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표 맛집·카페 인기비결] 충정로 '브리스토', 홍대 '디디다' 등기업형 레스토랑·카페속 틈새시장 구축주인장의 정성 담긴 메뉴와 정감있는 분위기 착한가격으로 단골 만들어

1, 2, 3-'브리스토'
4, 5, 6-홍대 뒷골목 카페 '디디다'
7-이태원 수제 스테이크 하우스 '비스트로코너'

주요 번화가에 가면 크고 고급스러운 음식점과 커피 체인점들로 가득하다. 기업화된 음식점과 카페가 계속 늘어가는 것이다. 유명 음식점과 커피점 가운데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거스를 수 없는 식문화의 흐름이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거대 자본이 투입된 기업형 외식산업이 영세한 ‘동네식당’을 대체하는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 같은 동네식당의 위기 속에서도 소박함과 특유의 맛으로 승부를 거는 곳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골리앗에 맞서는 동네표 음식점. 획일화·대형화로 대변되는 기업형 외식산업 틈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후미진 골목길의 이탈리안 비스트로

서울시 충정로의 재개발 구역. 낡은 기와지붕의 가정집과 국밥집, 쭈꾸미집 등 서민적인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골목길에 이탈리안 음식점이 있다니 생뚱맞다.

지하철 충정로 역에서 8분 정도 걸리지만 찾아가는 길을 설명하긴 쉽지 않다.

3년 전 문을 연 ‘브리스토(Bristot)’는 주인이 손수 피자와 빵 반죽을 만들어 굽고, 피클 등도 직접 담근다. 방금 구워낸 피자와 해산물과 토마토, 매콤한 양념을 섞어 끓인 해산물 스튜 맛이 그만이다. 우유와 치즈를 배합해 만든 까르보나라 소스의 맛은 독특하다.

찾기 쉬운 대로변에 위치해 있지도 않고, 2인용 테이블 7개와 4인용 2개 등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식사시간이면 입소문을 듣고 온 인근 직장인들로 붐빈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잡기 힘들 때도 많다.

다른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도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스파게티와 피자는 1만원에서 1만 3천원 정도. 식사를 주문하면 커피나 허브티는 공짜다.

주인 함모란(28·여) 씨는 임대료가 쌀 뿐 아니라, 인건비가 들지 않아 가격을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든 음식은 함 씨가 만들고, 그의 어머니가 서빙을 돕는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도 동네 음식점에 오듯이 마음 편안하게 와서 먹고 갈 수 있다.

하루에 다녀가는 손님은 15명~20명. 함 씨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고, 손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게 가장 매력적이라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재개발이 시작돼 가게를 이전하더라도, 역시 구석진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정성이 담긴 맛있는 메뉴와 정감 있는 분위기, 착한 가격이라면 아무리 구석진 곳에 있어도 손님들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소규모 개성 카페들의 반발

카페가 넘쳐 나는 홍대 주변. 하지만 ‘예술의 거리’라는 명성이 무색할 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체인점들이 차지하고 있다. 체인점이 아니더라도 규모가 크고, 상업적인 곳들이 대부분이다.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보인다.

카페 ‘디디다’는 아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홍대 번화가에서 벗어난 애매한 길가, 좁은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데다 간판도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가 부부가 홍대 쪽에 작업실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하고 작업실 겸 카페로 쓰고 있다.

카페에 들어서면 포메라이언 강아지 두 마리가 반갑게 맞아주고, 떠날 땐 문까지 쫓아와 아쉬운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본다. 여기저기 널린 기타와 사진, 낙서 투성이 벽은 빈티지풍으로 꾸민 예술가의 아지트에 놀러 온 듯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손님들은 모두 아름아름 소문을 듣고 오는 단골들이다. 예술 하는 사람들과 주변 작은 기획사와 출판사 직원들이 애용하고 있다. 카페 이름인 디디다는 ‘발을 디디다’란 뜻으로, 와서 커피만 마시고 떠나는 장소가 아닌, 오래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한다.

실제 이곳에선 하루종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대담을 진행하는 이들이 많다. 종종 게릴라 공연과 작품 전시회,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현재는 이종국 씨의 네팔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장연우(40·여)씨는 “이런 것들은 대형 커피 체인점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홍대 주변을 보면 개성과 인간미가 흐르는 소규모카페가 뒷골목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소규모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인다.

동네표 맛집·카페 조용히 확산

이처럼 대형화되고 획일화된 기업 외식산업의 팽창 속에서 개성과 정감을 필두로 살아 남는 음식점과 카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 밀집 지역인 서울 삼청동과 홍대, 서래마을, 이태원, 동부이촌동 등에서 상권이 뒷골목까지 확대되는 추세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소믈리에, 레스토랑 컨설턴트, 레스토랑 운영자 같은 맛의 고수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나만의 골목 맛집’이 쏠쏠한 틈새시장을 이루고 있다고 답한다.

서울 동부이촌동 삼익상가 지하에 있는 작은 일식점 ‘미타니아’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과 단골들로 늘 북적거린다. 일본인 사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제대로 된 일본의 맛을 낼 뿐 아니라, 우동 5천원, 소바 6천원, 튀김 5천 5백원 등 가격도 저렴해 인기가 많다. 인기에 힘입어 용산 전자상가와 서초동에도 분점을 냈다.

서울 서래마을에 위치한 ‘에릭스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는 테이블 6개의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주인이 직접 만든 꽃등심 스테이크와 중국풍 소스로 맛을 낸 칠리 스테이크 등 독창적인 맛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장사가 잘 되자, 역시 분점을 냈다.

이태원의 ‘비스트로코너’도 맛의 고수들이 추천하는 수제 스테이크 집이다.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젊은이 셋이 운영하는 곳으로, 장소는 비좁은데 찾아오는 손님은 많아 두번 가면 한번은 자리가 없어 그냥 나와야 할 정도다. 찾아가기 힘들고, 주차는 물론 안 된다.

그러나 냉동고기를 쓰지 않으며, 참나무 연기로 3시간 동안 구워낸 바비큐의 맛은 일품이다. 가격은 저렴해 1만~2만원 정도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

서울 한남동의 핸드드립 커피집 ‘킹커피’도 진정한 커피맛을 추구하는 마니아들이 꼽는 집이다. 대로변에 있지 않아 아는 사람이라야 찾아갈 수 있지만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바리스타의 이야기를 귀로 듣고, 커피 향기를 코로 맡으며 즐기는 커피는 대형 커피 체인점에서 경험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커피문화라고 할 수 있다.

소믈리에 유영진 씨는 “기업적으로 운영되는 식음료 사업은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주인장의 손끝에서 내는 맛깔스러움, 훈훈한 인정, 공간의 독창성 등은 자본의 힘으로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부암동의 하우스커피 전문점 등이 유행하는 것만 봐도 커피 체인점의 획일화 된 맛과 문화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열망을 감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열망은 식문화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기 마련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8-종로구 피맛골
9-삼오 쭈꾸미
10-을지면옥
11-을밀대
12-갈치조림
13-추어탕

재개발로 위기 맞고 있는 명불허전 맛집들

'을밀대', '을지면옥', '뚱뚱이 할머니집', '청진옥', '삼오 쭈꾸미', '희락 갈치조림'…. 수십 년 전통의 명불허전(名不虛傳) 음식점 가운데 떠오르는 일부다.

동네 골목 길에 있거나, 시내 후미진 길가 혹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들 음식점을 동네 맛집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이유는 서민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과 동네 밥집 같은 정취, 토속적인 풍미 때문이다. 또, 대형화되거나 체인점을 내지 않아 고유의 깊은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재개발 열풍으로 수십 년 된 피맛골의 해장국집을 비롯해 유서 깊은 전통을 가진 음식점들이 현대식 고층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화와 현대화의 추세 속에서 앞으로 더 많은 음식점들이 정든 터전을 뒤로하고 새로운 자리에 둥지를 틀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광화문 근처 사무실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이 모씨는 "같은 주인이 만들어 맛은 같을지 몰라도 새로 이사간 곳에서 추억과 서민의 정취까지 재현해내지는 못하는 거 아니냐"며 섭섭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또, 서래마을에서 작은 비스트로를 경영하고 있는 박 모씨는 "강남이나 새로 지은 고층건물로 옮기게 되면서 소규모로 운영되던 옛 음식점들이 대형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음식 맛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감을 나타났다.

음식 맛은 결국 주방장의 손끝에서 좌우된다. 그런데 적정규모 이상이 돼 한 사람의 주방장이 주방을 관리할 수 없게 되면 음식 맛이 변하고, 품질도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대 자본을 들여 세운 음식점 및 카페에서 이웃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은 갖기 어렵다. 음식가격도 뒷골목의 후줄근한 식당보다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이런 점 때문에 남녀노소, 계층을 가리지 않고, 동네 맛집을 향한 그리움과 애정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형 레스토랑 & 카페


2000년대 이후 서울 청담동 등 주요 외식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고급 레스토랑 붐이 일게 된 것이다. 이들 레스토랑은 서울의 노른자 상권에 있는데다 규모를 자랑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일류 주방장, 고도의 마케팅 전략으로 무장한 것이 특징이다.

청담동과 안국동에 있는 태국 레스토랑 '애프터 더 레인'은 CJ푸드빌이, 논현동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등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치프리아니'는 남양유업 외식사업부가 각각 운영한다.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위치한 중식당 '싱카이'와 일식당 '이끼이끼', 이탈리안 식당 '메짜루나'는 LG그룹에서 분리된 ㈜아워홈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이다.

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체인도 많다. CJ푸드빌의 한국음식 체인 '한쿡', 아워홈의 일식 돈가스 체인점 '사보텐', ㈜선앳푸드의 '토니로마스', '스파게티아', '매드 포 갈릭', ㈜아모제는 '마르쉐' 등이 그것이다.

또한, 스타벅스와 커피빈처럼 대형 커피 체인점이 등장한 이래 그 매장수가 급증하고 있다. 투썸플레이스, 크리스피 도넛 등 커피와 빵 종류를 파는 카페 체인점도 상당수다. 시내 중심가는 물론 일반 동네에까지 기업형 레스토랑과 카페가 진출해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