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의 재발견] 실용의학서 1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한의학 해외 진출 청신호

1-조선의 의학이 중국 북쪽 의학과 남쪽의 의학에 견줄 만하다는 뜻에서 동쪽 의학을 줄인‘동의’에, 다른 이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것인‘보감’을 붙인 것이 바로‘동의보감’이다.
2-신형장부도
3-동의보감 한중일
4-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의보감
1-조선의 의학이 중국 북쪽 의학과 남쪽의 의학에 견줄 만하다는 뜻에서 동쪽 의학을 줄인'동의'에, 다른 이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한 것인'보감'을 붙인 것이 바로'동의보감'이다.
2-신형장부도
3-동의보감 한중일
4-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내용이 독창적이고,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오늘날 다방면에서 서양의학보다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세계기록 국제등록부에 등재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이 같은 찬사를 받으며, 당당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됐다.

한의계는 물론 온 국민이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한의학의 정통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관련 문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고, 한의학의 해외 진출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동의보감은 실용의학서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동의보감은 '투명인간이 되는 법', '귀신을 보는 법', '태아를 여아에서 남아로 바꾸는 법' 등 오늘날 상식에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며 동의보감은 첨단의학서가 아닌 역사상의 유산일 뿐이라는 논평으로 찬물을 끼얹고 있다.

동의보감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유네스코는 카리브해 바베이도스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 7월 31일, 한국이 신청한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가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보건복지가족부와 문화재청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동의보감의 학문적, 임상적 유용성을 높이 평가했고,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전통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점 등을 인정했다. 현대의학의 의학적, 보건학적 난제에 대해 새로운 의학적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도 높게 평가됐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동의보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던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 기념사업단의 관계자는 유네스코 심사위원들로부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 했으며, "19세기까지 전례가 없었던 정부 주도 하의 예방의학과 공중보건의 원칙들을 발전시켰다"와 같은 심사평을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의학연구원 동의보감 기념사업단 안상우 단장은 "심사평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려면 각 나라의 심사단으로부터 굉장히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치는데, 우리가 낸 동의보감 신청서 내용에 대해 심사위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청서에는 동의보감이 갖는 뛰어난 보건의료사 및 세계사적 가치와 영향력, 독창성, 과학성 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안 단장은 "신청서 내용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는 것은 한의학이 중의학에서 파생된 가지가 아니라 독창적인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동의보감이 일각의 시각처럼 미신으로 가득 찬 책이 아니라 과학적이었다는 점 등을 고스란히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동의보감은 미신적인 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의를 확대 해석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는 최근 논평을 통해 "동의보감은 말 그대로 세계의 기록 유물이지 첨단 의학서가 아니며, 기록 유산 등재는 기록물을 원상태로 보존한 것, 즉, 복사본이 아닌 초간본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더 나아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의계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선전에 이용하는 것은 황당하며, 문화유산과 과학을 구별 못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의학이 서양의학보다 우수하다든가 현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의학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근거로 무엇보다 동의보감이 '귀신을 보는 법' 등 과학적이지 못하고 미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이번 동의보감 유산 등재의 추진을 진행했던 안상우 동의보감 기념사업단장은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가며 반박했다.

그는 먼저 "16~17세기 서양에는 동의보감 같은 대중을 겨냥한 공중보건의학서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인체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쓴 종합 의학백과전서가 없었다. 당시 서양의학은 경험의학에 머무르는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며 한의학이 당대 서양의학과 비교해 과학적인 면에서도 훨씬 뛰어났다고 주장했다.

책에 미신적인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으나, 전체적으로 합리성이 전제된 의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기본 토대는 다르지만, 동의보감이 서양의학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과학성과 합리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기록유산 등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동의보감 이전까지 한의학은 불교와 도교의 사상적 영향 아래 합리성이 배제된 의학이었으나, 신유학 사상에 근거해 편찬된 동의보감은 실증적 정신이 배어 있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전까지 서양이나 중국의서에 없었던 내경, 외경, 잡병 등 체계적 분류를 제시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식 아파트에 살다가 선조들이 지어놓은 한옥으로 가서 살면 불편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에어컨이나 보일러 없이 지어졌다고 한옥의 단점을 지적하기 전에, 그런 게 없이도 살 수 있게 설계한 우리 문화의 장점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동의보감의 내용을 낱낱이 살펴보면, 낙후되고 불편한 게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당대 질병에 대해 고민했던 지혜와 지식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다고 봅니다. 비유컨대, 수 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책을 오늘날에도 보고 감동받는 이유와 같은 것이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고전 속에 응축된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것 아닙니까."

중앙아메리카 바베이도스 수도 브리지타운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9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에서 동의보감 초간본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승인된 가운데 31일 오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중인 동의보감 초판어제본 오대산고본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 hk.co.kr

동의보감은 중국 의서를 베꼈다?

미신적 내용이라는 비판과 함께 동의보감은 중국의학서를 베낀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한편에서 계속되고 있다.

동의보감은 중국 의서 86종을 참고해 16세기까지의 동아시아 의학 등을 집대성해 편성한 종합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중국 의서를 인용했으니, 독자적인 시각에서 집필한 책이 아니라는 소리도 나올 법하긴 하다.

그러나 안 단장은 "다양한 책의 내용을 인용했다는 것과 베낀 것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에는 동의보감 이전까지 의학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의서가 단 한 권도 나오지 못했다. 허준 선생은 한의학과 중국의학 지식 등을 종합해 독자적인 의료체계 안에서 녹여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가 세계 여러나라의 원천기술을 활용해 독창적인 제품을 생산해내는 것과 같다고 덧붙인다. 또, 허준이 언급한 중국 원서들을 비교해본 결과, 처방법이나 약재 등을 그대로 인용해 쓴 것이 아니라 우리의 풍토와 체질에 맞게 새롭게 바꾼 것이 많았다고 동의과학연구소의 박석준 소장은 밝힌 바 있다.

동의보감이 중국을 비롯해 일본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에 전해지면서 커다란 영향을 줬다는 근거는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안 단장은 "동의보감이 나오기 전까지 중국에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의학서가 존재하지 않았고, 동의보감 이후에도 그것을 능가하는 의서는 나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동의보감 편찬 이후 중국에서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고금도서집성의부>, <사고전서>, <육과준승>, <의종금감> 같은 종합의학서를 활발히 펴냈다. 하지만 이러한 종합의서를 편찬한 이후에도 중국에선 계속해서 동의보감을 발행해서 인용했다. 동의보감을 뛰어 넘는 우수한 의서가 나오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우려하듯, 동의보감이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우수하다 해서 현대에도 지속적인 활용이 가능할까.

한의계를 중심으로 동의보감을 계승 발전시켜, 만성 및 난치성 질환 치료에 허점을 나타내는 서양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체의학으로서 활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인범 상근부회장은 한 의료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가치 못지 않게 현재와 미래적 가치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오늘날 한방은 동의보감의 처방을 기본으로 현대인의 복잡한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의보감에 대한 오해와 관점의 빈약함은 이 책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라는 게 동의보감 기념사업단을 비롯한 한의계의 주장이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동의보감의 우수성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체의학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보다 활발해질 전망이다.

허준 선생, 16세기까지의 동아시아 의학 집대성
동의보감은


동의보감은 허준(1539~1615) 선생이 선조의 명을 받아, 국내 의서인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의림촬요>를 비롯해 중국 의서 86종을 참고해 16세기까지의 동아시아 의학 등을 집대성해 편찬한 책이다. 병의 원인과 진단, 치료약의 제조, 침과 뜸에 관한 지식을 다양하게 제시한 한의학의 백과사전격인 책이다.

선조는 의원과 의서는 있으나 새로운 학설이 없을 뿐 아니라, 의원들이 처방의 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약을 잘못 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허준 등에게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했다.

1596년(선조29년) 편찬을 시작해 1610년(광해군2년) 25권 25책으로 완성했으며, 3년 후인 1613년 내의원에서 완간했다.

허준 선생은 중국의학을 북의와 남의로 나누고, 조선의학을 동의라 했는데, 이는 조선에서도 독자적으로 의학을 연구, 발전시켜왔으며, 조선의학이 중국과 대등한 수준을 지니고 있음을 주체적으로 내포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조선의학을 하나의 독립된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책 이름을 <동의보감>이라고 지었다.

동의보감은 내경(內景), 외형(外形), 잡병(雜病), 탕액(湯液), 침구(鍼灸) 등 5편으로 구성돼 있다. 내경은 인체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들인 정(精), 기(氣), 신(神), 혈(血)과 서양의학의 내과 영역에 해당하는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설명하고 있다. 외형은 몸의 겉에서 관찰되는 인체 부위의 의학적 기능과 거기에 생기는 질병을, 잡병은 부인과, 소아과 등 인체에 발생하는 질병들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그에 대한 치료법을 전문 영역별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탕액은 약물의 처방법과 복용법 등을, 침구는 경락과 혈자리, 침의 종류와 시술법 등을 다루고 있다.

동의보감은 우리 국토에서 생산되는 향약(鄕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이용과 보급 등 실용성을 중시했다. 이를 위해 탕액편에서는 향약 637개의 이름을 한글로 표시해 쉽게 읽힐 수 있도록 했다.

또, 다양한 국내외 의서를 참고해 쓰여졌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임상의(臨床醫)에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해 1992년 만든 제도로, 2년마다 회의를 개최해 등재유산을 결정한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세계사에 중요한 문화적 영향력을 끼쳐야 하며, 역사적 가치와 기록정보의 중요성, 보존상태와 희귀성, 완전성 등 선정 기준에 맞는 두드러진 가치를 규명받아야 한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악보,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등이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돼 있으며, 이번에 동의보감과 함께 안네 프랑크의 일기, 마그나카르타 등이 새롭게 등재됐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