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사용 설명서] 다양함에 전문성 더해진 진정한 '문화 통'들의 멀티플한 공간으로

(좌) 상상마당 내 씨네마 (우) 갤러리, 식당, 공연장 등을 겸한 더 소호

“저희는 갤러리가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정정 부탁드려요.”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항의성 요청을 타고 내 귀에 들렸다. 당시만 해도 ‘백수가 아니라 화이트 핸드입니다’라는 말보다 더 공허하게 들렸다. 명칭이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전시였으면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DJ의 음악과 젊은 행위 예술가의 퍼포먼스, 그리고 노련한 믹솔로지스트의 칵테일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반드시 구분해 주어야 할 장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통’들의 공간

복합문화공간은 비단 최근의 이야기는 아니다. 홍대 인디 문화를 지원하는 상상마당은 기업이 시도해 성공한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이고 필운동의 더 소호는 시, 음악, 음식, 그림, 무용까지 수용하는 10년 전통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굳이 이런 독보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카페에 그림 하나 걸고 복합문화공간이라 자처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에게 복합의 이유를 물으면 항상 “한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라는 엇비슷한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건 진짜 이유가 아니다. 다양성이 그렇게나 강력한 무기였다면 청국장부터 돈까스까지 전부 파는 터미널의 분식집이야말로 최고의 식당일 터다. 그러나 30년 전통의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 30분 동안 줄을 서는 것이 사람이다. 즐비함, 그 자체만으로는 제대로 된 한 가지를 이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복합문화공간을 연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의 주인장들은 한 마디로 ‘통’들이다. 식문화면 식문화 독립문화면 독립문화, 각 문화 안에서 구르고 자란 ‘통’들이 자신의 특색을 살린 공간을 구상했는데 하도 각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 보니 이것저것을 고집하다가 자연스럽게 멀티플한 공간이 탄생했다. 이것이 한층 설득력 있는 가설일 것이다.

지난 2월 가로수길에 문을 연 투티마티는 1명의 호주인과 2명의 이탈리안이 의기투합한 산물이다. 믹솔로지스트와 와인 전문가, 그리고 이탈리안 셰프가 구상한 공간에 바 라운지와 카페,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티 룸이 한꺼번에 들어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들이 만든 공간은 다양성을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전문적이다. 4층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용도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이 나고 자란 유럽 문화의 향기가 짙게 배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지난 4월 논현동에 자리 잡은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비주류 문화 집단의 아지트다. 아지트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거친 컨테이너 건물에는 대통령을 비웃거나 속눈썹에 LED를 붙이는 괴짜들의 전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뒤에는 서브 컬처 운동을 벌이는 아티스트 그룹 플래툰이 있다.

전세계 괴짜 아티스트 3,500명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이 그룹이 아시아의 괴짜들을 찾아내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다. 이곳에서는 디제잉,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먹고 마시기 등 보고 듣고 맛보는 모든 문화 활동이 전개되지만 건물 외관과 공간 구성, 그리고 철제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에까지 비주류 집단 특유의 자유와 뒤틀림이 묻어난다.

기업과 아티스트, 화해와 양보의 산물

복합문화공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기업이 받치고 있다. KT&G의 상상마당, 쌈지의 쌈지 스페이스에 이어 금호건설이 지난해 대치동에 크링을 열었다. 이들의 자본력은 넓은 전시 공간과 영화관, 콘서트 홀 등의 시설을 가능케 해 방문자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성에 비해 떨어지는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이 선택한 것은 전문 인력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다. 상상마당은 작가나 작품들을 선정하고 심사하는 데 동일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작가나 자문위원, 평론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크링 역시 금호아트센터의 전문 큐레이터들에게 전시 기획의 대부분을 맡기고 있다.

기업과 아티스트가 손을 잡을 때 일어나는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라지만, 잠시나마 자본주의 논리를 접고 문화를 향해 손을 내민 이 공간을 통해 작가들은 대중과 소통할 기회를, 지역 주민들은 보다 손쉽게 정신적 유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복합문화공간의 등장이 반가운 진짜 이유는 문화의 가치가 돈보다 존중받고 있다는 확실하고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만든 곳이 아니더라도 문화를 고수하는 일에는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그 돈은 쉽게 회수되지 않는다.

더 소호의 이승신 관장은 “11년 전 더 소호를 열면서 곧 이와 비슷한 복합문화공간이 연이어 생기리라 예상했지만 아직도 비슷한 사례를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일이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복합문화공간과 그 안에서 목격되는 그들만의 단단한 문화, 그리고 공간을 찾는 수많은 발걸음들은, 앞으로는 돈이 아닌 문화가 힘이라는 사실에 대중과 기업이 잠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