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속으로 들어간 패션 잡지] 패션잡지 기자 3人이 말하는 드라마 '스타일'오버하는 캐릭터, 쾌적한 사무실 환경 등 현실성 너무 없어

(위) 드라마 '스타일' (아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가 특정 직업군을 소재로 활용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숱한 직업들이 그 안에서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게 미화되는 일이 많았다. 광고 디렉터가 그랬고 방송 작가가 그랬으며 기자가 그랬고 운동선수가 또한 그랬다. 실제 그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그런 드라마들은 한 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게 무임금으로도 얼마든지 일하겠노라는 열정과 환상을 만들어낸다. 고용주는 그런 환상에 근거해 사람들을 끊임없이 착취한다.’ (<상식이 민망해 오그라드는 드라마들의 ‘행태’> 중에서)

‘전직’ 패션잡지 기자이자 대중문화평론가인 허지웅이 최근 모 스포츠지에 쓴 칼럼이다. 그는 “잡지 노동자 입장에서 드라마 <스타일>을 보고 있으면 기가 막혀서 입이 채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무실 전경”을 비롯해 “상식이 민망해 오그라들고 달아날 만한 풍경들”을 조목조목 묘사한다.

정리하자면, ‘그건 정말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사실 이 지적은 몇 해 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국내 개봉 때부터 있었다.

패션잡지를 소재로 만든 드라마와 영화는 하나 같이 왜 다들 ‘오버’하는 것일까? 드라마를 본 현직 패션지 기자들에게 의견을 들어보았다.

질문


1. 드라마 <스타일> 속 패션지 기자의 생활과 실제 패션지 기사의 생활이 얼마나 닮았나? 퍼센트로 나타낸다면?

2. 드라마가 잡지계 현실을 반영했다면 어떤 부분인가?

3. 드라마와 현실이 다른 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가?

4. '엣지녀'란 말이 나올 정도로 드라마 <스타일> 에는 '엣지', '핫하다', '시크' 같은 말이 빈번하게 말이 사용된다. 패션잡지 기자들이 이런 말을 실제로 사용하나? 요즘 잡지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은 뭔가?

5. 드라마에서 캐릭터를 가장 잘 묘사한 인물은 누군가?

6. 반대로 가장 오버하는 캐릭터는 누군가?



■ 민병준 (남성 패션지 <루엘> 패션팀장)

1. 10%.

2. 기획, 섭외, 촬영, 마감 등 한 달 단위로 반복되는 업무로 눈코 뜰새 없이 빡빡한 일정 정도가 닮았다. 그 이외의 업무 환경, 촬영 진행 방식, 선후배 간의 관계 및 언어 습관, 얽힌 애정 전선, 편집부 내의 관계, 외부 인물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은 대부분 너무 과장되었다.

3. 사무실 환경은 너무 쾌적하고 인테리어나 소품 구성 등도 패션 잡지 편집부와는 거리가 멀다. 포토그래퍼가 편집부 내에 같은 직원으로 소속된 부분도 현실성이 없다. 에디터의 구성 또한 연령대가 어색하게 구성되어 있고, 편집부의 파트(패션, 뷰티, 피쳐 등) 구조도 어색하다. 에디터들의 패션 스타일 또한 현실과 거리가 있다.

4. 엣지, 시크, 핫, 힙, 쿨, 트렌디, 스타일리시, 엘리건트 등의 용어는 대부분 의미하는 바가 비슷하고 쓰는 사람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구분이 모호하여 현실에서보다는 기사 내에서 간간히 사용하는 정도다. 또는 사진이나 패션 제품을 표현하고 설명할 때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정도이지, 드라마에서처럼 남발하지는 않는다.

5. 대부분의 인물들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누가 가장 잘 묘사되었다고 할 수 없다. 잡지의 정확한 컨셉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패션 디렉터로서 박 기자의 고집과 생각,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에디터들의 노력,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하는 어시스턴트들의 방황 등 각 인물의 일부분만이 실제의 패션 잡지사 캐릭터들을 닮았다.

6. 5번의 답변과 일맥상통하다. 모든 인물들이 현실성이 적은 만큼, 오버의 강도 또한 다들 비등비등하다.

박연경 (패션지 패션에디터)

1. 대략적인 부분은 비슷하지만, 가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말이나 상황 전개가 분위기를 흐린다. 굳이 퍼센트로 나타내자면 30%.

2. 에디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다양하게 조망한 것은 좋다. 직접 섭외에 뛰어들고, 가끔 인간적인 고민들도 하고. 특히 이지아(패션 어시스턴트)의 남자 친구가 두드려 맞으며(2편).. 바람난 어린 여자아이를 이지아와 비교하며 한 말이 압권이었다. “얜 길거리 떡볶이 사줘도 잘 먹고, 머리도 아무데서나 잘 해.”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비슷한 뜻이었다).

솔직히 찔렸다. 물론 에디터들도 마감 때나 촬영하며 출출할 때 떡볶이도 잘 먹는다. 하지만 우리(일종의 패션피플이나 패션에디터들)끼리 저녁이라도 먹으려면 ‘떠오르는 곳’을 꼽곤 하니까. 아무렴 남자친구와 데이트 때도 그런 곳에 가야 하지 않나.

3. 너무 바쁜 나머지 연애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한 달에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일을 진행할까. 기본 한 달에 7~15꼭지씩 진행하는데, 이지아는 늘 류시원 뒷꽁무니만 쫓아다닌다. 김혜수가 남자 모델 엉덩이를 때리며 함부로 대하는 것도 놀랍다. 에디터는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포토, 모델, 연예인들을 잘 조율해야 하는 사람이다. 서로 예의를 갖춰 잘 대해야함은 물론이고.

4. ‘엣지’는 너무 우습게 들리는 말 중의 하나이다. 엣지란 말만큼 그 의미를 전달하기가 힘든 미묘한 패션 용어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사실 글에나 쓰지, 실생활에서는 ‘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걸 보면 일반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유행하는 말은 딱히 없는 듯. 다만 자연스레 통용되는 말들이 있긴 하다.

패션 업계의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 문어체적인 3인칭 표현으로 ‘그’, ‘그녀’라고 부르기도 하고, 물건을 협찬받기 위해 대행사에 전화를 걸어서(일명 홀딩 전화를 건다고 하는데) 특정 아이템을 의인화해서 ‘그 아이’ 들어왔냐고 묻기도 한다.

5. 그나마 현실성을 반영한 캐릭터를 꼽자면… 편집장이다. 일부 잡지사 편집장들의 좀 욕심 많은 모습을 약간은 반영한 듯.

6. 이용우(포토그래퍼)-모델 출신이라 아직 연기가 어색한데다, 자기가 뭐 전천후 아트 디렉터도 아니고, 사진도 찍고, 스타일링도 하고, 매일 잡지사도 출근한다.

이지아-표정이나 행동거지 모두 너무 오버를 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일을 하는 사회인으로서 책임감 부족을 너무 인간적으로 포장하려는 것 같아 짜증난다. 에디터는 다양한 스태프들과 공동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남들 헛고생시키기 일쑤다.

신윤영 (패션지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디렉터)

1. 약 10% 정도. 뭐가 어떻게 닮았는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거의 닮지 않았다고 봐야 된다.

2. 편집장이 있다. 편집차장도 있다. 기자도, 물론 있다. ‘화보 촬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화보를 포토그래퍼라는 사람이 촬영한다(그런데 모든 촬영을 소화하는 포토그래퍼가 달랑 한 명이고 그나마 편집부에서 죽치고 앉아 기획회의도 참석하고 회식도 함께 하면서 매사에 드넓은 오지랖을 선보이는 상황에서, 이걸 ‘닮은 부분’이라고 언급해도 되려나).

화보를 촬영하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마감이랍시고 원고를 쓰는 ‘시늉’ 정도는 하는데, 이것도 닮은 부분이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 중.

3. ‘닮은 부분’으로 언급한 것 이외의 모든 것이 ‘다른 점’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기자로 뽑은 사람을 1년이 넘게 어시스턴트로 부리는 것, 그 어시스턴트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매사 억울한 것만 많은 캐릭터임에도 아직 권고사직의 영향권에 들지 못했다는 것, 편집 차장이라는 사람이 사사건건 편집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기사를 진행하질 않나, 인쇄 직전에 배열을 바꾸질 않나, 어렵게 독점 인터뷰하게 된 인터뷰이와 반말 만담을 나누다 진흙탕 육탄전을 벌이는 등 사사건건 사고만 치는 것은 거의 경이로운 고도로 상식 밖을 비행하고 있다.

4. 그 모두가 결국은 형용사 아닐까? 유행이라서 쓰고 유행이 아니면 안 쓰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표현에는 애초에 개인차가 있다. 패션지에서 다루는 많은 콘텐츠(특히 패션 관련)가 영어와 불어권에서 온 탓도 있다. 우리말로 대체했을 때 원래의 어감이 제대로 살지 않아 원문의 발음을 그대로 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사용하긴 한다.

5.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나마 한 명 꼽는다면 아주 화가 났을 때의 편집장. 마감이 초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기사가 펑크 나거나 원고 진도가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늦어지면 그런 모습을 보이는 편집장이 몇 있다.

6. ‘오버하지 않는 캐릭터’를 물으시는 게 빠르겠다. 오버하지 않는 캐릭터를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없다’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