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의 새 중심 루비살롱]보사노바·하드록·펑크 등 10여 팀 30여 장 앨범 내며 다양한 활동

한국의 인디 음악을 조망한다는 것이 홍대 언저리를 기웃거린다는 것과 얼추 맞아 떨어진 지도 근 십 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골목길 비명소리 같던 그들의 음악은 팝송이 버겁고 가요는 질리는 이들의 틈새를 노리는 예쁘고 세련된 소품이 되었다.

최소 좌중간 적시타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브랜드들이 하나둘 알려지고, 이들로부터 성실하게 쌓이는 성공사례들은 곧 일련의 트렌드를 만들었다. 음악을 듣고, 또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흐름은 굳이 나쁘지 않다. 물론 뻔하기에 조금 지루하기는 하겠지만.

루비살롱의 음악은, 이런 요새의 인디 음악을 보다 재미있게 만들고 있다.

2005년을 전후한 즈음부터 신의 최전방으로 약진한 루비살롱의 뮤지션들은, 홍대의 익숙한 패턴들을 흩뜨리며 인디 신의 범위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음악은 외견상 분명 인디로 불려야 맞겠지만, 인천 모텔촌 한 가운데 자리잡은 그 ‘생뚱맞은’ 입지만큼이나 인디라 하기에 어딘지 낯설다. 이들의 음악은 거칠다.

그렇기에 앨범을 통해 녹음된 음악은 이들의 종점이 아니다. 이들은 공연장을 통해 그것을 비틀고, 덧씌우고, 해체한다. 그런 열린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들의 음악에는 늘 활력이 넘친다.

보사노바부터 하드락, 펑크, 사이키델릭에 이르기까지 종잡을 수 없는 장르의 음악들이 루비살롱의 이름 하에 뒤섞여 있지만, 이들을 묶는 하나의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루비살롱의 뮤지션들은 통시적으로 통용되는 장르들을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도구로써 해체하고 결합시켰고, 이를 통해 스스로 순환하는 스타일을 구축해 장르로부터의 독립성을 획득했다.

10여 팀이 30여 장의 앨범을 내며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루비살롱의 음악을 하나로 묶는 개념을 잡아야’만’ 한다면, 이러한 각각의 선명한 독립성과 완결성 정도가 그 끈이 되지 않을까.

이들의 첫 전국구 히트작으로 거론되는 것은 국내 인디 음악의 1세대로, 아무밴드 등에서 활동했던 이장혁의 솔로 1집 앨범이다. 그는 은밀하지만 치열하게, 불안하고 막막했으며 그 때문에 회색빛이었던 세상과 자신의 이야기를 포크와 모던 락, 일렉트로니카를 뒤섞은 음악으로 꺼내었다.

때로는 가슴을 치고, 때로는 신경을 건드리는 그의 음악은 ‘칼’이 되어 청자들의 ‘스무 살’을 베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그의 앨범은 뮤지션들과 평론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쿨하게 주고 받던 좋은 인디 음악의 굴레에서 마치 철 지난 과일처럼 생뚱맞아 보였다.

하지만, 이 쓸쓸한 앨범은 2004년 발매 시부터 지속적으로 인구에 회자되더니, 2007년에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까지 올랐다. 이 무렵을 기점으로 토바코주스(Tobacco Juice), 하이라이츠(Hi-Lites), 서드 스톤(Third Stone) 등의 앨범을 발매하며 소소하게 거론되던 루비살롱 또한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외계로부터 온 로큰롤의 전도사,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가 (촌스러운 표현을 빌면) 혜성처럼 나타나 무대를 뒤흔들었다. 하드락, 펑크, 개러지 락, 하드코어와 메탈에 이르기까지 무대를 불지를 수 있다면 어떤 장르든 데려와 숨가쁘게 쏟아내는 이들의 음악은 ‘날 것’이 전해주는 충격 그 자체였다.

1-갤럭시 익스프레스
2-검정치마
3-이장혁
4-국카스텐

공연장을 불사르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명성은 곧 인천 모텔촌을 넘어 홍대 클럽과 방송가에까지 퍼졌고, 녹음 시조차 무대와 같은 조건을 자청하며 한 덩어리의 소리를 뒤섞어 만들어낸 두 장의 EP와, 이를 거쳐 작년에야 완성된 정규앨범은 무대 너머의 청자들에게까지 이들의 광기를 전파했다.

그리고 2008년, 희한한 이름을 지닌 루비살롱 레이블의 한 신인 밴드가 ‘EBS 스페이스 공감’ 최고의 루키로 선정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밴드의 이름은 국카스텐. 무대에서 중국식 만화경을 뜻하는 팀 이름만큼이나 이들의 음악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합하며 자신들만의 몽환경을 만들어 냈다.

뽕끼를 다분히 의식한 펑키 리듬 위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기타 사운드와 생목 라이브가 경쾌한 질주감을 배가시키면, 그 주변에 뿌려지는 갖가지 효과음들은 어둡고 몽롱한 사이키델릭의 색을 섞었다. 촌스러움과 역동성, 화려함과 음울함이 공존하는 이들의 음악은 기존 장르의 틀을 조롱하며 스스로를 장르로 규정지었다.

같은 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검정치마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밴드가 등장했다. 뿅뿅거리는 디스코 사운드로 시작해 지저분한 기타 톤을 뭉개다가 이내 터져 나오는 키치한 팝 멜로디로 ‘날 좋아해줘’라고 칭얼대는 이들의 노래는 마약처럼 청자들을 빨아들였다. 이들의 음악은, 언어만 아니었으면 국적조차 헷갈릴 만큼 노련하게 탈색된 무국경 무경계의 음악이었다.

검정치마는 최신의 해외음악, 보다 정확히 지칭하면 영미권의 밴드들이 스카, 뉴웨이브 펑크, 기타 팝 등을 섞는 최신 레시피를 능글맞게 재현했다. 조악한 듯 능청스럽게 연출된 개러지 사운드에 송곳처럼 청자의 귀를 찌르는 강한 후렴구를 냉소와 뒤섞은 이들의 음악은 물 건너 음악인 ‘척’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를 오갔다. 평단과 청자들 모두가 ‘열아홉 살 때에도 스무살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이들의 음악을 열렬히 소비했다.

현재 루비살롱은 타바코주스의 정규 1집 앨범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를 통해 보다 키치하거나 센치한 음악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노브레인의 ‘브레인’이었던 차승우가 이끄는 21세기형 로망 로커빌리 밴드 문샤이너스의 정규앨범도 작업 중에 있다.

이러한 확장에는 고정된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술한 팀들의 앨범이 모두 데뷔작이기에, 루비살롱의 이러한 약진이 단타성으로 연명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루비살롱의 ‘날’ 음악은 지금도 한국의 인디 음악을 조금씩, 더 재미있게 만들어 가고 있다.



홍정택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