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죽었다고?] 콩쿠르 통한 팬덤현상·로컬시장 강화·음반 A&R 파트 등 새바람

클래식은 죽었다? 순수 예술분야에서 ‘위기’라는 단어가 생소한 곳이 어디 있을까. 클래식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위기는 하루 이틀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가시적인 위기감이 전해진 것은 EMI라는 메이저 음반사의 워너 합병과 클래식 리뷰 전문지 그라모폰의 휴간, 클래식 음악보다 팝송을 부르는 성악가들과 무분별하게 크로스오버 음악을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하면서다.

올해 초,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펴낸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리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모습에서 클래식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견한다.

“생산성은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른바 메이저 레이블에서 매달 새로 내는 음반이 두세 종에 불과하며 다른 독립 음반사들이 드문드문 음반을 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도이치 그라모폰과 EMI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 장이 넘는 신보를 왕성하게 쏟아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하략)”

그러나 이러한 의견에 대해 클래식 음악관계자들과 전문가들 모두가 동의하진 않는다. 국내에서도 IMF이후 음반시장이 반토막이 나면서 매출액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디지털 시대를 준비해온 영국과 일본의 경우 과거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것은 클래식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클래식 음악을 콘텐츠로 한 공연, 음반, 콩쿠르 등의 산업에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그 변화가 곧 클래식의 죽음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지난 달, 순수 국내파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세계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준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그곳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공동 우승을 차지한 이들은 일본의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노부유키 쓰지와 중국의 장 하오첸이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1,2위를 석권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나타난다.

클래식 전문가들은 클래식의 중심이 유럽과 미국에서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는 말을 해오곤 했는데, 그 증거는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경연장인 콩쿠르에서 단적으로 보여진다.

음반시장도 사정이 달라졌다. 과거 인터내셔널 시장이 활성화되었다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로컬 시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세계 클래식 음반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유니버설뮤직 역시 2-3년 전부터 로컬 마켓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한국인 아티스트로는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 비올리스트 리차드 용재오닐,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음반을 발매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등 젊은 아티스트들의 앨범 발매가 활기를 띠고 있다.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은 사라 장과 장한나 이후, 오랜만이다. 이는 로컬시장이 강화되면서 아티스트와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A&R(Artist&Repertoire)파트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변화다. 음반사에서 새롭고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의 발굴은 없어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이는 곧 음반사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아카이브 형성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해외에서 발매된 음반의 국내 홍보와 마케팅만을 맡았던 역할이 국내의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으로 A&R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A&R을 통해 탄탄한 일본 아티스트들을 기반으로 한 로컬 마켓을 유지해왔다.

콩쿠르와 A&R을 통해 클래식 공연계에서 오빠부대를 이끄는 연주자들도 등장했다. 콩쿠르를 통한 팬덤현상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다. 아트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를 가진 앙상블 디토는 최근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단지 하나의 트렌드로 가둬두기엔 전에 없던 뜨거운 변화들이다.

기존의 클래식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미국, 일본에서는 꾸준히 클래식 팬들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한국의 클래식계는 다각적인 변화 속에서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클래식은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는 과거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 ‘돈이 벌리던’ 시스템의 죽음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클래식 음악이란 본질은 새로운 옷을 입게 마련이다. 클래식음반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김정호 프로듀서가 클래식계를 낙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풍선효과처럼 이게 아니면 또 다른 대안이 나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팬덤현상이나 국내 클래식 음반에 등장한 A&R은 현 시대 한국에서 클래식이 입은 새 옷인 셈이다.

*A&R(Artist&Repertoire)은 음반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조율하는 업무이다.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아티스트에 어울리는 음반을 기획하고, 곡 선정, 녹음, 패키징 등에 필요한 스태프를 채용하고 아티스트의 음반 작업의 전 과정을 총괄한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