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소년에게 말걸다] 정치·사회적 현상이자 주체로 다루려는 문화예술 움직임 활발
|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결과이자 동시에 뿌리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출간된 ‘일민시각문화 4-靑·少·年(이하 ‘청소년’)’의 기획 의도는 지금 국내 문화예술이 모티프이자 주제로서 ‘청소년’을 주목하는 이유를 대변한다. “청소년 문제는 기성 사회의 가치관 부재와 맞물린 것으로 가치관 부재는 교육 혹은 성장기 문화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의 부재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9명의 사진작가가 이런 의식을 공유하고 나름의 시각으로 작업한 결과를 모았다.
이처럼 훈육하거나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사회적 ‘현상’이자 정치적 가능성, 한국 사회의 구체적 미래로서 청소년을 다루는 문화예술의 움직임이 발견되고 있다.
진짜 청소년을 읽어낸 ‘청소년’ 프로젝트
“우선 아이들을 있는 대로 찍어보려고 했어요.”
‘청소년’ 프로젝트에 참여한 최종규 작가가 말했다. 간명하게 들리지만 이보다 더 어렵고 중한 출발점이 또 있을까. 거리를 지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아이들, 그들이 가는 곳, 청소년용이라면 사소한 물건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 찬찬히 읽어냈다.
“우리 보고 오토바이 타지 말라는 선생들은 많더라. 그렇지만, 우리 보고 헬멧 쓰고 다니라 말하던 선생들은 못 만났다. 오토바이 타고 오다 걸리면 나무방망이 부러지도록 두들겨 팰 줄 아는 선생들은 많았고, 오토바이를 올바르게 타도록 가르쳐 준 선생들은 없었다.”, “부산에서는 청소년이 피난할 수 있는 집이 있다. 청소년은 ‘피난’해야 한다.”, “요즘 청소년 친구들은 원더걸스 사진이 담긴 필통을 쓴다. 나는 중학생 때에 최진실 사진을 오려붙여서 필통과 지갑을 손수 만들어 썼다.” 그의 사진에 달린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시야는 아이들을 둘러싼 제도와 정책, 사회 통념으로까지 넓어졌다. ‘학생들의 안전사고발생 예방 및 시설방호’를 명분으로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한 한 초등학교 앞에서는 “폐쇄회로가 없으면 아이들을 지킬 수 없는 우리나라 학교”를 씁쓸해하고 대학 내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보면서는 “등록금이 오르도록 정부가 손을 놓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는 국방비로 얼마나 쓰고 있을까”라고 한탄한다. 사방이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인 학교 건설 현장을 내려 찍곤 “학교 둘레를 재개발해야 한다면서(중략) 높이높이 아파트를 올려 세우면, 이 학교에 아이를 넣은 부모들은 걱정 없이 내려다보며 흐뭇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학교에 해가 더 비치지 않게 되어 걱정을 하게 될까요”라고 묻는다.
권우열 작가는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고 노는 바람에 언론에 보도된 중고등학교의 ‘과도한’ 졸업식 사진에 현란한 색과 형을 입혔다. 그것이 “표준적인 졸업식으로는 그동안의 센 경험들과 적절하게 작별할 수 없는(중략) 그들이 정말 연출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상계동 아이들을 찍은 최은식 작가는 “이 사회가 아이들도 재개발하고 있는 것 같아서”라고 그 의도를 밝혔다. 그런데 차마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미안했다.” 포커스 아웃된 사진 속 아이들과 재개발 지역은 안타까울 만큼 아득해 보인다.
“박명훈(1990년생)/ 촬영일시: 2008.11.8(토) 2008.12.27(토)/ 전북 전라고등학교 3학년/ 아침식사 내용: 우유, 빵/ 장래 희망: 무역전공, 좋은 회사 취업/ 최근 읽은 책: 한국지리 참고서 ㅋㅋ/ 가장 멀리 가본 곳: 일본/ 한달 용돈: 하루 천원/ 스무 살 성인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 생활인, 봉사활동/ 한마디 ...” 고정남 작가는 아이들의 사진마다 일일이 이런 ‘프로필’을 붙여 놓았다. 일종의 사전 작업이다. “앞으로 꾸준히 보려고요. 대학생 된 이후 어떻게 사는지, 지금 고등학생 시절에 생각했던 대로 살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청소년 인권 통해 사회 현실 담은 영화 ‘시선 1318’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하는 옴니버스 인권영화 프로젝트 역시 사회적 약자로서 ‘청소년’을 주목했다. 지난 11일 개봉한 ‘시선 1318’이 그 결과물이다. 청소년의 인권이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감독 5명의 질문과 고민이 담겼다.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이하 ‘청소년 드라마’)와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에서 청소년 인권의 범위는 더 이상 학교에만 갇히지 않는다. 나아가 청소년이 처한 삶의 여러 조건들,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수준과 이 와중에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두루 살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인권을 ‘우리’의 인권으로 끌어안고, 보편화한다.
구성원들이 좀처럼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병폐는 청소년들이 길바닥에 뱉는 무심한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조차 진득이 배어 있다.(‘청소년 드라마’) 이런 식이다. 여자 친구와 자려다가 그녀의 친구에게 욕본 남학생이 구실이랍시고 내세우는 것은 “경제적 능력”이다.
“하얀이(여자 친구)가 입고 있는 옷, 신발 다 내가 사준 거야. 나 책임질 능력 있어. 대학 나와 한 달 백만 원도 못 버는 어른들보다 훨씬 나아.” 한 여학생은 “때리는 것도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설파한다. “언니는 외고 다니는데, 내가 꿈이 없다고 하면 막 때려. 속상한가 봐.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나도 꿈이 생겼다?” 그렇게 생긴 위대한 꿈이 “남들이 다 알아주고 아무도 못 건드리는” 경찰 공무원이다.
한 여학생은 엄마와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것”과 새 핸드폰을 거래한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러 가는 엄마에게는 야무지게도 “될 것 같으니까 이명박 찍어라”고 당부한다. 주워들은 습속들을 아무 고뇌나 성찰 없이 익히고 발휘하는 순간, 이들은 기성 사회의 약자이면서도 자신들의 인권을 제한하는 공범이 된다.
이 척박한 상황 틈틈이, 감독이 생각하는 ‘인권’의 모양이 비집고 들어온다. 아웃사이더, 혹은 유령처럼 보이는 한 여학생이 비트박스를 하는데 이런 자막이 깔린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 매일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우주가 내준 숙제는 다 했니?)/ 아니요, 제가 바로 우주인 걸요/ (시장이 너에게 줄 선물은 생각해 봤니?)/ 아니요, 제가 바로 선물인 걸요/ (새로운 언어가 너희를 자유케 할 거야)/ 아니요, 제가 바로 언어인 걸요.” 어떤 ‘현실’에도 자신이 곧 우주이며 선물, 언어라고 또박또박 대꾸할 수 있는 청소년의 자존감이야말로 인권의 조건이자 그 자체라는 뜻일까.
‘청소년 드라마’가 어떻게 반인권적 사회 현실이 재생산, 지속되는지를 분석한 에피소드라면 ‘달리는 차은’은 여기에 맞서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제안하는 에피소드다. 한 시골 마을 중학교의 육상부 선수인 차은은 달리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마을 갯벌이 개발되면서 육상부가 해체되고, 그가 계속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서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차은을 ‘유학’ 보낼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의 삶의 패턴과 진로, 관계와 정서, 꿈까지도 개발 논리에 좌지우지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차은은 자신에 대해서 당장은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때 그녀의 답답함을 함께 나누는 사람은 필리핀 출신의 새엄마다. 영화는 청소년을 자연, 이주 여성 등의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등치하고 관계 맺도록 함으로써 인권은 개개인 간 소통과 공감, 연민과 연대 속에서만 가능하고 유효한 것임을 일러준다.
|
다음 세대에 공감하려는 ‘사춘기’
지난 16일 서울 명동의 해치홀. 청소년들의 정서적 혼란과 갈등, 방황을 소재로 한 뮤지컬 ‘사춘기’의 객석에는 정작 청소년이 드물었다. 대부분이 성인 관객이고 종종 중장년층도 눈에 띄었다. 홍보마케팅을 담당한 크레디아의 박보영 씨는 “청소년보다는 성인 관객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성행위와 자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수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춘기라는 보편적 경험을 환기함으로써 어른들이 자신과,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작품의 의도 때문이다.
“‘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많은 사회 문제의 중심에는 대화 단절이 있어요. 그 원인 중 하나가 어른들이 사춘기를 잊고 산다는 점이죠. 자신도 겪어 놓곤, 아이들의 공포와 불안을 이해하지 못 해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보편적인 ‘정서적 악몽’으로서의 사춘기가 세대 간 공감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뮤지컬도 거기에 일조하는 거고요.”
김운기 연출이 덧붙였다. “어른들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 아닌가요?”
문화예술이 청소년을 애타게 부르는 바탕에는 이런 반성이 있다.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체' 윤성호 감독
처음부터 이 영화를 구상했나. |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