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책을 읽는가] 단순한 다독가·장서가 아니라 독서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

#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책을 안 읽는 인간과 책을 못 읽는 인간. 내 고객은 주로 후자 쪽이다. 책을 읽고 싶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상대한다. …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이다.

김경욱의 소설 <위험한 독서>는 독서치료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직업은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 차원을 넘어 사람의 삶 자체를 바꾸는 데 목표를 둔다.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독서가들이 책을 통해 삶을 바꾼다. 그들은 말한다. “정보 습득은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다”고. 책이 다른 매체와 다른 것은, 독서의 과정을 거쳐 읽는 사람의 본질을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통해 인생 역전을 한 사람을 우리는 ‘독서의 달인’이라 부른다. 독서의 달인은 누구인가?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책 속에 있는 건 글자이죠. 글자는 길이 아니죠. 길은 책 속에 있는 게 아니고 그 책을 읽는 인간 안에 있는 것이죠.”

소설가 김훈이 지난 해 독자와의 만남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 “인간의 존재와 현실로 연장될 수 없다면 책 속의 진리란 얼마나 공허하고, 덧없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인간의 존재를 바꿀 때, 책은 위력을 갖는다.

같은 의미에서 독서의 달인은 단순한 다독가, 장서가가 아니다. 그들은 책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위로를 받기보다 독서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책 읽고 권하기라면 빠지지 않는 사람 중 하나가 오지여행가 겸 베스트셀러 작가 한비야 씨다. 그는 일 년에 100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는데, 월드비전 긴급구조팀장으로 재난 현장에 있던 몇 해를 제외하고 이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책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개미와 우주인, 천 년 전 사람들과 천 년 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녹아들어가고, 그들의 머릿속을 낱낱이 분석할 수 있단 말인가? 책 읽는 재미를 알고 난 후부터 정말이지 나는 심심하다는 단어를 모르고 살고 있다.’(책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

인문학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의 고미숙 연구원은 “책으로 인생 역전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는 스스로를 ‘호모 쿵푸스’(공부하는 인간)라고 부른다.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책과 친구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가난한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 나와 친구들은 골방에 모여 책을 읽고 동네 골목에서 공을 찼다. 지금 나의 일상에는 공부와 밥과 우정이 충만하다. 고로 나는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책 <호모 쿵푸스> 중에서)

출판 평론가 표정훈 씨는 스스로를 ‘탐서주의자’라고 말한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 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眞)과 선(善) 위에 두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독서의 달인이 책을 대하는 자세는 일종의 종교에 가깝다.

달인은 무엇이 다른가?

잠깐, ‘독서의 달인’에서 벗어나 평균적인 독자들의 독서 스타일을 살펴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8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11.9권으로 한 달 평균 한 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이 많이 읽는 책은 소설(21.4%)과 수필/명상집(7.4%), 경제/경영서(5.9%) 순이었다.

문제는 ‘독서의 질’이다. 도서 구입 시 고려요인으로 책의 내용(29.4%)을 가장 먼저 꼽았지만, 저자(8.6%)와 베스트셀러 여부(7.7%)가 그 다음 고려 요인으로 작용했다(교양도서 기준). 즉, 유명인이 출간한 책 또는 남들이 읽는 책을 “나도 따라 읽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할까? 독서 장애 요인으로 조사 응답자들은 ‘시간 없음’(39.4%)과 ‘독서가 습관화 안 됨’(22.1%)을 꼽았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른다’(3.5%)와 ‘이해하기 어렵다’(1.9%)는 대답도 5위와 8위를 차지했다. 방법을 몰라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독서의 달인은 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한비야 씨는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 자기계발서와 문학작품의 요약본은 절대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학작품 한 권을 읽는 다는 것은 사과 한 알을 오감으로 충분히 음미하는 과정과 같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들어도 맞는 말로 가득하지만 결국 자기를 계발한다는 건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니까.’(책 <그건 사랑이었네> 중에서)

독서의 달인 중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저의 계발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서평가로 활동하며 ‘책 읽는 PD’로 이름을 알린 CBS 정혜윤 PD역시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점에 가보면 ‘30분에 읽는’ ‘하룻밤에 읽는’ ‘3일 만에 읽는’ 이런 제목의 책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런 성격의 책을 두 권 집필한 경험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그런 책의 구실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주마간산격으로, 경우에 따라서 흥미 위주로 훑어보는 데 그치는 거지요.”

출판평론가 표정훈 씨가 어느 독자에게 보낸 ‘독서 잘하는 법’에 관한 답변의 일부다. 사유하는 책만이 독서의 달인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들은 연애하듯 책을 바라보다, 책의 내용을 잘근잘근 씹어 자기 것으로 만들 때 책을 손에서 놓기 때문이다.

‘내가 한 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위는 곧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의 양부가 되고, 의사(psedo)저자가 된다.’ (장정일, <장정일의 독서 일기> 중에서)

‘책 읽기는 읽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다시 글을 쓸 때 책 읽기의 모든 과정이 완성된다. 이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비로소 책 읽기의 달인이 될 수 있다.’(이권우, <호모 부커스> 중에서)

독서의 달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은 인간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이 해답을 알고 싶다면, 다음 페이지, 달인들의 이야기를 눈여겨 보라.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