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소년에게 말걸다] 서울영상고등학교 3학년 한동헌 감독'엠은엠 M=M'으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본선 진출

정작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기성 세대가 그들을 소비자로, 흥미진진한 캐릭터로, ‘희망’의 상징이자 대화의 대상으로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있기는 할까.

다음달 열리는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본선 진출“작 ‘엠은엠 M=M’의 한동헌 감독을 만났다. 그는 서울영상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으로 사는 것, 청소년 영화 감독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들은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도와 어려운 영화'판' 사정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정작 기복이 별로 없었다.

이번 영화에 대해 설명해줄래요?

시대에 뒤떨어진 아이가 있는 거예요. 오디오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만큼. 어느날 친구가 MP3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요. 그때부터 MP3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엄마의 지갑을 노린다는 코미디 영화예요. 솔직히 저희 학교 시설이 다른 예술고등학교, 애니메이션고등학교보다 좀 뒤떨어졌거든요. 그걸 표현한 거기도 하고요.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의사 전달이 잘 됐는지, 갈등 구조가 잘 표현됐는지를 봐요. 결국 시나리오가 좋은지를 보는 거죠. 예를 들면, 박찬욱 감독을 좋아해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갇히는 방의 미장센만 봐도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더라고요. ‘친절한 금자씨’ 보고도 놀랐어요. 금자씨가 아이 유괴범을 찌르라고 부모들 손에 칼을 쥐어주잖아요. 부모 마음은 직접 죽이고 싶을 정도였겠구나, 하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영상고등학교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요리를 좋아해서 조리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경쟁률이 세더라고요.(웃음) 인문계에 갈 생각은 없었고요. 요리 말고 좋아하는 게 영화였어요. 부모님도 어디 가더라도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하게 된다며 격려해주시는 편이세요. 누나도 조리고등학교를 나왔고요. 그런데 누나는 지금 진로를 바꿨어요. 대학에서 경영학 전공해요. 돈 많이 벌고 싶다고요.

학교 와서 진로 바꾸는 친구들 많아요?

네. 영화가 힘들어서요. 예를 들면, 대학교 연극영화과 가도 졸업작품 하는 데만도 800만~1200만 원쯤 들거든요. 개인이 부담해야 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학생들은 주로 어떤 영화 주제에 관심이 많나요?

학년마다 좀 다른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우정, 사랑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2학년 때는 주로 재미있는 거요.(웃음) 3학년 때는 많이 안 찍어요, 공부하느라. 대부분 자기 얘길 하죠. 평소 말로 표현 못했던 것들.

촛불집회는 나가 봤어요?

아뇨. 집이 오이도라 학교(서울 목동) 다니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요. 집회 나가면 집에 가기 힘들잖아요.

주변에 나가는 친구들도 있나요?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진 않아요. 전교생이 150명이라면 그중 10~20명 정도? 뉴스에 나오는 거랑 똑 같나, 어떤가 보러 가는 친구들도 있고 국민이 이러는데도 대통령이 정말 안 들어줄까?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나누나요?

어른들은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도 다 알아요. 얘기 하긴 하죠. 그런데, 제 생각에는 집단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우리끼리 이렇게 말하면...대통령이 모를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보기엔 요즘 학생들이 많이 힘들 것 같아요. 경쟁도 치열해졌고. 그런 것 실감하나요?

그래도, 어디서든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이 말씀 많이 하세요. CJ나 롯데 들어가면 서울대, 연고대 애들이랑 경쟁해야 한다고. 그런 것 고려하면 차라리 작은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쨌든 일단 대학부터 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않냐고들 하세요.

인생 상담해주는 선생님은 없어요?

예전에 계셨어요. 도움 많이 받았죠. 내신 올리고 수시 넣어라. 너는 영화 스토리텔링보다는 분석에 강하니까 그런 능력 보는 대학에 지원해라, 같은 충고 해주셨어요. 일단 대학가서 원하는 것 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영화판이 너무 안 좋다고 알려주시는 분도 있어요. 대학 못 가면 연락하지 말라는 선생님도 계시고(웃음) 일단 점수 맞춰 생활체육과 갔다가 전과하란 말도 들어봤어요.

영화하려면 박학다식해야 할 것 같은데 책 많이 읽어요?

잘 안 읽어요. 가끔 경제서 정도? ‘머시멜로 이야기’, ‘달란트’ 같은 책 부모님이 갖다 주셔서 읽었어요. ‘씨네21’, ‘무비위크’ 같은 영화 잡지는 읽어요.

영화는 많이 봐요?

시간이 없어서 끌리는 것만 봐요. ‘과속 스캔들’, ‘김씨 표류기’ 같은 영화, 시놉시스가 좋아서 봤어요. 외국 영화는 안 봐요. 그건 외국에서 돈 많이 벌 테니까요.(웃음)

청소년 드라마 본 적 있어요?

‘정글피시’, ‘학교’ 봤어요. 어른 시선과 아이들 시선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어른들이 아이들이 반항하는 이유를 잘 모르잖아요. 그냥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치부해 버리죠.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꽉 막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울학교 이티' 보면서 좋았던 게 선생님이 반항하는 학생을 막 때린 후에 소주를 권하면서 대화하거든요. 예전에는 그런 선생님이 많았나 봐요. 요즘은 없어요.

동헌 군에게 영화는 뭐에요?

이렇게 말하면 좀 오해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웃음) ‘수단’이에요. 제 꿈은 세계 어디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스티븐 스필버그처럼요. 아프리카에 가도 알아보는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