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에 '고야'는 있는가] 1980년대 민중미술 이끈 '현실과 발언' 창립 30주년 콜로키움 열려

4월 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현실과 발언' 창립 30주년 콜로키움 장면

“1970년대는 매우 역동적이며 실험적인 현대미술이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기성 미술인들은 기이하고 알 수 없는 조형작업에 매달렸다. ‘현실과 발언’에 참여한 작가들이 인식한 문제는 미술이 어떻게 사회현실을 떠나서 순수하게 조형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였다.”

지난 4월2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3층 라운지에서는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미술 소집단 ‘현실과 발언’의 역사적 의의를 돌아보는 콜로키움이 열렸다. ‘현실과 발언’ 멤버 중 심경호, 민정기, 임옥상 작가가 자신들의 대표작을 설명하고 참여평론가, 관객과 질의응답, 토론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현실과 발언’은 추상적 미니멀리즘에 몰두하고 있던 1970년대 주류 한국미술계와 당시 엄혹한 정치 상황에 대한 반발로 비판적 리얼리즘을 전개한 미술소집단이었다. “삶과 아무 관련이 없고, 재미도 힘도 없고, 사람들 사이 의사 소통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성완경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의 ‘현실’성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려는 취지였다. 오윤, 주재환, 심경호, 민정기, 임옥상, 안창홍, 박재동, 박불똥, 안규철 등의 작가들이 속해 있었다.

그 미학적 성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한국 미술의 행로를 바꿔놓은 중요한 문화운동”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미술 작품이 전시장뿐 아니라 시위 현장이나 공장 등 생활 현장에서도 전시될 수 있고 또 출판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대중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확인시킨 것”(이주헌 미술평론가 ‘민중미술의 문화사적 의미’)이었다. 더불어 걸개 그림, 판화, 만화, 포스터, 비디오와 슬라이드 등 한국미술의 장르와 매체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0년, 10년간의 활동 끝에 해체된 ‘현실과 발언’이 창립 30주년을 맞은 올해 콜로키움을 여는 것은 그 존재 의미가 지금 한국미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증거다.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인 김종길 미술평론가는 “현재에도 한국사회의 정치적 문제, 모순은 지속되고 있으며 따라서 예술이 어떻게 사회를 성찰할 것인가, 라는 ‘현실과 발언’의 문제의식은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단지 미술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미의식이 필요한가, 어떤 미의식이 인간적이고 윤리적인가를 논의하는 움직임과 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실과 발언’은 합일된 미의식보다는 미의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평가받는다.

“‘현실과 발언’은 독특하게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참여한 그룹이다. 민중미술에 대해서든 민중에 대한 개념인식에서든 서로 조금씩 다른 의견들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오히려 ‘현실과 발언’의 작업들을 보다 다양하게 읽게 하는 장점이기도 하고, 창작자 고유의 태도이기도 했다.”(4월24일 콜로키움 중)

이태호 교수는 “재야정치인에서부터 시장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던 ‘현실과 발언’ 전시 오프닝을 떠올렸다. 그것은 한국미술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학벌주의, 엘리트주의 등을 뛰어넘은 축제와도 같았다.

지난 3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진행된 ‘‘현실과 발언’ 창립 30주년 콜로키움’의 내용은 8월 말 열리는 워크숍과 총 10여 명 연구자 및 평론가의 원고와 함께 12월 초 자료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