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전

우리는 정말 이 도시에서 '살고' 있을까.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망은 아름답지만 너무 멀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치는 도시는 너무 빠르다. 겨우 이 정도 '관계'만으로 우리가 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실험실 02: 도시피크닉> 전은 이 도시를 좀 가까이 보고, 천천히 겪어보자는 제안이다. 거리 곳곳에 눈과 발을 멈추게 하는 모티프들을 심고, 걷는 속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니 누군가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더라도 119에 신고하기 전, 잘 살펴볼 것. 거리 설치 작업이 주종목인 미국 작가 마크 젠킨스의 작품인지도 모른다. 그는 얼굴 없는 인형, 테이프 등으로 지루한 거리에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관객 스스로 이 거리에 말을 걸 수도 있다. '버블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작가 이지별은 누구나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빈 말풍선 모양 스티커를 광고판과 버스 정류장, 공중전화 부스 등에 붙인다. 서울이 처음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의 '대화'들이 프로젝트의 웹사이트(www.thebubbleproject.com)에 모여 있다.

1-이지별, 버블 프로젝트 2-차동훈,' 카타콤'시리즈 중 원효대교 북단 3-장종완,'에덴 회화'중 호랑이가 있는 풍경 4-양진, 투명한 극장 5- 정진열, 거리 연못
1-이지별, 버블 프로젝트
2-차동훈,' 카타콤'시리즈 중 원효대교 북단
3-장종완,'에덴 회화'중 호랑이가 있는 풍경
4-양진, 투명한 극장
5-정진열, 거리 연못
차동훈의 작품에서는 서울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묻어난다. 서강대교와 원효대교의 수로들,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닿지 않으며 쓰레기와 악취가 덥수룩하게 쌓인 그곳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도시의 화려한 표면 기저에는 이처럼 희생되고 소외된 삶들이 있는 법. 차동훈은 이 경건한 무덤을 '카타콤'이라 이름 붙인다.

도시를 쌓아 올리고 허물고, 더 높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인간의 욕망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작가들은 도시의 일상에서 종종 그 찬란하고도 덧없는 욕망의 원형을 본다. 우리들이 그것을 발견하려면 삶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장종완은 아주 조그만 '에덴 회화'들을 거리에 숨겨 놓았다.

양진은 허물어지기 직전의 집 내부를 집 외부에 펼쳐 놓았다('투명한 극장'). 곰곰이 들여다보아야 체험할 수 있다. 이 풍경들은 도시인인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드디어 바닥에 놓인 대형 거울, 혹은 정진열의 설치 작품 '거리의 연못'에 멈추어 무거운 마천루를 이고 선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도시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될지 모른다.

거리 전시는 물론, 워크숍과 세미나, 이벤트 등을 통해 도시에서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실험실 02: 도시피크닉>은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홍대 앞 KT&G 상상마당과 그 일대에서 열린다. 02)330-6223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