 밴드 배다른형제의 전봉국은 “이 곳에서는 홍대 앞에서와는 다른 악상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정형화된 홍대 앞 문화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음악에서도, 공연 형식에서도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도 루비살롱의 저력이다. 이 대표는 “인천에 있으니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다 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 중 잘 ‘먹히는’ 것을 홍대 앞 무대에 가져가면 처음부터 잘했던 것처럼 보이겠죠?(웃음)”

루비살롱이 선보이는 신선한 공연들도 이런 기반의 산물이 아닐까. 소속 뮤지션들 간 매치를 표방한 두 번째 레이블쇼의 프로레슬링 컨셉트는 “스스로도 뻔한 공연은 재미없어 하는” 이 대표의 기질에서 탄생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밴드 공연이 곁들여진 아마추어 레슬링 매치에서 착안했다.

“처음에는 정말 그렇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레슬링 협회에 문의했더니 링 한 번 빌려주는 데만도 400만 원이라고 하더라.(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썸머슬램’(WWF 프로레슬링 시즌 중 하나) 정도 규모로만 준비했다. 앞으로 비슷한 컨셉트 공연을 몇 번 더 기획해볼까 한다. 규모를 점점 키워나가 나중에는 장충체육관에서 대규모로 할 거다.(웃음)”

이밖에 이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공연은 ‘80's show’와 ‘캬바레 공연’. 전자는 ‘롤라장’에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며 즐기는 공연이고, 후자는 밴드와 관객 간 ‘부킹’을 도입한 공연이다.

1-라이브 클럽 루비살롱 내부
2-루비살롱
3-루비살롱 레이블쇼 '썸머슬램' 포스터
4-국카스텐

인디음악의 성과 보여준 현상

루비살롱은 지역의 척박한 문화적 환경을 실험의 장으로 삼은 모범 사례다. 하지만 이 결과는 의도나 생각만으로 일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심에는 이규영 대표 자신이 인디음악계에서 10년간 쌓아온 인맥과 문화 기획의 노하우가 있었다.

루비살롱 라이브 클럽에서 주말 공연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하다못해 낙성대, 영등포에 있는 클럽에도 안 가는 게으른 홍대 앞 뮤지션들이 여기까지는 고맙게도 와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고 앨범을 만들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것은 단지 이 대표의 발이 넓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봉국은 “그가 다른 음반기획사 대표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스스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디밴드의 사정을 잘 알고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어떤 볼품 없는 사람에게도 예쁜 구석이 하나씩은 있듯, 어떤 밴드에게도 매력이 있다”는 이규영 대표의 철학 역시 많은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끌어 모으는 인력이다. 그는 레이블 대표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뮤지션마다의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루비살롱 레이블의 성격을 다른 어떤 레이블보다 다채롭고 흥미롭게 만든 요인이다. 루비살롱의 특징은 “장르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차라리 “스스로 오리지널한 스타일을 갖춘 뮤지션”들 그 자체다. 이는 그만큼 높은 음악적 수준을 갖춘 뮤지션들의 풀이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루비살롱의 약진은 한국 인디음악의 역사적 성과의 한 단면처럼 보인다. 인디음악계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문화 기획자의 역량과 안목이 그에 부응하는 인디 뮤지션들의 가능성이 만난 ‘현상’인 것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