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책을 읽는가] 장석주·이현우·정혜윤 3人3色 독서론

우리 시대 독서의 달인 3인을 소개한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는 2만 권의 장서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 해 평균 1~2권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다작의 작가이기도 하다.

‘로쟈’란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현우 씨는 19세기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대학 강사다. 인문학, 사회과학, 사상서 등 깊이 있는 책에 관한 서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CBS정혜윤 라디오PD는 인터넷 서점 <예스 24>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책, 여행 관련 에세이를 연재하며 일반에 알려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석주 평론가의 경우 새벽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쓰고 책을 읽는다. 이현우 씨는 한번에 10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직업 상 따로 독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정혜윤 PD는 방송 중간에 5분씩 짬짬이 책을 읽는다. 이현우, 정혜윤 씨도 각각 1만 권과 5000권의 책을 갖고 있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독서는 사유하는 힘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써요. 12시까지. 오후에는 책을 읽고 저녁에는 방송국에서 녹음하고.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 쓰고 책 읽을 수가 없어요.”

장석주 평론가의 일상은 마치 수도승 같다. 반복적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평론가, 시인, 라디오 진행자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로 활동하는 그는 한 주에 평균 2박스 분량의 책을 사들인다. 일 년간 평균 1200~1500권을 산다.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쓰기도 하는데, 문학평론집 <상처입은 용들의 노래>와 서평 에세이 <취서만필>이 올해 상반기에 나왔고, 한국문학 100년 역사를 정리한 <나는 문학이다>가 8월 중 나올 예정이다. 9월에는 또 두 권의 책이 기다리고 있다. 앞의 3권 모두 책에 관한 비평, 에세이집이다. 그에게 독서는 생활이자 밥줄인 셈이다.

- 장서 2만권이면 얼핏 감이 오지 않는다.

“2만 권의 책을 읽은 건 아니고, 갖고 있다는 뜻이다. 경기도 안산에 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가정집, 한 채는 책을 모아두는 곳이다. 홍대 근처에 작업실을 만든 지 3년이 됐는데 여기도 4000권 가량이 있다. 일본의 한 작가는 하루에 7권씩 읽는다고 한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읽지는 못한다.”

- 속독을 하나? 한 권 읽는 데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보통 사람보다 빨리 읽는 편이지만, 속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속독을 배운 적도 없고. 다만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좋은 편이다. 보통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집중하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다.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자꾸 들춰보는 게 반복된다. 나는 3시간 정도는 집중할 수 있다. 책마다 다르지만, 인문학 서적의 경우 그 정도면 한 권 읽는다. 소설을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 독서 달인들이 추천하는 책은 탁월하다. 책 고르는 기준은 뭔가?

“좋아하는 책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미시사, 수학, 양자 물리학, 뇌 과학, 진화학. 기본적으로 미술, 건축과 같은 예술서도 좋아한다. 책 고를 때 기준은 사유를 자극할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생각하기 위함이다.”

- 책을 읽을 때 특이한 버릇이 있나?

“책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지 않는다. 메모도 안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책과 더불어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독서를 하는 동안 뇌를 입체화하는데, 책의 키워드를 입체 공간에 넣고 키워드들이 연결되는 방법과 전개과정을 하나의 마인드맵으로 만든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책을 따라 간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 독서의 달인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독서는 무조건 시간을 내야 한다. 영화나 인터넷, 다른 취미 생활 중 무언가를 빼고 책 읽을 시간을 자기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 책을 사면 언젠가는 읽는다. 책에 관한 책, 일간지 주말 북 섹션, 서평 기사 등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책 고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로쟈' 이현우
노예처럼 부려먹어라


이현우 씨는 깊이 있는 인문학 서평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은 이미 젊은 지식인 사회에서 유명한 서평 블로그가 됐다. 서울대 노어노문과 강사인 그는 전공인 러시아문학 이외에도 들뢰즈, 지젝, 랑시에르 등 해외 지식인들의 국내 번역본에 관해 가장 먼저 서평을 올린다.

올해 5월 지난 10년간의 서평을 모은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서평할 책을 고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들은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핫’한 책이기도 하다. 웬만한 출판, 문학 기자보다 이들 책의 출간 소식을 먼저 알고 있을 정도다. 그는 “대학과 소수 고급독자-일반 대중독자로 나뉜 국내 인문학 시장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당신의 경우 인문, 사회과학, 사상서를 특히 많이 읽는다. 내용이나 두께가 만만치 않은 책들인데, 전공을 공부하며 어떻게 이런 책들을 가장 빨리, 많이 읽어내나?

“문학 공부는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공부라서 굉장히 폭 넓다. 인문학, 사상서를 읽는 게 외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책 많이 읽는 사람은 정말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저자도 나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기자가 가져갔던 이주의 서평 책<네이션과 미학>을 가리키며) 고진도 나보다 훨씬 많이 읽지 않나.”

-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책 읽기는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이 앎에 대한 저항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모르면 편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감히 알려고 하라’는 거다. 감춰진 진실을 알면 불행해지고 책임을 떠안게 되는 건데, 그걸 즐겁게 감수하는 것. 그것이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1-이현우
2-장석주
3-정혜윤

- 로쟈의 서평은 자세하면서도 길다. 마치 한 권의 책을 다시 읽는 느낌이다. 자기만의 독서법이 있는가?

“서평과 학교 강의 등을 병행하다 보니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게 된다. 최근에는 10권 정도를 함께 읽는데 경우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발췌독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할 때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내용을 정리한다. 복사할 때 밑줄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원서와 함께 본다. 의역이 아니라도 부주의하게 쓴 부분이 있다. 사상서는 해당 저자의 책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다음 책은 다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젝의 책은 처음 한 권을 소화하면, 다음 책은 어떤 철학자의 책보다 쉽다. 선입견을 버리고 읽었으면 한다.”

- 독서 달인 비법에 대해 말해 달라

“많이 읽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초등학생의 경우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 독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읽는 것을 어느 정도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책을 갈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선까지 저자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겠지만, 이후에는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이용해야 한다. 책을 노예처럼 부려먹어야 한다.”

정혜윤 PD
책은 독자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CBS 정혜윤 PD는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행복한 책 읽기>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라디오 프로듀서다.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 서평을 올리며 이름을 알렸고 서평책 <침대와 책>이 인기를 모으며, 인터뷰와 책 소개를 함께 엮은 에세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펴냈다.

그는 인터뷰 중 헤르만 헤세의 저서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등의 일부분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는데, 작가의 문체와 묘사를 거의 다 기억할 만큼 꼼꼼히 읽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는 말했다. “한 시간에 걸쳐서 줄거리를 말해드릴 수도 있어요.”

현재 영화음악과 재즈, 두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예스 24>에 고전에 관한 서평을 연재 중이다.

- <예스 24>에 서평을 연재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연재 계기가 있었나?

“서평을 올리면 원고료 대신 책을 줬다. 책을 많이 받고 싶어 원래 2주일에 한 번 원고를 주는데 내가 일주일에 한 편씩 보내겠다고 말했다.”

-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보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공지영 작가가 <즐거운 나의 집>에서 패러디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문장 하나까지 기억하는 게 놀라웠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

“작가의 저서는 자기복제 같은 면이 있다. 한 작가의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성향, 문체 특징이 있는데 어느 순간 독자인 나와 맞는 순간이 있다.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책을 발견해도 세상에 읽을 책은 너무 많고,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다시 못 읽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캐릭터와 현실의 사람들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마치 ‘다시 못 볼 친구’처럼 본다. 내가 책을 특별히 면밀하게 기억한다면 아마도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 책은 얼마나 많이, 자주 읽나?

“생각보다 많이 읽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고전에 관한 원고를 연재 중이라 신간은 더더욱 못 읽는다. 일주일에 5권 정도 읽는 것 같다. 방송 중간에 5~10분씩 시간을 낸다. 개인적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 손 부분을 몸에서 제일 좋아한다. 이 부분에 무엇을 움켜쥐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간은 책이었다.”

- 책 고를 때 기준은? 안 읽는 책도 있나?

“싫어하는 책은 실용서, 자기계발서다. 자신의 계발은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 책을 고를 때는 보통 작가를 많이 본다. <연인>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도 좋아한다.

- 책 읽을 때 버릇이 있나?

“침대에서 온 몸을 비틀면서 읽는 걸 좋아한다. 따로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는 않는다. 라디오 PD를 오래 하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가 하나의 장면이나 말을 그대로 기억하는 거다. 책의 한 페이지가 사진처럼 찍혀 머리에 남는다.”

- 당신에게 책은 뭔가?

“작가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는 말이다. 한 권의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에 결판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이라고 했다. 나는 이것이 책과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