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죽었다고?] 스타일리시한 외모·뛰어난 실력과 곡 선정 오빠부대 계보 이어가

한국 클래식에서 팬덤(fandom)현상은 유례가 없던 일이다. 쉽게 말하면 오빠부대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덤 현상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클래식계에서도 자주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스타일리시한 외모에 뛰어난 실력까지 갖춘 남성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20~30대 여성을 기반으로 한 팬 층은 그들의 공연을 매진시키고 포털 사이트 팬 카페에서도 둥지를 틀었다.

그 출발이 피아니스트 김정원, 박종훈, 첼리스트 송영훈이었다면, 상승곡선은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선욱, 김태형,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등 솔리스트들과 앙상블 디토가 이어가고 있다. 이들 중 비올리스트 리차드 용재오닐을 주축으로 한 앙상블 디토의 활약은 대단하다. 지난해 이미 성황을 이룬 공연으로 그 낌새를 보여주었던 앙상블 디토, 올해 그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파급력은 예년을 뛰어넘는다.

앙상블 디토의 아이디어는 리차드 용재오닐에게서 비롯되었다. 용재오닐이 클래식 전문 기획사이자 아트 매니지먼트회사인 크레디아에 소속된 지 3년째 되던 2007년. 크레디아의 정재욱 대표는 용재오닐에게 해보고 싶은 작업을 물었고 그가 내놓은 대답은 실내악단 결성이었다.

사실 실내악은 클래식 감상의 종착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 그리 환영받는 구성은 아니다. 어쩌면 이 점이 오히려 용재오닐에게 호기심과 도전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용재오닐이 음악적 컨셉을 잡고 오랜 음악 친구들로 멤버를 선별하면서 틀을 잡아갔다.

때문에 지금까지 앙상블 디토의 색채는 용재오닐의 개인적 스토리텔링에 힘입은 바 크다. 여전히 공연장에서 수많은 팬들은 용재오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가장 우렁찬 박수를 보낸다.

그가 디토의 리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KBS 인간극장을 통해 잘 알려진 그의 이야기, 예컨대 입양된 어머니로 인해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게 된 사연이라든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든가, 한국 이름인 용재가 영어 이름 사이에 자리하게 된 이유 등은 용재오닐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인간극장을 보고 들었던 이들은 더 이상 용재오닐을 낯설게 느끼지 않는다.

앙상블 디토의 첫 멤버는 용재오닐을 비롯해 임동혁(피아노), 패트릭 지(첼로), 스테판 재키브(바이올린), 쟈니 리(바이올린)였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동혁 대신 지용이 영입되었고 첼리스트 마이클 니콜라스가 가세하면서 멤버는 6명으로 늘었다. 지난 시즌이 피아노 퀸텟이었다면, 올해는 스트링 섹스텟으로 컨셉을 잡은 때문이다.

용재오닐과 더불어 임동혁은 클래식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선 셀러브리티였기에 앙상블 디토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수필가 피천득의 외손자인 스테판 재키브 역시 디토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음반과 공연에 앞서 패션지 화보촬영으로 탄생을 알린 방식 역시 이색적이었다.

미국 상류층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을 법한 그들의 패션코드,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여기에 멤버 전원이 해외 거주자라는 점은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신비한 이미지를 더해내기에 충분했다.

1-지용
2-리차드 용재 오닐
3-쟈니 리
4-스테판 재키브
5-마이클 니콜라스
6-패트릭 지

올해의 활동은 첫 앨범‘디토 카니발’로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라는, 클래식에서는 전례가 없던 시도도 이루어졌다. 피아니스트 지용이 골동품 더미 사이로, 현악 오중주를 하는 앙상블 디토 멤버들을 발견하고 그를 위해 남겨진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동화 같은 내용이다.

기존 클래식의 잣대로 본다면 그들의 활동은 클래식이 가지는 엄격함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저변을 확대함과 동시에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이유는 순도 높게 단련된 연주실력과 곡 선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외면을 타개하기 위해 기획사와 음반 프로듀서들이 선택한 것은 크로스오버였다.

그러나 크로스오버의 지속적인 자기복제는 곧 대중을 질리게 만들었고 그들을 클래식 주변부에서만 머물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앙상블 디토가 바람직한 이유 중 하나가 대중을 주변부가 아닌 클래식의 중심부로 단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실내악단으로 시작한 앙상블 디토가 올해는 해외의 연주자들을 끌어들여 ‘디토 프렌즈’를 꾸미고, 세계 각국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디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디토 페스티벌’을 완성해냈다. ‘디토 프렌즈’나 ‘디토 오케스트라’가 오른 무대에는 앙상블 디토가 직접 출연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디토’라는 젊은 클래식을 대변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이 대목에서는 기획사가 상당 부분 기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젊은 연주자들에게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클래식 음악계에서 15년 간 담금질해온 크레디아의 기획력과 적극적인 지원은 한국 클래식 공연에 많은 가능성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티스트와 아트 매니지먼트간의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패션쇼 무대에 설 수는 있어도, 연주하는 음악만은 클래식이어야 한다는 합의는 앙상블 디토에 선명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클래식 안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그들이 자처한 몫이었으니까.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